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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복지][창업가][연필 하나로 가슴 뛰는 세계를 만나다][독서의즐거움][열정대학][2016-2학기][한번해볼까?로시작된!]




9.5 희망이라는 것을 만들고 뿌리는다는것에 대한 현실적인 모습

Q. 인상 깊은 구절(25개 이상/각 구절 당 번호와 쪽수를 기입해 주세요)

  1. 세상에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지 마라. 당신을 살아있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일을 해나가라.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 하워드 서먼 -p5
  2. 모든 것은 하나의 연필에서 시작되었다. 인도의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던 한 소년에게 물었다. "온 세상을 통틀어서 뭐든 가질 수 있다면 뭘 제일 갖고 싶니?" "연필. 연필을 가지고 싶어요." 내가 연필 한 자루를 소년 에게 건넨 순간, 환하게 빛나는 아이의 얼굴. 나에게 연필은 필기도구였지만, 그 아이에게 연필은 열쇠였다. 가능성으로 향하는 문이었다.-p6
  3. 우리 부모님은 치과의사와 교정전문의로 개업할 시점이 되었을 때 두사람이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목록을 작성하고 주변 지역을 하나씩 평가했다. 교육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는데, 코네티컷 주그리니치에는 최고의 공립학교가 있었다. 그뿐 아니라 우리 어머니가 갈망했던 자원봉사 문화와 우리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접하게 해주고 싶었던 문화적 다양성이 있었다. 두 사람은 대출을 받아서 코스코브에 집을 샀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노동자 거주지로 1950년에 이마을에 대저택을 여러 채 건설한 근로자들이 사는 이탈리아 지구였다. 우리 가족은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그곳으로 이사했고, 내가 가장 오랜 추억들이 그곳에서 만들어졌다.-p 27
  4. 두 친구가 극복한 역격에 대해서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미래의 행로를 바꾸는 데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지 점점 더 확시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친구와 가족들 중에서 예정된 인생과 결별한 사람은 샘과 코넬리오뿐이었다. 그들은 비슷한 또래의 일반적인 규범을 따르지 않았다. 두사람은 달라지기로 결심했고, 그럼으로써 인간은 누구라도 분투와 희생, 타인의 선의를 통해 경이롭게 달라질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p 31
  5. 내가 들어간 이유를 설명하자 그는 내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밝은 빨간색과 노랜색이 섞인 실 뭉치를 꺼내 내 손목에 실을 두 번 돌려서 묶어주었다. 그는 눈을 감고 나를 지켜달라는 기도문을 읊조린 뒤 그것이 바라나시의 성스러운 끈이라고 알려주었다.-p 67
  6. 지난 몇년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잔고를 늘릴 수 있었지만 지갑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은 스코트가 보내준 명함이었따. 나보다 더 큰 무언가와 나를 연결시켜주는 고리였기에 나란히 있는 지폐들보다 그 명함이 훨씬 의미가 있었다. 인간의 존재이유는 워낙 많은 곳에서 드러나지만, 내가 좀더 광범위한 합집합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사소한 것들을 통해 드러나는 경우가 가장많다. 나는 대기업의 세계로 뛰어들려는 찰나였지만, CCF의 명함을 보고 있으면 세상을 좀더 탐험하고 싶은 생각이 고개를 들었따. 그래서 개발도상국으로 다시 한번 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배낭도 있고, 조종사용 안경도 있고, 라틴아메리카에서 4개월 동안 버티기에 충분한 돈도 있었다. 유언장을 쓰고 남쪽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라타기만 하면 끝이었다.-p75
  7. 그날 밤에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호엘이 내 인생에 등장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적어도 이 남자가 일종의 가이드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나를 집으로 부르면 아이들과 손자들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었따. 그의 눈에 비친 나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해서 난 창문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나에게 사소한 도움을 받으면 지금보다 폭넓은 시각을 기르고, 이를 바탕으로 조그만 마을에서 벗어나서 살 수 있었다. 호엘을 보고 나는 온 가족의 반석이었던 돌아가신 아푸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아푸는 강인했기에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 할머니를 만들 수 있었고, 불굴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족을 데리고 모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올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선물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나는 고민거리가 생기면 늘 직접 아푸를 찾아가서 물었고, 아푸가 돌아가신 뒤에는 기도를 통해 조언을 청했다. 기도를 하면서 어떤 신호나 전령을 보내달라고 청하곤 했는데 호엘이 전령일 가능성이 있다면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야햐 했다.-p84
  8. 호엘의 집에는 조그만 텔레비전이 있어서 밤이 되면 같이 영화를 보곤 했다. 3월이었는데 어느 날 저녁에 <엘프>가 방영되었다. 우리는 스페인어로 이어지는 대화를 들이며 배를 잡고 웃었는데 호헬은 영어 자막에 집중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어마하게 큼직막한 헤드폰을 끼고 그날 녹음한 테이프를 들었다. 내가 자기 귀에 대고 말하는 대로 한 단어씩 중얼중얼 따라하는 그의 음성을 듣다 보면 내 몸에 소름이 돋았다. 호엘은 내가 웃는 걸 보더니 자기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전선을 필요 없어요. 당신이 떠났을 때 내가 우리 아이들과 다른 동네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게 독학할 꺼에요."-p88
  9. 아버지의 말이 맞았따.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할 때였다. 몇 달전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비영리재단이 베인의 무료 고객이 되었을 떄 나는 그 프로젝트를 맡은 간부에게 나도 참여하고 싶다고 깍듯하게 이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선택하지 않았고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연례회의 떄 내가, 불타는 밤을 보내고 난 뒤에 잠깐 눈을 붙이는 곳으로 유명한"복지실에서 자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직원"으로 뽑혔던 것이다. 장난삼아 주는 상이었지만, 사내에서 내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 만한 사건이었다.-p101
  10. 나는 나보다 더 거대한 무언가를, 남들까지 움직일 수 있는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은 나의 소망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원봉사단체를 결성한 젠의 이야기와 젊었을 때 도전해야한다는 데니스의 충고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사람들은 근사한 아이디어가 저절로 난데없이 떠오르는 줄 알지만, 사실은 수많은 사소한 순간과 깨달음이 서로 얽혀서 돌파구로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었기에 그런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이다. 개발 도상국을 누비며 연필을 나누어주었을 떄 느꼈던 즐거움과 언젠가는 학교를 설립하고 싶은 소망에 대해 생각하는데, 문득 어떤 이름 하나가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약속의 연필. 번갯불이 번쩍하고 내 몸을 관통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연필은 내가 굳게 믿는 독학의 능력을 상징했고, 약속에는 맹세나 서약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미개발의 잠재력, 이렇게 이중적인 읜미가 담겨있었따. 온갖 아이디어들이 떠올랐고 나는 흥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살다보면 이후로 모든게 달라지겠구나, 하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 순간에 등장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르는 척 무시하고 지나가면 우리의 인생은 예전 그대로일 것이다. 하지만 울려 퍼지는 가능성에 환호하면 인생행로가 영원히 달라진다. 모든 게 바뀌려 하는 아주 특별한 순간이 내게 찾아왔다. 그렇다는 거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p109
  11. 나는 아파트로 달려가서 밤을 새워가며 장황한 선언문을 작성했다. 다음과 같은 조직 강령으로 시작되는 선언문이었다. 약속의 연필은 개발도상국 내의 빈곤지역에 초등교육시설 설립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단체가 되고자 한다. 우리는 시설을 건립함에 있어서 파트너가 되길 희망하기에, 각 지역 사회는 우리 단체와 매우 적극적으로 공조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야한다. 각 교육시설의 궁국적인 목표는 설립 5년 내에 지역 주민들의 힘으로 자립, 존속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육이야말로 가난과 질병을 물리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며 초등교육, 즉 아이들의 손에 연필을 한 자루 쥐어주는 것이 자기 역량 강화와 보다 나은 삶을 약속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는 그 단계의 교육이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고 믿는다.-p111
  12. 약속의 연필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 나눌 수록 점점 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몇 주가 지나자 서류작업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 찾아왔다. 나는 10월의 첫날, 집에 내려간 김에 어머니에게 차를 빌려서 시청으로 향했다. 약속의 연필 공식 대표로 내 이름을 넣어서 사업자 등록증을 작성하고 그 근처 뱅크 오브 아메리카로 차를 몰았다. 내가 처음으로 통장을 개설했던 바로 그 지점이었다. "계좌를 하나 새로 만들고 싶은데요." 나는 중소기업 상담코너에 앉아 있는 여직원에게 말했다. 명찰에 '데비'라고 적혀 있었다. "약속의 연필이라고, 이제 막 설립한 단체용으로요.""어머, 그이름 마음에 드네요.
    "데비가 말했다. "저도요."나는 미소를 지었다. "계좌를 개설하려면 뭐가 있어야 하죠?" "노란색 사업자 등록증을 들고 오셨으면 최소 25달러만 입금하시면 돼요." 원대한 꿈은 종종사소하고 터무니없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저 한도액으로 시작하더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이냐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시작이 아무리 미미해도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게다가 그 달에 내 스물다섯 번째 생일이 있었으니 운명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데비에게 24달러를 건넨 뒤 2008년 10월 1일이라고 찍힌 입금표를 받았고, "애덤 브라운, 약속의 연필 대표"라고 적힌 수표책을 들고 나왔다.-p115
  13. 정신병자와 리더의 차이는 그가 추구하는 바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있는지의 여부다. 약속의 연필 밑그림을 그린 사람은 나였지만 첫 번째 핼로윈 파티를 거든 친구들이 있었기에 날개가 달렸다. 가면무도회 준비에 열과 성을 다한 미미가 있었기에, 나를 푸앙프라방 교육청과 연결 해둔 도리와 TC가 있었기에, 라오스 행 비행기에 탑승한 리처드가 있었기에, 남들은 안 된다고 할 때 우리는 전진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사회는  설립자와 CEO를 너무 찬양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은 얼리어답터와 전도사들이 있기 때문에 그 회사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초창기에 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믿는다는 한 가지 공통점 아래 뭉칭 어중이떠중이였다. 우리는 남들이 정한 고정관념을 꺠고 우리가 물려받은 것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팀워크를 발휘하고 하나의 꿈을 현실로 이루어내는 데 다같이 헌신적으로 매달린 덕분에 몇 개월만 있으면 야속의 연필 사상 최초의 학교를 탄생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듯 자신감을 하늘을 찌르다 보내 내가 회사에서 잘리기 직전이고,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일군 모든 것이 오르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p128
  14. 나는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로써 값진 교훈을 깨달았따.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떄가 자칫하다가는 앞으로 넘어질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베인이라는 내 직장을 당연하게 여겼고 오로지 과거의 성과만으로 설렁설렁 다음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우리에 대한 평가는 매일 새롭게 바뀐다. 30년 동안 신뢰를 쌓은 기자도 표절한 한 문장 때문에 오랜 경력이 하수구로 직행할 수 있다. 나는 하루 저녁 게으름을 피웠다고 몇 개월 동안 쌓은 성과에 오점을 남겼다. 우리는 날이면 날마다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책임이 있고, 결과에 대해서 자기 자신 말고는 어느 누구도 비난할 자격이 없다. 나는 그 당시 프레스콧을 원망했지만, 그와 함께 보낸 3주가 내 직장생활을 통틀어서 가장 값진 경험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적절할 때 내 콧대를 꺾어주었다. 인간은 성공보다 실수를 통해서 배우는 교훈이 훨씬 많다. 나는 하마터면 직장과 약속의 연필을 설립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를 동시에 날릴 뻔했지만, 그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결과물을 요구할 권리가 있었다. 나는 두번 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세상은 우리에게 두 번의 기회를 허락하고, 나는 완벽한 시점에 승진이 되었다. 약속의 연필에서 설립하는 첫 번째 학교가 라오스에서 양해 각서 서명을 앞두고 있었다. 어서 빨리 동남아시아로 건너가야했다.-p139
  15. 오전에는 일꾼들과 함께 배수로를 파고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발랐고, 오후에는 아이들과함꼐 놀고 강물에서 헤엄쳤다. 이게 아주 당연한 일상이 되어서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 오후 쉬는 시간이 되면 으레 내 손을 잡고 운동장 뒤 언덕을 달려 내려가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형제자매들을 따뜻하고 얕은 물속으로 떠밀었다. 열 살짜리 남자아이들과 강물 위로 삐죽 고개를 내민 바위까지 헤엄치기 시합을 벌인 날도 있었고, 아이들이 집에서 만든 그물을 들고 나와서 나를 나무로 만든 낡은 카누에 태우고 고기잡이에 나선 날도있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내려가다 보면 종종 굼긍해졌다. 지금 친구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친구들은 화려한 파티에 참석하거나 중요한 사람들과 회의를 하고 있을 텐데, 나는 산속에서 헤엄을 치고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따. 그런데 이보다 더 행복한 선택은 없었따. 내가 아는 중에서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보람찬 생활이었다.-p146
  16. 어떤 충돌 상황이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해자와 피해자에 주목한다. 둘 중 하나라도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갈등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기대 심리가 그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획기적인 반전은 그 사건에서 아무런 혜택도, 이득도 보지 못하는 제삼자에게서 비롯된다. 그날 카트만두의 길거리에서 툭툭 기사가 나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희생자를 대신해서 나선 제삼자가 있으면 그가 바로 영웅이다. 살다 보면 어떤 갈등 상황의 피해자나 가해자보다 제삼자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데, 그렇기에 불의를 겨냥하는 십자선이 우리를 집접 조준핮 ㅣ않더라도 우리에게는 타인을 옹호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p161
  17. 그날 맨 처음 찾아간 콕뉴 마을의 촌장과 자리를 잡고 앉았을 떄 라노이가 새로 산 수첩을 자랑스럽게 꺼냈다. 깔끔한 모눈종이가 달린 수첩이었는데, 표지를 본 순간 내 입이 떡 벌어졌다.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상어의 씩 웃는 얼굴이 만화로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베인 같았으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그곳은 베인이 아니었다. 그곳은 라오스의 산 속이었고, 라노이의 '상어 수첩'에 담길 내용이 언젠가는 수천 명의 라오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쓰일 것이다.-p163
