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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야기

어릴 때부터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체육선생님이 되어야겠다. 그래서 운동을 열심히 했다. 시험공부는 안하고 체력장을 준비는 엄청 열심히 했다. 집에서는 운동을 하면 다 깡패된다고 반대를 했다. 고등학고를 졸업하고 집을 나왔다. 여러가지 어려운 일을 했지만 행복했다. 내가 원하는 대학학과를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낮에 꿈을 꾸는자가 왜 행복한지 알겠다.) 그런데 집에서 다시 운동학과를 가도 좋다고 하셨다. 그렇게 공부해서 두군데 학교를 붙었다. 한곳은 차석이었는데 수석이 다른 학교를 가서 수석이 되어 등록금 + 4년 장학금 + 생활비 까지 준다고했다. 다른 곳은 서울에 있는 학교였는데 전 학교 마감이랑 발표일이랑 겹쳐서 기달리기로 했다. 전에 원하던 학교가 전화로 했을때 불합격을 들은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고 학교로 갔다. 학교 입구에서 부터 저 멀리 합격자 목차가 보이는데 그렇게 멀리있는데도 보였다. 그렇게 입학을 하려했다. 집에서 등록금을 내주지 못하겠다고 했다. 딱 한학기만 내어달라고 했다. 한학기만 내주시고 졸업할 때까지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교직이수를 하려면 몇 퍼센트 이내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4학년에 교직 이수를 위해 교생 실습을 갔다. 막상 해보니 체육 선생님은 맞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했다. 교수님이 유학을 추천했다. 그렇게 유학을 가게 되었다. 영어가 하나도 늘지 않았고 좋지 않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학원은 등록을 안하고 그돈으로 다양한 운동을 등록해서 직접 거기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영어를 익혔다. 어학연수원에서 우수한 학생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아버지 사업이 힘들게 되었다. 부도가 났다. 어머니가 쓸어지셨다. 수산시장에서 얼음을 배달하게 되었다. 처음에 하고 2-3일간 앓아누었다. 그렇게 하면 한달에 병원비를 다 쓰고 나면 1-20만원이 남았다. 엄청 아껴서 썼다. 그런데 승모근쪽이 이상이 생겨서 병원을 갔다. 쉬라고 했다. 그럴 수 없었다. 복싱도장으로 갔다. 계속 샌드백을 쳤다. 중간에 신도 욕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몸이 많이 좋아졌다. 우연하게 도장 동생이 몸을 만들어 달라고했다. 나는 기계체조 전공이라 잘 했다. 알고 보니 동생이 유명 작곡가라고 했다 (효리 쏠로 첫곡 탠미닛 작곡가) 몸이 만들어진 친구는 다른 연예인 친구들을 소개해 주었다. 조금씩 관리하는 사람이 생겼다. YG에 입사하게 되었다. (유학를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그랬다.) 이렇게 연예인 트레이너가 되었다.

산이 있으면 바로 올라가는 길, 돌아 돌아 가는길, 헬리콥터를 타고 바로 올라가는 길길길 이있다. 다 길이 있다. 컵에 위에서 시선을 못 보는데 물이 얼마나 찼는지 알아보려면 넘칠 때까지 해봐야한다. 지금하는 일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심할 수 있다. 그래도 믿고 계속 해야한다. 다 거름이 되고 결국 할 수 있게 된다. 

스탭, 잽, 스트레이트, 훅, 어퍼 를 배웠습니다.


엄청 기운이 좋다.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시는 황싸부를 만나게 되서 너무 기쁘다. 앞으로도 열정대학에서 종종 오신다고 하셨으니 너무 좋다. 인생은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이고 내가 어떻게 하든지 내 꿈은 다른 방식으로도 풀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여러가지 입장에 놓여있는데 차분히 하나씩 해결을 해 나가야겠다. 하나씩 하나씩 풀다 보면 길이 되고 나를 따라오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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