  18. 그들의 시간과 에너지와 기술로 우리의 사업을 추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따. 나는 대화를 시작할 때마다 매번 똑같은 질문을 던졌따. "가장 좋아하는 일이 뭐예요?" 상대방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파악하면 약속의 연필을 후원하는 데 활용할 방법을 마련할 수 있었따. 그런 식의 접근방식 덕분에 우리의 자원봉사 인력은 급속도로 늘어났다.-p174
  19. 브래드가 기술자, 광고피디, 블로거, 디자이너로 대상을 확대한 자원 봉사단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뉴욕 곳곳에서 우리 단체를 위해 일하는 일꾼들이 생겼으니, 나는 스코트 니슨의 작전을 본떠서 비스타프린트 사이트에서 홍보용으로 출시한 한 세트당 2달러 50센트짜리 명함을 50벌 만들었다. 우리 단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자신의 이름과 내가 만들어낸 직함이 찍힌 명함을 받았다. 나는 보통 아무 예고 없이 우편으로 명함을 발송했는데 상대방의 반응은 늘 똑같았따. "약속의 연필 명함을 내 진짜 명함보다 두배 더 많이 쓰고 있어요!" 약속의 연필은 그들의 일과 후에 나누는 대화의 일부가 되었고, 이내 그들이 영위하는 일상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다.-p180
  20. 약속의 연필은 일부분 연쇄작용을 통해 운영되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열정이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 전해지면 그들이 후대에 물려주는 가치관이 달아질 수 있따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우리의 사명이 개발도상국에 학교를 짓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국내외의 젊은 리더를 양성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약속의 연필의 초기 슬로건이 "힘이 있는 세대가 세상에 힘을 실을 수 있따"로 정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p186
  21. "제가 만약 지금 회사를 그만두면 얼마나 손해인가요?" 내가 물었다. "정확한 금액을 알고 싶은데요.""연봉과 보너스를 합하면 대략." 금액을 듣는 순간 내 입이 떡 벌어졌다. 젠장, 어마어마하잖아.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6개월의 내 인생도 어마어마한 시간인데. 애가 그때까지 기다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벤인을 일찌감치 그만두고 약속의 연필에 전념하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것이 이었다. 링크드린을 설립한 리드 호프먼이 말하길 사업가란'절벽에서 뛰어내려 추라하는 와중에 비행기를 조립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아직 뛰어내일 준비가 안 되었지만 비행기 부품을 찾으러 나서야 할 시점이었다.-p200
  22. 제임스 드 라 베가는 이스트빌리지에 남긴 분필화, 벽호, 메시지중심의 낙서로 뉴욕에서 유명한 거리의 화가다. 그의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크리스타에서 경매로 팔렸고, 또 일부는 아침에 내린 비로 씻겨나갔다. 그날 저녁, 데이브가 제시한 선택지를 고민하며 10번가에 새로 장만한 집까지 걸어갔더니 커다란 소포상자가 우리집 앞 계단 옆에 버려져있었다. 그런데 내가 도착하기 직전에 드 라 베가도 이 상자 앞을 지나갔는지, 트레이드마크인 까만색 볼드체로 그의 가장 유명한 명헌을 세 마디 적어놓았다. 네 꿈이 되어라. 가끔 우리는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신호를 구할 떄가 있따. 소포상자에 쓰인 명언처럼 높은 분을 향한 우리의 기도가 응답을 받을 때도 있지만, 그냥 내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할 떄도 있따. 하지만 두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찾으면 신호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 순간 내앞에 등장한 신호는 그보다 더 뚜렷할 수 없었다. 질문에 대한 응답이 내 집앞계단에 쓰여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날 밤 눈이 내리기 시작했을떄 나는 언젠가 약속의 연필 사무실을 열면 남들도 이 신호를 보면서 길장이로 삼을 수 있게 벽에 걸어놔야겠따고 다짐하며 밖으로 달려나가 상자에서 그 글귀를 오려냈다. 다음 날 공항을 ㅗ가는데 노먼이 이메일을 보냈따. 지금 당장 전화 부탁해. 나는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뒤 게이트에서 그에게 전화했다. "주말에 어디 가기 전에 자네한테 확실히 전하고 싶어서." 그가 말했다. "조카하고 의논해봤어. 5월이나 6월부터 우리 사무실 빈 공간을 자네한테 무상으로 내주겠네. 언제 들어오고 싶은지 말만해." 그야말로 내게 필요한 마지막 신호였다. 나는 이미 마음의 결정이 내려졌다는 생각을 하며 비행기에 탑승했다. 나는 다음 주에 베인을 퇴사하고 약속의 연필에 전념할 생각이었다.-p203
  23. "그 부분은 신경 쓰지 마세요. 버스 타고 갈 꺼니까" 내가 말했다. 비행기 표를 사는데 허투루 돈을 쓸 수 는 없었다. 나는 심지어 운영비를 아끼느라 약속의 연필 기금으로 건강보험도 들어놓지 않았따.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실수였는지 나중에 깨달았지만.-p211
  24. "주말 내내 정말 고민을 많이 헀고 제작 담당 부사장하고도 의논했어요. 내가 제안하고 싶은게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 우리 회사에서는 2만 달러에 홈페이지를 제작하지 않을 거예요."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그 대신 15만 달러를 들여서 최고 수준의 홈페이지를 무보수로 제작하라고 이미 승인을내렸어요."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정신 사납게 서성이다 말고, 손바닥만 한 아파트를 정신병자처럼 질주하며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했다. "둘째, 당신만 괜찮다면 나도 이사진으로 참여하고 싶어요. 그리고 셋째, 나한테 또 다른 디지털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제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좀더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거든요. 그 친구랑 이야기해볼래요? 그 친구도 이사진이 되고 싶다고 할지 모르겠는데." 나를 리치의 말을 듣는 내내 속으로 "좋았어어어어어어"를 거듭 외치며 집안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달렸다. 나는 먼저 정신을 가다듬었다. 숨이 차서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따. 약속의 연필 이사회는 아직 비공식적인 조직이었따. 이사라고 해봤다 나와 약속의 연필을 설립하고 키우는 데 도움으 준 20대 중반의 친구들 5명 -미미, 브래드, 마이크, 리비, 젠- 박에 없었따. 거기에 호프와 작별을 고하는 내 이메일을 읽고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고 한 베인의 임원 캐런 해리스를 추가하려고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리치와 그 친구를 이사로 영입할 수 있따면 대부분 적극적으로 달려들겠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덥석조하고 할 수는 없었다. "먼저 세가지 제안에 대해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곘네요. 현재 이사진이 모두 합해서 6명인데, 그들과 의논을 한 뒤에 가타부타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사장님이 참여해주셨으면 하지만요. 그리고 홈페이지 건은 100퍼센트 찬성입니다." "다른 이사진의 의견을 존중하다니 반가운 일이네요. 내가 다음 주에 뉴욕으로 건너갈 거에요. 마나서 저녁 식사라도 합시다." "저야 좋죠." 나는 전화를 끊자 마자 브래드와 알렉스에게 차례대로 연락해 이 엄청난 소식을 알렸다. 프리랜서를 몇 명모아서 2만 달러에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느 ㄴ바람으로 벌인 일이었는데, 미국에서 손꼽히는 디지털 에이전시가 아무 대가 없이 전력을 다해 우리를 돕겠다고 나썼다.-그 희열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p226
  25. 하지만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나는 그 전 주 내내 리치와 함께 홈페이지 작업을 했다. 어느 날, 저녁을 함꼐 먹는 자리에서 나는 존의 제안을 설명하고 내가 역속의 연필과 또 다른 회사를 동시에 설립할 수 있는 것 같냐고 물었다. "딱 하나만 묻겠네." 그가 운을 뗐다. "자네,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 할 수 있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세상에는 두 여자를 동시에 완벽하게 사랑할 ㅅ ㅜ있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한 명만 사랑할 수 있따고 말하는 남자도 있거든. 자네는 어느 쪽인가?""글쎄요. 저 자신에 대해서 제법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한번에 한 명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그럼 정답이 나왔네. 자네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쪽을 선택해." 그순간,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와 알고 지낸 지 얼마 됮 ㅣ않았지만 내가 머릿속에서 옥신각신하는 목소리들을 헤치고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있따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p235
  26. 새 사무실로 이사하기 전날에 만든 여덟 가지 규칙을 첫날, 큰 소리로 낭독했다. 첫 번째 규칙은 우리가 선발할 직원의 성격을 규정하는 항목이었다. " 여기서 근무하려면 절대 불가능 한 것들을 믿는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라야 한다. 현실주의자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른 직장을 아라보기 바란다. 이곳은 몽상가들을 위한 직장이다.." 서번 째 규ㅣㄱ은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네 번째 규칙은 한 사람의 기운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일곱 번쨰 규칙은 우리를 이곳에 있게 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도록 가족들을 사무실로 초대할 필요가 있따는 것을 강조했다.-p244
  27. 다음 날 아침에 우리의 계획을 듣고 스코트 형은 대찬성했다.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진정성은 거짓으로 꾸밀 수 없는 법니다. 늘 저스틴과 나에게 사회 환원의 모범을 보여주려 했던 형은 그날 아침에 자신의 작전이 주효했음을 느꼈을 것이다. 약속의 연필 초최의 초트급 캔페인이 준비 과정에 돌입했고, 믿음직한 집행부가 갖추어졌고, 우리 일에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로 핵심그룹도 만들어졌다. 이제 드디어 내가 긴장을 풀고 우리의 경험담을 전세계와 나누기 시작할 때가 되었다.-p252
  28. 나는 CEO로서 직원들의 안녕은 챙기지 않고 경제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잘못된 태도를 보였다. 조직을 보호한답시고 조직의 구성원을 등한시했다. 실로 엄청난 실수였다. 나는 인해 가장 유능한 직원 두명이 소외감을 느꼈다. 그들은 다독여주길 바랐건만, 나는 비용 부담을 운운했다.-p272
  29. 그로부터 며칠 뒤, 브래드가 엄청난 이메일을 보내왔다. 안 믿기겠지만 사치 앤드 사치(세계에서 가장 큰 광고대행사) CEO가 자기 블로그에 약속의 연필을 포스팅했어. 이 일로 광고계 사람들의 이메일이 나한테 쇄도하고 있어! 브래드가 보내준 링크를 따라 케빈 로버츠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우리의 사업과 접근 방식이 어쨰 훌륭한지 열변을 토한 포스팅이 있었따. 나는 무무리 혹은 '매듭짓기'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하지 래리를 통해 실감했던 터라 이참에 그에게 연락해보기로 했다.-p282
  30. 그해 여름이 저물어갈 무렵, 나는 옥상에서 만난투자자의 명함을 꺼내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고 초대했다. 덕분에 내가 하는 일이 소개할 떄 쓰는 단어를 바꿀 수 있었다고 전하고 싶었따. 나는 트라이베카에서 수푸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사회적인 사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은 목적 지향적이라고 해야 하지않겠느냐고 나의 새로운 소신을 밝혔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따. "그런 식의 발상, 마음에 드네요." 몇 주 뒤에 내 앞으로 봉투가 배달되었다. 열어보니 과테말라에 새학교를 짓는데 보태달라면 넣은 수표가 들어 있었다. 이제는 그도 기부를 투자의 기회로 여기게 된 것이었다. 이로써 그의 연간 수익이 늘어나지는 않안ㅆ겠지만 목적의식 면에서는 정점을 찍었을 것이다. -p 295
  31. 2년 전에 나는 저스티스라는 가나 학생에게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었다. 교실이 아니라 망고나무 아래 모여서 공부하고, 선생님도 없고 교과서도 없는 경구가 허다한 고국의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약속의 연필을 알게 되었다는데 그의 이메일을 읽고 어찌나 기운이 솟았던지 주기적으로 이메일을 주고받아가 결국에는 화상 통화까지 했다. 그 당시에는 약속의 연필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황이었디만 이제는 배를 타고 가나까지 도달했으니 그를 찾아야했다.-p302
  32. 테힐라와 레이는 한 사람으로 인해 내 인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가르쳐주었다. 세상에는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미래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좀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아프리카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발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라. 그러나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 보다 현명하고 친절하며 나와 다른 사람들이 있기에 내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늘 곁에 두어야한다.-p318
  33. 나는 당장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잠깐 잡담을 나누었지만 양쪽 다 통화 목적을 알고 있었다. 나는 사무실을 왔다갔다 걸으며 그의 말을 들었다. "애덤, 우리 가족으로서는 엄청난 결단이었어요. 우리 부부가 얼마나 고심했는지 몰라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서." 바로 그떄-내가 경제적인 부담은 곤란하다는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을 때- 그가 손꼽아 기다렸던 대답을 들려주었다. "우리는 애덤 씨를 믿고 애덤 씨를 돕고 싶어요. 그래서 아프올 3년동안 10만 달러씩 부담하려고 합니다."-p331
  34. 아이디어가 자라면 어느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확장된다. 그걸 한 사람이 전하는 하나의 이야기로 제한해보리면 진정한 가능성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설립자의 역할은 자신이 한 말이 일으킨 메아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중에서 가장 진솔한 목소리를 격려하고 증폭하는 것이다. 이것을 내 진정한 역할로 받아들일수록 우리 커뮤니티 안에서 각 개인, 가족, 회사들의 여정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p342
  35. 아프리카에서 여성 최초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엘런 존슨 서리프는 이렇게 말했다. "꿈을 떠올리면서 겁이 나지 않으면 꿈이 충분히 원대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는 한때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목표를 달성했지만 이제는 거기서 더 뻗어나가야 할 때였다. 목표를 달성했을 떄가 아니라 다시 한번 머너먼 결승선을 향해 자신있게, 당차게 전진할 때 정말로 힘이 솟는다. 이미 알고 있는 세계와 미리의 시계 사이에서, 이루고 싶은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고 그 청사진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달릴 때 정말로 힘이 솟는다. 앞으로 교차로가 등장할 때마다 어떤 식으로 길을 찾으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가장 큰 염원으로 향하는 지도는 이미 우리 곁에 있었다.-p358
  36. 이 모든게 어떤 식으로 시작되었는지 돌이켜보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내가 처으부터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였다는 것, 여기서 '대책이 없다'는 것은 내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단어다. 나는 약소의 연필을 시작하면서 대책을 세운 적이 없었다.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냥 잘될 거라고 믿었다. 나는 뉴욕 필하모닉 공연에서 짜릿한 전류가 처음으로 나를 관통한 그 순간부터 성공 여부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열정을 넘어서 일종의 존재 이유처럼 느껴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지 말고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하면 존재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거기에 대한 해답을 찾으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p368


Q. 이 사람처럼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고,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라면 어떻게 극복 할 수 있을까?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는다는 것이 너무 어렵다. 모든것을 포기하고 본인에 가치에 다 쏟을 수 있으면 주의에서 에너지를 주는 사람을이 넘친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이렇게 가치에 대한 신념을 확실히 하면서 살려면 내가 그 누군가도 알 수 없는 곳으로 여행을 가보는 것도 좋은 기회이다. 언제가 떠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도 한번쯤 여행을 가고싶다. 세상을 나아가 나를 다시금 마주할 수 있다면 좋겠다. 세상에 나를 던지고 나에게 세상이 들어오길.


Q. 이 사람에게 닮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

작은 시작과 동시에 꾸준히 하는 모습, 그리고 안에서 끊어오르는 열정과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닮고싶다. 이렇게 여러가지 가치들이 있는데 오직 목적이 있는 한길을 간다는 것. 그것은 순간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어릴 때부터 습관화 된 그 모습들이 부럽다. 자식이 태어나면 어떻게 길러야할지에 대한 생각도 하게되고 나를 아프로 어떻게 더 길러야할지 고민이 되게해주었다. 가장 닮고 싶은것은 솔직함과 행동력이다. :)

Q. 이 분야에 종사하고 싶은가? 그 이유는?

봉사, 개발도상국지원, 우리나라도 몇년 전엔 그러한 상태였다. 이런저런 많은 일들로 인해서 이렇게 성장하게 되었지만 과연 우리는 이런 삶을 상상이라도 했었을까? 사회적기업은 우리나라는 막 시작된지 얼마 안됐다. 할 수 있다면 전업으로는 힘들더라도 지원금이나 재능기부식으로 하고싶다. 지금도 세이브칠드런엔 매달 일정금액에 후원금을 내고있다. 이억만리 떨어진 아프리카에서 그 아이가 잘 자랐으면 좋겠다.


Q. 감상평

연필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는 단순히 필기구에 불과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는 안에 잠가고 있던 잠재력을 깨우는 아주 중요한 시점이 될 수 있다. 세상에 부가 극히 일부에 모여든다. 많은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생존에 대한 위협을 받고 조금 자라서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해결하려면 우리는 어떤게 해야할까? 하는 의문을 가질때 처음 시작은 아주 미약했지만 지금은 아주 확고한 사회적기업, 목적성 기업으로 자리잡아준 약속의연필이라는 곳에 대한 책을 통해서 그 모습을 보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는 얼마나 얼만큼 더 성장을 해야 모두가 행복해질까? 금전적 성장만이 우리가 행복해지는 길일까? 고민하게 된다. 얼마전 읽은 원순씨를 빌려드립니다.를 보고 이책도 보면 정말이지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우리를 사실 충분히 모두가 생존을 할때 다 같이 살 수있는 환경조건까지는 우리 조상들이 해주셨는데. 아 살아계신분들도 계시지만 식민지와 6.25전쟁으로 인한 황폐화된 국토를 이렇게 이룩했는데 왜 우리는 스스로 자랑스럽지 못하단 말인가?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그러한 믿음과 신념을 가지게 되면 좋겠다. 조금씩 내 안에 잠자고 있는 내 잠재력과 신념이 깨어나도록 꾸준히 노력해야겠다. 그러려면 다양한 경험들 통해서 깊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만들 수 있게 도전해야한다. 동시에 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내 밥벌이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이사람은 사실 능력을 넘치게 갖추고있다. 나는 아직 내 미약함을 느낀다.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한다. 또한 주어진 문제들을 언제든 해결을 할 수 있는 힘을 계속해서 길어야 한다. 나는 내 분수에 넘치는 일을 만나면 자주 패닉상태로 들어간다. 어떻게하면 이상태에서 나올 수 있을지. 그리고 더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해결할지를 항상고민하고 물어야한다. 묻는것이 결코 내가 무너지지 않는 것임을 깨닫자.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 계속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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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점 스스로를 구원하는 삶


Q. 인상 깊은 구절(25개 이상/각 구절 당 번호와 쪽수를 기입해 주세요)



1. "자기 모습 자기가 보려고 밝게 타는 초는 없다. 자신의 주변 사물을 어둠 속에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양초다. 사람도 나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부변 사람들까지 행복하고 기쁘게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는 생각을 버리면 세상의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또 하나의 인ㅅ애이 눈에 들어옵니다. 남과 경쟁만 할것이 아니라 협동을 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불안과 두려움의 강박관념에서 탈출하면 가슴속에 고이 간직해둔 자신만의 꿈과 열정이 되살아납니다. -p6

2. "여러분, 판건사 되고 싶지요?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판검사가 되더라도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판검사라는 지위에 도취되어 인생의 겸허함이 사라지는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안락한 생활과 사회의 대접에 안주해 턱없는 자기기만에 빠지는 모습을 자주 접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어디 축하할 일입니까? 차라리 곡을 해주는 게 맞지요." -p26

3. 벽돌이 아니라 짱돌 같은 인재들을 키워야 합니다. 벽돌과 짱돌의 차이가 무엇입니가? 벽돌은 똑같은 모습으로 찍혀 나옵니다. 그러나 짱돌은 저마다 창조적인 개체입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개성 넘치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짱돌 같은 젊음, 헉슬리의 책 제목처럼 '용감한 신세계'를 찾아나서는 꿈꾸는 젊음을 저는 희망합니다.-p28

4. 불안감 때문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젊은 상상력을 가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불안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프랑스의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그것을 '사회적 관심'에 대한 갈망으로 봅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 세속적인 성공, 즉 부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주위로부터 사랑과 존중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서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반면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은 눈에 띄지도 않고, 퉁명스러운 대꾸를 들으며, 미묘한 개성은 짓밟히고, 정체성은 무시당한다고 여겨집니다. 사회적 관심의 결핍이지요. 고전경제학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도 <도덕감정론>에서 같은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인간이) 탐욕과 야망을 품고, 돈을 좇으며, 권력을 얻으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샐활필수품을 얻으려는 것인가? 그것은 노동자의 최저 임금으로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른바 삶의 조건을 개선함으로써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부자가 자신의 부를 즐거워하는 것은 세상의 관심을 끌어모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고, 애정을 쏟고, 공감 어린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맞장구를 치면서 알은체를 해주는 것이 부를 통해 얻는 모든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부끄러워한다. 가난 때문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가장 열렬한 욕구의 충족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애덤 스미스와 알랭 드 보통의 이야기를 취합해보면, 인간이 부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관심을 받을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한다면 스스로의 인격을 신뢰할 수도 없고, 자신의 인격에 따라 살아갈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두사람의 이야기는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현실적인 접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부와 지위를 통해서 사회적 관심을 얻는 것이 살아가는 목적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인간은 존엄해질 수 있을까요? 하나의 욕망을 또 다른 욕망으로, 하나의 불안을 또 다른 불안으로 바꿔가는 삶이 행복할까요? 결국은 가치의 문제입니다. 부와 지위를 통해 사회적 관심을 얻는 것이 성공이라는 생각은 어른들의 지배적인 가치입니다. 젊은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그 가치에 복종한다면 평생토록 불안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측정 가능한 크기로 작아진 채 불안에 얽매인 노예가 되어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p30

5. 공부든 여행이든 일이든 혼자서 부닥쳐봐야 인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상상력이 자라나고 아이디어가 풍부해집니다. 문득 올라오는 상처도 따지고 보면 온전한 자신을 마드는 디딤돌입니다. 진주조개는 제 살 속으로 파고든 이물질 때문에 상처를 입지만, 그 상처를 품어 결국에는 빛나는 진주를 만들어내지 않습니가? 그래서 저는 진로를 묻는 젊은이들에게 가급적 삶의 가장자리를 찾아가라고 권합니다. 부와 지위라는 세속적 기준에서 보았을 때 변방이 어딘지 주목하라고 당부합니다. 삶의 가장자리에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변방에서는 늘 지배적 가치를 극복하는려는 창조적 가치가 피어납니다. 그곳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가슴에 새기고 상상의 힘을 한껏 키워 뚜벅뚜벅 중심으로 행군하세요. 그래도 실해가 두렵다고요? 실패 좀 했다고 감옥 갑니가? 아니, 감옥 가면 또 어떻습니가? 거창고등학교의 직업선택 십계명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택하라. 4.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다투어 모여드는 곳에 절대 가지 말라. 6장례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라.-p35

6. 특히 네이버와 함께한 '해피빈'은 나눔을 쉽고 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내거나, 카페나 블로글에 글을 올릴 떄 나눔의 의미를 공유하면 사이버 콩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콩을 모아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거나, 홀로 사는 노인들을 돕거나, 환경을 살리는 데 쓸 수 있습니다. 일상이 곧 나눔이 된 것입니다. -p41

7. 그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희망이 아닐까요?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 중편소설 <고향>에서 내린 희망의 정의도 제 생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희망은 원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희망은 길과 같은 것이다. 본디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p51

8. 부모님 세대는 30년 전의 낡은 기준으로 직업을 규정합니다. 본인이 그동안 밥 굶고 눈치 보며 세월을 견뎌왔기에 자녀는 공무원, 판검사, 대기업 등 돈 되고 권위 있는 직업을 택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이나 날 것처럼 근신에 잠깁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30년 후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나가도록 기회를 줘야합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스스로 묻고 고민해서 답을 내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생각하는 '직업 선택 십계명'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라. 2. 남들의 신선에 갇히지마라. 3.실패를두려워말고도전하라. 4.잡종과돌연변이가 희망이다. 5. 나누면 커지고 버리면 얻는다. 6. 지역으로 가서 행복을 일구라. 7.문화가 병든 세상을 구원한다. 8 스스로 소통의 플랫폼이 되라. 9.내일의 눈으로 오늘을 바라보라. 10. 젊은 상상력으로 세상을 바꾸라.

9. 자, 이제 좀 감이 잡히나요? 고민의 시간이 끝난 다음에는 자신의 선택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현장으로 달려가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그 소망이 실현될 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p61

10. 민들레출판사가 처음으로 선보인 책은 <학교를 넘어서>였습니다. 이 책은 '학교 비평서'입니다. 학교가 아이들의 인간다운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출판사로 전화해 고민을 털어놓는가 싶더니 어느새 회사 문지방을 넘는 발길이 잦아졌습니다. 이런 호응이 정기간행물<민들레>의 창간으로 이어졌습니다.-p67

11. 과거 소두율 교수는 경계인이라는 이유로 소중하게 지켜온 양심과 철학을 매도당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경계를 해체하는 사람들이 생각의 지편을 넓히고 세상을 변화시켜온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어른들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 삶의 가장자리에 선 젊은이들에게 이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비록 네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p70

12. 제가 기업에서 강연을 할 때마다 잊지 않고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물건과 함께 영혼을 파세요!"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인 '바디샵'은 전쟁 반대, 인권 종중, 공정무역, 동물실험 금지 등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회사의 목표로만 보면 무슨 시민 단체 같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전 세계로부터 벌어들이는 돈은 어마어마합니다. 지구촌 고객들이 이 회사 제품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품질 제품과 함께 영혼을 팔기 때문입니다.-p75

13. 지금 이 순간 기업가를 꿈구는 젊은이들에게도 권고합니다. 영혼을 파는 기업이 성공합니다. 착한 기업이 장수합니다. 도덕군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도전 정신과 함께 사회적 책임을 늘 염두에 두라는 것입니다.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는 생각으로는 절대 성공한 기업가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신뢰만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p77

14. 오늘날 의료 관광은 중요한 관광 분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의료관광 하면 일반적을 ㅗ현대적인 병원 시설에서 첨단 의료 서비스를 받는 장면만을 연상합니다. 저는 안덕리처럼 한적한 시골에서 아름다운 풍광과 도양적인 치류를 즐기는 것이 의료 관광의 본질에 들어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슬로라이프, 슬로푸드의 항연도 덤으로 누리면서요.-p82

15. 도시 사람들이 농촌에 오면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어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골에서만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정입니다. 그것을 체험 프로그램에 담기로 했습니다. 다랭이 마을의 체험 프로그램은 독특한 색깔이 있습니다. 농촌의 작고 사소한 일상을 버무려 도시 사람들에게 성큼 다가섭니다.-p83

16. 1994년 공동육아 모임으로 시작된 성미산 마을 공동체는 주민들이 조합을 구성해서 마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을 고민한 부모들은 대안학교를 세웠고, 조리사 경력이 있는 주부들은 공동출자를 해서 반찬가게를 만들었습니다. 마을에는 두레생협과 극장이 있고, 대안화폐인 '두루'가 통용되기도 합니다. 15년 넘는 시간 동안 주민들은 60여 개의 온라인과 오프라인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단체에 참여하는 주민들만 1000명이 넘습니다.-p85

17. 문화예술로 세상을 바꾸는 일은 외롭고 고달픈 일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를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술과 음악을 전공한 젊은이들조차 자신의 굼을 펼치기보다 디자인 회사나 입시 학원 취업에 매달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젊은 꿈을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각박한 삶으로 가득합니다. 1년에 한 번 전시회를 관람하거나 음악회를 볼 여력이 없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이 척박한 땅에 꽃 하나 피웠다면 설령 숲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시골 마을의 폐교를 주목해보세요. 낡은 재래시장의 골목을 거닐어 보세요. 회색 도시의 녹슨 놀이터에서 맑은 웃음을 터뜨리는 남내를 찾아보세요. 그 지역과 삶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일이야 말로 한여름 소나기같이 시원하고 짜릿한 즐거움이 아닐까요?-p94

18. 그렇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던 것을 반짞이는 아이디어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능력이 최고의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창의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기발한 상상력을 가진 젊은이들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에 희망제작소에서 만난 대학생 과고 회사 'ADDLE 그룹'이 그렇습니다. 그룹이라고 하면 대개 노래패를 연상하는데 ADDLE 그룹은 광고에 도전하는 젊은 대학생들의 모임입니다. 사실 대학생 광고 동아리는 많습니다만 대개는 스스로 홍보하고 마케팅하고 프로모션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ADDLE 그룹에는 시각디자인과 학생, 사진작가 지망생, 경영학도 등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대학생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그런 애로와 장벽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중략-ADDLE 그룹은 홍보물, 동영상, 웹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적을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하는 일만 놓고 보면 일반 홍보 대행사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친구들에게 NPO를 위한 홍보 대행 사업도 펼쳐보라고 조언했습니다. 사실 NPO 가운데는 홍보나 마케팅에 문외한인 곳이 많습니다. 큰돈은 안 되어도 지속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고요. 또 누가 압니까? 열심히 하다 보면 정부나 지자체의 공익광고도 맡을 수 있잖아요? 사실 공익광고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는 아직 별로 없거든요. 아무튼 이런 용감하고 창의적인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꾸는 일에 더 많이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만 해도 즐겁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요.-p97

19. ADDLE 그룹이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라면, '하자센터'는 창조적인 젊음을 키워내는 양성기관입니다. 지난 2000년에 설립했는데, 정식 명칭은 서울청소년직업체험센터입니다. 초창기에는 음악, 영상, 디자인, 웹, 시민 문화라는 다섯 개의 스튜디오를 갖추고 10대 청소년들을 도제식으로 교육했습니다. 그 친구들이 지금은 2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하자센터는 처음에 10대 청소년들이 사회적 나눔을 체험하게 하고자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학에 가지 않으면 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생각이 깨어나갔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사회적 기업의 창업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자센터가 작업장학교를 만들고 비인가 학교로 남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p98

20. 시문운동도 마찬가기입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없는 시민운동은 감흥을 줄 수 없습니다. 재미있어야 합니다. 신선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민이 모이고 의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시민에게 영감을 주고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축제! 그것이 시민운동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소통 방식입니다. 1인 시위는 참여연대가 개발한 새로운 시위 문화였습니다. 지난 2000년 참여연대는 국세청이 삼성의 편법 상속을 묵인한 것에 대해 항의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국세청이 세 들어 있던 건물에 외국 대사관이 있어서 100미터 내에서는 시위나 집회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지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연구했습니다. 법률이 정한 집회 및 시위의 요건이 눈에 밟혔습니다. 두 명 이상이 모여야 집회 및 시위가 성립된다고 나와 있었스니다. 그러니까 1인이 시위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뜻이지요. 결국 참여연대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국세청 앞에서 시위를 하기로 했습니다. 언론은 신기해서인지 1인 시위를 대서특필했습니다. 마침내 참여연대는 국세청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1인 시위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이었습니다. 발상을 전환하면 이처럼 호응이 커집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라야 주목을 받습니다. 창의성이 세상을 바꾸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신홍익인간의 시대를 이끌고 나갈 창조적인 젊음이 자꾸만 보고 싶어집니다.-p100

21. 코인 스트리트의 예에서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변화의 키워드를 몽땅 읽어낼 수 있습니다. 먼저 통섭입니다. 주민들은 공무원과 기업인, 시민사회 활동가의 역할로 여겨지던 일들을 스스로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정부와 기업, NPO의 경계를 허물고 CSCB라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행복한 마을을 일궜습니다. 다음은 신뢰입니다. CSCB는 착한 기업입니다. 해바라기처럼 개발이익을 좇지는 않았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을 펼쳐나갔습니다. 창고를 허문 자리에는 공원이 들어섰고, 임대 수익은 가난한사람ㄷ릉르 위해 썼습니다. 공동체 주민의 신뢰는 나날이 굳건해졌습니다.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불어 공동체가 경제 발전과 사회 통합을 함께 이룰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21세기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로서, 경영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으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단 코인 스트리트뿐만이 아닙니다. '아쿤 공동체 교육서비스'등 협동조합형 사회적 기업들이 세상을 바꾸며 약진하고 있습니다. 이제 코인 스트리트는 영국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이 코인 스트리트를 보려고 몰려옵니다. 아름다운 친수공간과 현대적인 쇼핑 공간이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입니다. 마을 주민들은 코인 스트리트의 역사와 비전을 공유하고자 사진전 등 다양한 행사를 엽니다. 이 모든 것이 마을 주민들의 창의성이 빚은 결실입니다. 발상을 바꾸니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삶의 질을 높이고 경제 발전과 사회 통합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습니다. 행복한 마을이 최고의 경쟁력이었습니다. 모두에게 헌신하고 기여하는 사회적상상력입니다. 여럿이 함께 그리는 미래가 아름답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키워드 다섯가지입니다. 통섭, 신뢰, 공동체, 문화, 창의성이 변화의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비단 코인 스트리트뿐만이 아닙니다. 지구 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트렌드, 변방에서 중심으로 행군하는 시대의 흐름이 모두 여기서 출발하고 있습니다.-p104

22. 변화의 흐름을 예의 주시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직시해야합니다. 통섭, 신뢰, 공동체, 문화, 창의성. 이 변화의 키워드들을 각자가 처한 현실에 맞게 재구성해보기 바랍니다. 그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성찰해보기 바랍니다. 한국 이라는 좁은 우물을 갇혀서도 안 됩니다. 저는 인터넷 즐겨찾기에 뉴욕타임스나 영국 가디언를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뉴욕 타임스의 헤드라인은 국제 뉴스가 장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미국의 경쟁력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세계를 보며 일할 수 있도록 훈련받는 것입니다. 한국의 젊음이들이 뒤질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정보통신 강국 아닙니까? 더 멀리, 더 넓게 내다보세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무한대입니다.-p108

23. 하버드 법대 도서관의 법령 정보는 DB에는 미국의 모든 판례가 24시간만 지나면 올라왔습니다. 뉴욕타임스 DB도 공짜로 볼 수 있었고요. 법률에 관한 책, 논문, 판례, 기사가 아주 체계적으로 축적되어 있었습니다. 사회적 지혜의 시스템이랄까? 이것이 미국의 경쟁력이구나 생각하면서 열심히 자료를 뽑았습니다.-p112

24. 다산 정약용 선생은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등 300여 권을 저술했습니다. 저도 그런 곳으로 유배를 떠나 원 없이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나마 행복할까요? 제 책과 자료들은 지자체에서 안 쓰는 정미소 같은 곳을 빌려주면 시민운동 전문 도서관을 ㅗ꾸미고 말입니다. 누가 저 좀 유배 보내줄 분 안계신나요?-p114

25. 참여연대는 제가 1993년 영국,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새로운 사회운동을 모색하는 학자, 변호사, 운동가 들과 함께 설립했습니다. 당시 민중운동 진영에서는 개량적인 운동이라며 폄하했지만, 돌이켜보면 참여연대는 참으로 많은 것을 이룩했습니다. 1994년 국민생활최저선 운동, 1995년 사법 개혁운동, 1997년 작은 권리 찾기 운동, 1998년 소액주주 운동, 1999년 예산 감시 정보공개 운동, 2000년 부적절한 국회의원 후보자에 대한 공천 반대 및 낙선 운동, 2001년 이동통신 요금 인하 운동, 2002년 대선 정치 자금 감시 운동 등 한국 사회의 변화를 앞장서 일궈냈습니다. 참여연대는 특히 법과 제도를 바꿔나가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핮가들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연구해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변화사들은 그 자료를 바탕으로 소송과 고발을 담당했습니다. 운동가들은 그것을 사회적 어젠다로 만들고 현장에서 실행에 옮겼습니다. 돌이켜보면 참여연대의 역사가 곧 시민운동의 연사라고 할 만큼 수없이 고발하고 오지랖 넓게 참견했습니다. 오죽하면 별명이 고발연대, 참견연대였겠습니까? 하지만"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라는 슬로건처럼 참여연대는 시민의 열망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빛고 소금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p118

26. 자신의 발칙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듬의 달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세상을 바꾸려는 NPO가 아름다운돈을 모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첫걸음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요청하는 것입니다. 물론 만만한 일은 아니겠지요. 때로는 거절도 당하고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p124

27. 그것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한순간 폭발합니다. 700명에 불과하던 참여연대 회원 수가 그로부터 몇 달만에 만 명을 넘어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말콤 그래드웰의 저서 <티핑포인트>에 따르면, 작은 일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다가 대중의 요구와 맞아떨어지는 순간 거대한 트렌드가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타키투스가 쓴 로마 역사에 단 한 줄밖에 언급되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초창기 교회의 헌신적인 노력이 시대 흐름과 맞아떨어지는 순간 세계적인 종교의 구세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여연대도 꾸준한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티핑포인트'를 잡은 것입니다.-p125

28. 홀로 사는 여성이 어느날 우편함을 뒤적거리다가 어느 단체의 홍보물을 발견합니다. 매 맞는 여성을 위한 쉼터에서 보내온 것인데, "당신이 보내주는 10달라가 매 맞는 엿어을 웃게 한다"라는 카피가 눈에 밟혔습니다. 여성은 이단체에 후원회원 등록을 하고 매월 10달씩 송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자 편지가 한 장 날아왔습니다. 쉼터를 이전하려고 하는데 고액의 기부자가 필요하다는 내용 이었습니다. 여성은 고민 끝에 1만 달러를 내놓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이 단체가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전이 끝나자 새로운 쉼터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현장을 둘러보고 자신의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확인한 여성은 뿌듯한 마음에 운영위원직을 수락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단체가 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한 여성은 그 후 의사결정권을 가진 이사가 되었습니다. 이 여성은 단체의 크고 작은 사업을 직접 경영하며 새론운 인생을 살았씁니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순간이 오자 자신의 모든 재산을 이 단체에 남긴다고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은 홍보물로 시작한 이연이 유산 기부로 이어진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이 모든 과정의 수익률을 계산하고 매뉴얼에 따라 체계적으로 모금 활동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모금을 전문으로 하는 재단과 기관들이 NPO가 세상을 바꾸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었습니다. 일과 모금의 이중고 속에서 힘겨워하는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p128

29. 아름다운 모금을 위한 10대 강령 1.Please Ask! 제발, 요청하라. 준비된 기부자는 의외로 많다. 2.거절은 병가지상사.거절에도 상처받지말라.3고기도먹어본사람이 먹는다. 기부한 사람이 또 기부한다. 4.기부 이후가 중요하다. 감사표시, 사후 보고에 정성을들이라. 5.참여가 돈이다. 보람과 감동이 넘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라. 6.유리알처럼 투명하고 또 투명하라. 7.기부와 모금도 아이디어가 생명이다. 8.라이프플래너가 되어 팽생에 걸친 기부를 설계하라. 9.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먼 머래를 보고 대하라. 10.스스로 그 귀한 돈을 잘 쓰고 있는지 묻고 또 물어라.-p132

30. 참여연대는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세상의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회원은 3년이 지나도록 70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처음에는 미약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해나가면 됩니다.-p136

31.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단체와 그 단체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꿈이고 비전입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열정과 헌신입니다. 이것들은 마치 꿀벌들을 유혹하는 꽃이나 다름없습니다. 향기로운 꿈과 비전은 소리 없이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이렇게 하여 희망제작소에는 천하의 인재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은퇴자, 주부, 대학생, 청소년 들이 곳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관광공사 기획관리실장을 지대나가 지역 홍보 센터 투자자문관으로 오신 분도 있고, <한국일보> 주필을 맡다가 뿌리 센터 전문위원이 되신 분도 있습니다. 거꾸로 희망제작소 객원연구위원으로 있던 장태평 선생님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 가셨군요. 희망제작소는 그런 곳입니다.사람을 낚는 어부를 위한 십계명 1.모든 조직은 무에서 시작한다. 처음이 미약하다고 실망하지말라.(자신감!!) 2.명분과 대의가 중요하다. 그것은 사람을 끌어모으는 자석과 같다.(명분) 3.조직은 사람과의 관계가 기본이다. 그 관계를 만들고 확장하라.(관계) 4. 한 사람을 감동시키라. 그 한 사람이 1개 사단을 거느리고 온다.(감동) 5.작은 정성이 아름답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작은 정성이다.(정성). 6. 재미있고 유익한 광장을 만들어라. 시민학교가 정답니다.(시민학교) 7. 지속적인 만남을 보장하는 회원 모임이 관건이다.(회원 모임) 8.회원에게 감투를 주라. 감투는 일할 의욕과 동기를 부여한다.(감투) 9.가까이 있는 간사를 챙기라. 간사들이 세상을 엮는다(간사). 10. 널리 인재를 구하라. 자원봉사자를 위해 자리를 준비하라. (자원봉사자)-p139

32. <내 인생을 바꾼 스무 살 여행>이라는 책을 보면 '10:90의 법칙'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계획을 세우는 데 투자하는 처음 10%의 시간이 그 계획을 실천하는 데 투자하는 90%의 시간을 좌우한다는 내용인데, 저 역시 저자의 생각에 공감합니다.-중략- 그때 얻었던 교훈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절대 처음부터 답안을 쓰지 마라. 둘째, 설사 한 과목 망쳤다고 해서 다른 과목까지 포기하지는 마라. 그래서 두 번째 응시했을 때는 시험지를 받은 후 다른 사람들이답안을 작성하는 광경을 2-3분 즐기는 여유를 가졌습니다. 그런 다음에 눈을 감은 채 답안을 어떻게 쓸까 구상하고 기본 골격을 메모했습니다. 물론 이 10분의 여유와 준비 시간은 사법고시 합격으로 이어졌고요. -p142

33. 결국 매킨지 컨설턴트 서너 명이 주말마다 돌아가며 자원봉사를 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때 배운 매킨지의 세 가지 원칙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첫째, 3개월 안에 고객이 요청한 컨설팅을 마친다. 둘째, 문제를 최대한 잘게 쪼갠다. 섯째, 전문가의 의견과 상호 토론을 통해 진실에 접근해간다. -p145

34. 하지만 최종적으로 누구를 설득할 때는 '한 페이지 제안'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획안도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매킨지 컨설턴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동안 회사의 CEO에게 모든 컨설팅 내용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의사결정권자일수록 일분일초를 바삐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p146

35. 좋은 기획안을 만드는 열 가지 요령 1.사전에 많은 지식과 정보를 축적한다. 2.유사 사례와 경험을 보고 듣고 배운다. 3.전문가와 선배들에게 조언을 듣는다. 4.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전면에 내세운다. 5. 그림과 도표, 동영상을 적극 활동한다. 6.상사 및 동료와 피드백 과정을 가진다. 7.처음부터 본격적으로 만들고 수정과 퇴고의 과정을 거친다. 8.다른 사람의 좋은 기획안을 모아두고 평소에 연구해둔다. 9.복잡함보다는 단순함, 이론보다는 실용성을 지향한다. 10. 엄정하고 개관적인 평가를 통해 목표와 계획을 수정한다.-p148

36. 7. 훌륭한 카피가 브랜드를 만듭니다. 아무리 명분이 훌륭하고 비전이 그럴싸해도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하면 '헛방'입니다. 참여연대는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라는 슬로건으로, 아름다운 재단은"1% 나눔"이라는 카피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일단 시대의 고삐를 틀어쥔 다음 감각적이고 설득력 있는 카피를 앞세우세요.-p156

37. 2000년 8월 마침내 아름다운재단에서 기금전달식이 열렸습니다. 재단에서는 기부자의 뜻을 기리고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고자 '씨앗의 나무'에 할머니의 마음을 담은 잎사귀를 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나눔의 잎과 펜을 받아 든 할머니는 미동도 않은 채 눈만 껌뻑이더니 어렵게 입을 뗐습니다. "나는 글을 쓸 줄 모르는데 .......""할머니 괜찮아요. 이름은 쓰실 줄 알잖아요. 그것으로도 충분해요." 그러자 할머니는 또박또박 천천히 이름 석 자를 써나갔습니다. 마치 할머니의 전 인생이 그 세 글자 속에 고스란히 새겨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씨앗의 나무에 감동적인 잎사귀가 달리자 우리는 할머니의 연세만큼 장미꽃 다발을 안겨드렸습니다. 하지만 장미꽃이 아무리 화사한들 꽃보다 아름다운 할머니의 숭고한 뜻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p163

38. "많은 재물을 쌓아서 자식에게 물려준들 자식이 반드시 잘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리라 음덕을 쌓아서 자손을 위해 계책으로 삼으라." 많은 부모가 부자 아빠, 부자 엄마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자식을 위해서이지요. 그러나 자식에게 부를 물려주는 것은 오히려 자식을 망치는 길입니다. 부가 아닌 나눔의 정신을, 나눔의 습관을 물려주세요. 세상을 아름답게 바꿔주세요. 그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이 아닐까요?-p167

39. 소셜 디자이너에게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바꾸고 싶은 대상이 뚜렷합니다. 둘째,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섯째, 꿈을 현실로 바꿔내는 열정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빈 곳이 있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 있습니다. 그곳이, 그 길로 소셜 디자이너의 블루오션 입니다.-p169

40. 제 꿈은 이렇게 바쁘게 일하다가 과로사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여저히 희망보다 절망이 더 많이 흐릅니다. 그말은 시민운동가가 할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렇게 할일 많은 세상에 태어난 것에 감사합니다. 제가 바쁠수록 절망이 희망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질 테니까요. 지금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보고 이만하면 성고이라고 이야기하느 ㄴ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가야 할 길이 멀었는데 내가 성공했다고요! 세상의 좋은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가 성공해야 저도 성공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난합니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가야겠지요? 세상 곳곳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이 저와 함께해주니 말이지요.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곱 가지 미덕 1. 고난과 시련을 즐긴다. 2. 자신을 버리면 세상을 얻는다. 3.남들이 가지 않는 길만 골라서 간다. 4.상상력넘치는 아이디어로 승부한다. 5.아름다운 관계가 위대한 마음을 낳는다. 6. 사회의 성공과 자신의 성공을 일치시킨다. 7.다 이루었으면 다시 짐을 싸서 떠난다.-p208

41.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벽면을 따라 상상력 넘치는 아이디어들이 빛을 발하며 세상을 향해 변화의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p228

42. 희망제작소에는 '백년달력'이라는 것이 걸려있습니다. 2001년부터 2100년까지 100년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이 달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면 이상하게 뭉클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차피 2100년까지는 살지 못할 텐데 왜 이런 달력을 만들었을까요? 인간의 육신은 죽어도 그 정신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백년달력을 볼 때마다 더 열심히 해야곘구나 하고 다짐을 합니다. 지금 우리가 뿌리는 희망의 씨앗도 처음에는 미약해 보이지만 100년 후에는 아름드리나무로 커 있을 테니까요. 희망제작소는 오늘도 100년 후 좀 더 살맛 나는 세상을 내다보며 즐겁게 희망을 만들어나갑니다. 흔들리지 않고 정직하게요. 희망의 나무는 절대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발칙한 상상력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을 지닌 좋은 사람들이 함께해야 합니다. 당신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의 단서를 찾는 당신이, 지금 이 시간 고개 들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여러분이 바로 용감한 신세계의 주인입니다. 그 신세계로 가는 우주기관차에 히치하이커가 되어보시지 않을래요?-p248



Q. 이 사람처럼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고,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라면 어떻게 극복 할 수 있을까?


본인에 신념과 대의를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가장 어렵다. 마음뿐만아니라 지금 실제대로 서울특별시 시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박원순 시장을 보면 이사람이 사람인가? 기계인가? 하는 질문이 저절로 나온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서 나도 내 신념과 대의를 통해서 살 수 있을까? 사실 책을 읽으니 NPO? NGO? 비영리기관 에 대해서 관심이 가게된다. 얼마나 지금까지 오는길을 만들고 헤쳐나온 것을 생각한다면 수많은 공부를 해야하는구나 싶다. 극복하려면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공부를 끊임없이하고 피드백을 받고 출사표를 던지고 바로 하는 방법뿐일듯 싶다. 



Q. 이 사람에게 닮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


일, 놀이, 사랑, 연대를 한방에 해결해버린 그에 탁월한 능력은 닮고 싶다. 1/100이라도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만들때 참고만 해도 많은 도움이 될듯 싶다. 먼저 나온 다양한 것들을 보고 모으고 분석하고 새로이 창의적으로 개발하는 그 능력은 정말 타에 추종을 불허한다. 책상머리가 아닌 모든것이 현장에서 답이 있다는 것을 믿었고 그 믿음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사람은 행동이다. 그렇다. 사실 가장 배우고 싶은것은 실행력이다. 나도 내가 할 수있다고 믿고 하고 싶다. 아니 한다. 고 이제 믿자. !! just do it!



Q. 이 분야에 종사하고 싶은가? 그 이유는?


비영리기관에 관해서는 직접적으로 아직은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하지만 꾸준히 연대하기 위해서 기부금은 꾸준히 납입중이다. 나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서 세이브칠드런에 매달 3만원에 기금을내고있다. 얼마전에 신생아 살리기 프로젝트인 모자뜨기에도 도전했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고 내가 만나지 못하는 사람에게 희망이 된다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앞으로도 시간과 돈이 허락하는한 꾸준히 봉사를 하고 싶다. :)


Q. 감상평


소셜디자이너 박원순, 시민운동가 박원순, 본인은 쓰지않는 변호사 박원순, 한사람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의를 위해서 살 수 있도록 이끌었을까? 과거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할 때 순간 스쳐간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사는 곳과도 상관없고 그가 만들었던 아름다운가게는 몇 번 들렸었지만 내가 필요한 것은 없었다. 그렇게 잊고 지냈는데 이번에 조금은 제대로? 만났다. 독서의 즐거움을 통해서 그에 삶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본인은 편안하고 안락하고 보장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것들을 보다 더 중요한 것을 공부하고자 유학을 가고 입국 후 우리나라를 바꾸기 위해서 수많은 단체를 만들고 활동을 이끌었다. 그가 아직은 내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뜻은 내 마음에 젖어들고 있다. 왜 우리가 연대에 중요성을 까먹고 살았는가? 보다 더 좋은 세상을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하루하루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러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먼저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 비슷한 단체를 찾는다. 그리고 어떤일을 하는지 지켜보거나 약간의 기부금을 낸다. 그리고 기달린다. 행동을 계속해서 본다. 그러면서 앞으로 같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면 자원봉사를 시작한다. 자리가 조금씩 늘어나면 내가 할 수 있는일을 더욱 더 도와준다.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한 사람에 시민운동가가 되어가는 것이다. 하루하루 조금씩 차분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삶에 대한 생각과 세상에 대한의미를 세기며 살아가는 삶이란 아름답다. 그러기 위해서 내 능력과 실력을 키우자.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잘하는가? 무엇에 행복해 하는가? 스스로를 보고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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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공학][디자이너][이노베이터][독서의즐거움][열정대학][2016-2학기][상상디자인너삶을설계하다.]




평점 9점 다이나믹한 삶 그리고 디자인

Q. 인상 깊은 구절(25개 이상/각 구절 당 번호와 쪽수를 기입해 주세요)
  1. 상상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상상은 사람들이 느끼는 욕구를 재빨리 파악하고 어떻게 그것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해결 책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머릿속에서의 그림 그리기로 끝내고 만다면 그것은 공상이 된다. 허망한 꿈처럼 그저 사라지는 것이다. 욕구를 재빨리 파악하고 그것을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상상을 통해 나오는 아이디어의 힘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회장 빌 게이츠는 그의 저서 미래로 가는 길에서 그의 회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남에게 빼앗길 것을 두려워하던 성격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기가 어떤 새로운 생각을 했을 때 남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남들이 자기보다 먼저 그 생각을 실현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빠지곤 했다. 그래서 빌 게이츠는 가장 빠른 시간안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던 것이다. 혁신적인 발명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나아가 시장에 내놓아 물건이 팔리게끔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상상을 머릿속에 가두어놓기만 하면 아무소용이 없다. 그것을 끄집어내어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로 만들어야 한다. 디자인의 시작은 바로 여기서부터이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는 것, 땅 속에 묻힌 아이디어라는 원석을 캐내어 갈고 닦아 보석상 진열대에 올려놓는 것이다. 땅 속에 있는 원석, 즉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만으로는 돈이 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상상과 공상은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 p19
  2. 이 프리즘 디자인은 사실 개발 과정에서 진통이 많았다. 현행 부품들의 사이즈와 배치를 모두 고려해 디자인했음에도 실제로 전혀 새로운 형태이다 보니 엔진니어들이 풀어내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당시 밤을 새우며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던 레인콘 엔지니어 팀장은 몇 번이나 경영진을 찾아가 제품 사이즈를 단 1mm라도 늘려줄 수 없냐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레인콘 경영진의 대답은 할결같았다. "꾸겨 넣어!"- p28
  3. 즉,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의 진짜 이슈는 누가 창의적인 스토리를 '먼저' 만들어낼 수 있는냐 하는 데 달려 있다. 급변하는 디지털 신세계의 높은 파도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미디어랩의 네그로폰테 이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또는 알고 있따고 믿는 것은 앞으로 다 틀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지금의 시기는 기회이다. - p37
  4. '목걸이에서 이어폰이 바로 빠져나오면 안 될까? 목걸이 안에는 물론 이어폰 줄이 들어갈 만한 충분한 공간도 있지 않은가. 그래, 기왕 목에 걸고 다닌다면 정말 패션 아이템, 진짜 목걸이 같은 MP3 플레이어를 만들어보자.'- p38
  5. 구태여 말을 하자면 25년 동안 내가 리서치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리서치라는 원론적인 프로세스대신, "일상에서 출발하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단서는 '누구나 보는 것을 보되, 아무도 생각치 못한 생각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아무도 생각치 못한 생각을 해내는 데 있어 일종의 팁을 제공하자면, 그 대상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일상에서 모든 사물과 사용하게 될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출발한다면 남과 다른 아이디어가 신기하게도 잘 떠오른다. 평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모든 정성을 다 쏟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함은 물론이고 자신과 생각이 다를지라도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끌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짜내기도 한다.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누구나 새로운 아이디어로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부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아이디어는, 또 디자인은 우리 삶 속에 숨어있다. 마치 보물 찾기 놀이처럼. 우리는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 p42
  6. 진정한 신상품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디자인 의뢰를 받는 시점보다 훨씬 이전에 그 분야에 경험과 열정을 갖고 있는 디자이너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디자인 퍼스트 이론이 시작된 것이다. 예컨대 모바일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관련 삼품에 열정을 갖고 수많은 제품을 디자인하게 되면 디자인너는 그 삼풍들이 차지하는 세계적 시장의 흐름을 읽게 된다. 많은 경우, 제조업체의 공식 상품기획서가 작성되기 이전에 디자이너의 상상력은 신제품의 개념을 찾아내게 된다. 이렇게 디자인 회사에서 제작한 가상적 신상품이 제조업체에 가면 종종 제조업체의 기술진과 상품기획팀에게 거꾸로 더욱 혁신적인 영감을 줄 수도 있다. 그들이 생각치 못했던 엉뚱하면서도 신선한 아이디어 상품들이 디자이너 머릿속에서 쏟아져나오는 것이다. 물론 이중에 대박상품이 숨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p47
  7. 계속적인 혁신 프로세스를 통해 뒷덜미가 잡히지 않는다면 기업의 이윤과 성장은 지속될 것이다.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A그룹 속의 기업들은 B그룹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방식 중 하나가 '디자인'이라는 점이다. 바로 디자인의 기본 원칙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찾아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기 떄문이다. 옆집이 성공했다는 이유로 비슷하게 시작한 비즈니스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혁신적 생각에 승부를 거는 비즈니스는 부가가치와 수익 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낼것이다.- p52
  8. 그래서 나는 열여섯 살에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곤 한다. 디자이너로 말이다.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디자인에 눈뜨고 디자인의 힘을 깨닫는 강렬한 경험 없이는 어느 누구도 평생을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만족하며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다른 직업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직업에 대한 강렬한 열정과 의지를 느낀다면 그는 바로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느 ㄴ일이지만 아무에게나 일어날 수 없는 일. 바로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일 것이다.- p56
  9. 대학교 1학년, 7월 1일에 나는 내 첫사랑을 만났다. 교내 전시회기간이었는데, 학교 커피숍에 못 보던 단정한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나는 주저 없이 그 여학생에게 뚜벅뚜벅 걸어가서 말을 걸었다. 그것도 영어로 말이다. "What's your name?" 그 여학생은 영어로 이름을 물어본 내가 좀 재미있어 보였는지 내가 초대한 저녁 연주회에 왔다. 그날은 나와 민기가 만든 듀엣 '도비두(당시 여학생들이 붙여준 이름. '도깨비 두 마리'라는 뜻이다)'가 YWCA대학생 클럽인 '청개구리'가 주최한 행사에서 공연하는 날이었다. 그날도 대학생들이 강당 마루에 가득 앉아 있었다. 나와 민기는 '아침이슬'등의 노래를 불렀다. 고연이 끝나자 주최 측에서 커다란 곰인형을 주었다. 나는 곰인형을 받자마자 강당 뒤쪽에 앉아 있던 그녀에게 걸어가 품에 안겨주었다. 한가지 일에 빠져들면 치열해지는, 약간은 편집증적인 면을 갖고 있떤 나는 매일 그녀를 만나 내 사랑을 확인했다. 특별히 인상적으로 남을 만한 데이트를 즐긴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잠시도 그녀를 내 곁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농담처럼 우리가 처음 만난 7월 1일에 결혼하자고 말했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무슨 배짱으로 마치 예언자처럼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곘디만, 만난지 5년째 되는 7월 1일에 그녀와 나는 명동성당에서 실제로 아내와 남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 말을 걸고 싶지만 참고만 있었다면 나는 결코 그 여자의 남편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젊음의 특권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사람을 사는 것!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해야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인생도 즐거워지고 소비자들의 생활도 풍요로워진다. - p63
  10.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디자인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커뮤니케이션 역할을 한다. 소비자가 처음 만나는 것은 어떤 브랜드라는 무현의 이미지가 아닌 상품이나 그 이미지를 드러내는 각정 시각물일 것이다. 소비자와 기업 사이는 엄청난 물량의 디자인이 메워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비자의 시선을 끌거나 인정받고 싶을 때 잘된 디자인 만큼 멋진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없다.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멋진 디자인이라면, 소비자에게 오랜 여운이 남는 감동을 줄 수 있다.- p68
  11. 편안하고 행복하게 느끼는 공간으로는 우리집 거실과 함께 팔로알토 이노디자인 사옥의 회의실을 들 수 있다. 회의실에는 밖으로 난 창이 없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이 스크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로비와 회의실 사이에는 특수유리를 설치하여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지만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있게 했다. 스튜디오는 전부 열린 공간인데 회의실만은 의도적으로 닫힌 공간으로 꾸몄다.회의실은 방음이 잘 되어 있고 천장이 특히 높다. 아이디어가 막히지 않고 하늘까지 무한히 뻗어나갈 것 같은 생각에서 그렇게 만들었다. 이노디자인의 아이디어의 한계는 하늘 끝일 뿐,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믿음에서였다. 회의실에는 '세상에서 제일 편한의자'로 정편이 나 있는 허먼 밀러 사의 '애론 체어'가 놓여 있다. 좋은 다지인 아이디어는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자유로울 때 샘솟기 때문에 들여놓았다. 우지립 역시 편안하게 일상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손님들을 초대하면 내가 직접 디자인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나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디자인은 직접 하지않았지만 제 취향에 맞는, 정말 구하기 힘든 집을 '직접' 찾아내기는 했죠." 우지립은 어느 젊은 부부가 2년간 열심히 설계해서 지었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우리에게 팔고 떠났다.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을 갖고 디자인한 집은 멋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행복한 공간을 제공한다. 우리 주위에는 사람의 즐거움을 주는 좋은 디자인이 아주 많다. 마음에 꼭 드는 옷을 입고, 편리하고 멋진 차를 타고, 아늑한 카페에서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꼐 즐길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겠는가? 일상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 우리집 거실의 의자처럼 일상을 편안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디자인이다.- p73
  12. 나는 그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디자인은 자신감을 파는 일'이라는 그의 말이다. 사실 디자인을 결정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디자인은 상품으로 만들어지기 전까지 무형이기 때문이다. 상품화하기 이전에 앞으로의 시장 반응을 예측하고 심도 있는 디자인 방향을 설정해 고객 회사를 설득시키려면 우선 디자인너 스스로 자신이 만들어낸 디자인에 확신과 자신감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디자이너는 상상력과 경험을 통해 디자인 트렌드, 신상품의 시장과 미래의 소비자 취향, 기술의 흐름 등을 예측해야 한다. 오늘 디자인되는 상품이 1년 후, 2년 후, 또 그 이후에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디자이너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예측이 얼마나 적중률이 높고 따라서 고객들에게 어느 정도의 신뢰감을 줄 수 있느냐에 따라 디자인 컨설팅의 승패가 갈린다.- p79
  13. 그런데 그는 전혀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는 미안하지만 인터뷰한 학생 중에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신이 마음에 듭니다. 지금 GVO사에서는 디자인 디렉터를 모집하고 있어요. 김영세 교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도전해 보고 싶지 않으십니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학생을 취직시려고 소개한 교수에게 그런 제안을 하다니.... 그의 제안이 좀 어처구니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았다. 당시는 실리콘밸리에서 첨단산업과 디자인산업이 바야흐로 꽃을 피우기 시작할 때였기 때문이다. 그가 돌아가고 난 뒤 며칠 동안 고민에 빠졌다. GVO사는 당시 미국 실리콘밸리 최대의 디자인 회사이긴 헀지만 명문 일리노이대학의 교수직을 포기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고민했다. 교수로 지낸다면 모든 면에서 확실한 보장은 받을 수 있지만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이룰 수 없지 않은가. 디자인 교육이란 무었인가? 지식이 필요한 사람드에게 나누어주는 일이다. 내가 과연 지금 가진 지식과 경험으로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그보다는 디자이너로서 꿈을 이루고 책을 내거나 기사를 쓰는 것으로 좋은 사례를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가장 큰 교육은 몸소 실행해 보는 것 아니가. 나는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다. 또 한번 내 인생에 큰 변화를 껶게 된 것이다. 나는 대학 진학 때처럼 또 다시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고, 아내를 설득해야 했다. 결국 나는 캘리포니아를 향해 긴 자동차 여행을 시작했다. 이사한 지 불과 2년 만에 다시 낯선 길로 들어선 것이다- p85
  14. 이렇게 갑자기 만들어진 이노 로고는 내 지갑 안에서 6년 동안이나 때를 기다려야 했다. 나는 그 작은 종이조각을 단 한번도 꺼내보지 않았다. 그 존재를 항상 의식하면서도 막상 열어보면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처음에 이노디자인에서 이노 로고를 썼을 때는 지금과 모양이 달랐다. 네모난 상자 가운데 이노 로그를 하얀색으로 커다랗게 그리고, 바탕은 반을 잘라 위쪽은 회색, 아래쪽은 초록색으로 칠했다. 그러다가 팔로알토에 정식으로 사옥을 짓고 이사하면서 지금과 같은 로고를 사용하게 되었다. 나는 이 로고로 만든 은색 배지를 항상 재킷 깃에 달고 다닌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 재킷에 달린 배지를 보고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회사 설립을 꿈꾸며 로고를 지갑 속에 넣고 다니던 때를 회상하며 자랑스럽게 로고의 의미와 디자인을 설명하곤 한다. 나는 지금도 'INNO'를 내게 주신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p90
  15. 그 뒤로 수년 동안 플램보 사로부터 로열티를 받았다. 그때 벌어들인 로열티는 지금의 이노디자인 사옥을 구입할 만큼 큰돈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보람있었던 것은 프로텍 디자인이 1991년 권위 있는 지아인 상인 IDEA에서 동상을 받았고, 비즈니스 위크로부터 1990년도 최우수 제품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는 점이다.- p99
  16. 우리는 디자이너와 건축가로서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며 이노 사옥을 함께 지었다. 덕분에 나는 공사기간 동안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해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내 생각과 스케치가 그대로 설계되고 시공되는 것을 보면서 내내 즐거웠다. 공사하는 동안 오늘은 이쪽계단이 이렇게 변할텐데, 내일은 저쪽 천장이 저렇게 변할텐데 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했다.- p103
  17. 그는 '단지 그림 그리기에 만족하는 여느 디자이너들과 달리 자기 작품이 제품으로 만들져 소비자에게 팔리는 것을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라고 나를 표현했다. 당시에 나는 나의 정체성을 그정도까지 인식핮 ㅣ못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표현이 나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 믿게 되었다. 그의 말 떄문이지 아니면 내가 정말 그런 인물이었는지, 나는 정말 이릭을 창출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아티스트가 아닌 디자이너로서 나 혼자만의 취향을 위한 디자인은 하지 않는다. 디자이너는 마치 대중가수 같아서 관객의 갈채를 받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여기서 대중의 갈채란, 곧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보여주는 소비자의 '반응'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소비자와의 커퓨니케이션을 무척 즐기게 되었다. 이것은 돈까지 벌어주는 정말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p110
  18. 나느 지퍼 디자인으로 2000년 IDEA에서 은상을 받았다. 수상작들이 전시된 전시장에서 세계에서 온 많은 디자이너들이 작은 지퍼 디자인 앞에 서서 "내가 왜 진작 이 생각을 하지 못했지?"하면서 안타까워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다른 디자이너들이 그런 반응을 보일 때면 속으로 빙그레 웃는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내가 왜 진작 이상각을 하지 못했지?(Why didn't I think of it?)?하는 반응을 보이는 디자인은 반드시 시장에서 성공하기 때문이다. - p119
  19. 나는 주방용품을 디자인하면서 아내의 도움을 많이 ㅂ다았다. 아내는 그 제품들을 쓰면서 아직도 감탄한다. 이제 아내는 나의 디자인에 절대적인 지지자가 되었따. 마찬가리로 이 세상 모든 여성의 즐거움과 행복을 염두에 두고 아이디어를 내고 상품을 개발해보자. 그들과 함께하는 모든 산업활동은 엄청난 부가가치와 함꼐 소비자의 사랑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p129
  20.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디자이너가 어렵게 디자인한 걸 스스로 보여주겠다는데, 상품화되면 자신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아이디어를 안 보겠다니? 나는 수긍이 안 간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오티스는 에스컬레이터 저문 제조업체입니다. 수많은 연구원이 늘 신제품을 구상하고 있죠. 그러니깐 우연히 비슷한 아이디어가 개발될 수도 있고, 그런 경우 때로는 지적소유권 문제가 복잡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정식으로 특허 신청을 한 다음에 찾아와주시면 그때는 당신의 작품을 기꺼이 보겠습니다." 기대했던 만큼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채 돌아왔디만 나는 그만남을 통해 디자이너로서 또 하나의 아주 중요한 기초 지식을 배울 수 있었다. 디자인은 지적 재산이기 때문에 디자이너 스스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보호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후 나는 현재까지 수십 개의 특허를 신청했고, 50개에 달하는 특허를 획득하기도 했다.- p134
  21. 하지만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쓰기 좋고 아름답지만 가격도 더욱 경쟁력 있게 하는 것이 진짜 디자인인 것이다. 사실 이것을 실철하는 디자이너가 아직 많지 않고, 이에 대한 철학도 별로 없기 떄문에 경영인들까지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유능한 디자이너가 아름답고 편리한 제품인데도 생산가를 5% 낮출 수 있는 디자인을 해왔다면 이것을 마다할 경영자가 어디 있겠는가? 디자인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p138
  22. 내가 존경하는 디자이너 빅터 파파넥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훌륭한 디자인은 인간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고 피력했다. 빅터파파넥은 서울에서 디자인 공부를 할 때 책을 통해 알게 된 디자이너다. 나는 그가 쓴 인간을 위한 디자인 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번역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어 그처럼 훌륭한 디자인 책을 채고 싶다는 마음을 먹기도 했다.-중략- 이제 남은 것은 실물로 만들는 일이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제품이 실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생활이 편리해지거나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p149
  23. 미적인 욕망을 충족시켜라 "중세기에는 종교가 세계를 지배했지만 21세기에는 디자인이 세계를 지배한다... '바로 지금'이 중요시되는 신세대들에게 디자이너는 철학자로 다가간다."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명한 원로 화가에게 들은 말이다. 이 말은 디자이너의 역할을 정의해 보라는 질문을 받고 내가 "디자이너란 경지에 다다를 때 비로소 예술가로 입문하는 듯하다"라는 대답을 한 이후에 나온 말이다. 디자인 선진국인 프랑스에서 오랜 생활을 한 대선배님이 점점 더 디자인에 지배당하고 있는 우리의 일상을 빗대어 던진 말이었다. - p159
  24. 소니 왕국을 만들어준 워크맨도 시작은 그러했다. 소니 디자인셑너의 한 무명 디자이너가 엉뚱하게 워크맨을 디자인했는데, 디자인 센터를 방문한 회장이 그 디자인을 보고 상품화하려 했다. 그러자 사내 여기저기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그렇게 작은크기에 고급 음질을 재생시키려면 엄청난 돈이 든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시장에서 한번도 검증된 적이 없는 제품이었기에 반대는 더욱 거셌다. 그러나 소니 회장은 신제품이 어떻게 그런 증빙자료가 있을 수 있느냐면서 워크맨 생산을 단행했다. -중략- 그러나 이러한 디자인 전문화사의 노력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의 결단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정상에 서 있는 최고경영자만이 남보다 앞서 사방을 둘러볼 수 있고,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으며, 또한 그의 결단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떄문이다. 물론 그 결단이 바로잡힐 수 있도록 돕는 디자이너의 협상 능력 역시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p167
  25. 대답은 바로 영국 Design 지 편집장 마이크 존스가 앞서 짚어낸 데 있다. 바로 디자인과 비즈니스의 복합된 컨셉에 있다. 훌륭한 디자이너라면 디자인을 할 때 막연히 좋아서 내놓는 것이 아니라 경영의 측면을 초대한 고려해서 내놓는다. 최대 과제는 물론 '소비자의 사랑'이다. 이는 디자인과 경영이라는 두 가지 기술, 즉 마케팅과 디자인을 엮어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소수만이 풀어낼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p174
  26. 실제로 오늘날의 마케팅은 '소비자 만족' 나아가 '소비자 강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비자의 대한 애정이 소비자 만족을 이끌어내는 기초가 됨은 당연한 이치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디자인한 상품이라면 받는 사람이 디자인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 첫째 조건이 된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때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면서 상대가 감동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찾아낸다. 사랑하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려는 노력은 물론이고 자신과 생각이 다를지라도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끌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짜내기도 한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열심히 연구하고 그 사람을 만족실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야 만다. 이 과정은 디자인 과정과 다를 바가 없다. 자신이 디자인할 상품의 소비자를 누구보다 사랑해야 그 소비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p190
  27. 다자인계도 마찬가지다. 디자인 비즈니스의 정의조차 명확치 않았던 지난 수십 년 동안에는 일인다역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디자인 분야도 각 분야별로 특화해야만 살아남을 수가 있다. 그 이유는 순식간에 정보가 이어지는 지식 기반 디자인 경쟁 시대에는 많은 기업이 비슷한 수준의 디자인 능력을 갖출 수 있으므로 진정한게 차별화된 디자인을 개발해 내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문 분야별 특화를 강조하는 것은 디자인 분야 간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 아니라 다학제적인 개념안에서 각 디자이너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고유 영역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p192
  28. 하지만, 기업이 망하지 않으려면 디자인을 제대로 해야 한다. 디자인의 대형 사고가 오늘도 빈번하게 진행되고 있다.- p202
  29. 디지털 기술의 혁신은 인류에게 꿈을 실현시키는 훌륭한 방식들을 제시한다. 또한 사용자로 하여금 서비스와 상품을 이해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또록 도와주는 휴먼 인터페이스의 진화를 통해 더욱 편리하고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미래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디지털 기술과 이러한 새로운 기술으리 혁신을 초래하는 디자인 정신은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을 통한 인류의 꿈을 실현시켜 주는 21세기의 가장 커다란 두 가지 힘이다. D(Digital)+D(Design)=D(Dream) 이라는 새로운 공식이 성립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p225


Q. 이 사람처럼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고,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라면 어떻게 극복 할 수 있을까?

큰 기회인지 위기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그것을 될 수 있겠끔 노력한다는 점이 가장 내가 따라잡기 힘든 부분이다. 나는 두려움, 즉 겁이 많다. 이것도 무섭고 저것도 무섭다. 항상 회피하려고 준비되어있는 사람이다. 내가 상처를 받는 것을 극히 싫어한다. 사실 깨야 내가 큰다. 조금씩 조금씩 깨다 보니 이제는 성장할 수 있는 상처라면 조금은 용기를 내어 도전을 할 수 있다. 계속해서 꾸준히 도전을 멈추지 않음이 내가 극복할 수 있는 힘과 기회를 계속해서 제공할 것이라 믿는다. 힘은 안보이는 곳에서 계속 시도하는자에게 돌아온다.


Q. 이 사람에게 닮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

끝임 없는 상상을 실현하고하는 열망과 실제로 만들어내는 뚝심을 닮고싶습니다. 어떻게 삶에 불편함에서 일상에서 생각하는 것들을 디자인이라는 것을 통해서 내가 사는 세상을 바꾸어 나간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Q. 이 분야에 종사하고 싶은가? 그 이유는?

디자이너 지금은 산업 디자이너, 인체공학 디자이너, 패션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 정말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있다. 나도 삶에 모습 중에 책에 관한 다자이너가 되고싶다. :) 우리 삶이 녹아 있는 각자에 책을 만듬으로 후손들에게 다양한 삶에대한기록을 전해주는 그러한 인생 디자인너가 되고싶다. 나중에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인생 디자인을 남긴다고 속담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러한 책을 꾸준히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Q. 감상평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한 상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볼 수 있었다. 왜 책 제목이 트렌드를 창조하는 자 ‘이노베이터’인가 싶었다. 무엇을 도대체 만들고 했었기에 이렇게 큰 제목을 붙였을까? 어떤 제품을 디자인을 했는지 정말 궁금했다. 책이 조금 시간이 지난 책이라 요즘에 팔리는 물건들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한 시대를 풍미한 다양한 제품을 이 사람이 디자인 했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바로 레인콤-프리즘이다. 진짜 내가 어릴 때 첫 출시가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선풍적인 등장이었다. (더해서 소리바다와 음원저작권에 대한 문제도 불거졌었다.) 그걸 만든 분이라니 쭉 읽어보니 사실 제품디자인을 하기 전에도 이런저런 본인 사는 이야기도 있고 (본인이 만난 첫사랑과 결혼했다고 했지만 난 믿지 않는다.) 젊음에 대한 찬양 본인에 마음에 들어왔을 때 바로 가서 저녁에 초대하는 패기! 그리고 인재상도 나와 있었다. 제너럴 하지만 한 가지 이상 스페셜 한 인재, ㅡ자도 l 자도 아닌 T자형 인재 형태에 대해서 나왔다. 사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운전하나만 해도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먹고만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런데 이분은 그것을 타파해야한다고 직접적으로 쓰지는 않았다. 문맥상은 그런 내용이다. 삶을 살면서 우리는 매번 불편하고 짜증이 나는 상황이나 제품들을 쓴다. 그것을 캐치하고 다시 재설계해서 와 왜 이걸 나는 생각하지 못했지? 하는 디자인이 나오면 그것이 대단히 성공하는 디자인 이라고 한다. 이게 될까? 하는 것들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믿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그것을 파는 것이다! 제품을 새로인 디자인 할 때 발명자 보다 디자이너가 훨씬 실제적으로 상품을 출시할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기능적 측면이 아니라 생김새와 작동에 관한 것까지 세세히 상상하고 그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무엇이든지 현실에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문제이다. 내가 가진 것을 글, 말, 그림, 노래, 그 외에 것들로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찾고 그것을 믿고 가야한다. 그런 점을 높이 사야하며 우리는 계속해서 도전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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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평점(10점 만점)
9점, 담벽한 맛이 일품인 한그릇요리다.

Q. 인상 깊은 구절(25개 이상/각 구절 당 번호와 쪽수를 기입해 주세요)
  1.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요? 사람은 교회나 절에 가서 아들이 대학에 붙기를 기도하고, 어제 산 주식이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 값이 올라서 더 좋은동네로 이사 가고, 친구들보다는 더 좋은 차를 타고 다녔으면 합니다. 사람들은 고급 식당에서 대접받으며 식사를 하고 싶어 하고, 사람들이 자신이 들고 있는 명품가방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봐 주기를 바랍니다. 틀린 생각도 아니고 도덕적으로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런 생각과 발마 안에 갇혀서 100년도 못 살고 죽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눈 옆을 가린 경주마처럼 인생의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다가, 찰나와 같은 인생을 회한만 남기고 떠나버립니다. 사람들은 나눔의 기쁨을 알기에는 너무바쁘고, 너무 바라는 게 많고, 너무 부정적입니다. 이 책은 각박하고 정신없는 요즘 세상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객관적으로 인생을 점검하는 책입니다. 조금 더 느리고 조금 더 의미 있는 생활을 통해 자연과 사람과 동물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지구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꽉 막히는 도로 위의 자동차에 혼자 않아서 다른 자동차들을 원망하고 있을 누군가를 위한 위로입니다. 쏟아지는 인터넷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잠시 빠져 나와도 뒤지지 않을 거라는 이상무 신호입니다. 느리게 살면 인생도 천천히 간다는 당순한 명제입니다. 혹시 지금 이책을 읽고 있는 당신의 집에 사람 없이 불이 켜져 있는 방이 있나요? 혹시 컴퓨터나 텔레비전도 켜져 있나요? 시간은 많습니다. 빈 장의 절등과 텔레비전을 끄고 오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책은 천천히 두고두고 읽어주세요.- p6
  2. 이 책은 나무를 아끼기 위해 총 320체이지 중에서 아트지(24p)와 고지율 20%의 그린라이트(272p)고지율 100%의 중질지(24p)를 사용했습니다. 이 책은 인체와 환경에 무해한 잉크를 사용했습니다. 이책은 잉크를 아끼고 환경까지 생각한 나눔글꼴 에코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책은 자투리로 잘려 나가는 종이를 줄이기 위해 표준 크리를 따랐습니다. 이 책은 종이를 아끼기 위해 커버와 띠지를 씌우지 않았습니다. -p12
  3. 수많은 딜레마와 자기모순에 빠진 나. 그래도 내가 원하는 세상을 위해, 조금 더 나은 지구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p31
  4. 세상 살면서 즐거운 일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친구를 만나는 것, 음악을 듣는 것, 책을 읽는 것, 쇼핑하는 것, 사진을 찍는 것, 여행하는 것, 이제 그 즐거움은 자연스럽게 예전 같지 않아졌습니다. 요즘은 내 즐거움의 대부분이 동물과 환경에 관한 것으로 응축돼으니까요. 쇼핑하거나 여행하면서 느꼈던 나 자신만을 위한 즐거움은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내가 40년 동안 소비한 것들이 너무 많고 과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 이렇게 많은 옷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걸까?', '왜 유행을 따라야 하는 걸까?', '왜 좋은 자동차를 가져야 하는 걸까?',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본은 그동안 나에게 너무 많은 소비를 강요해 왔습니다. 나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사고 싶게 만들었지요. 그걸 깨달은 후부터는 사고 싶은 것이 없어졌습니다.-p40
  5. 사실 배우들이나 가수들을 불러들여 왁자기껄한 분위기에서 동물들 스트레스 받게 해가면서 촬여하는 게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지만, 대중의 관심을 끄는 방법으로 이 이상 가는 게 없더군요. <오보이!>에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와 2PM의 준호가화보를 찍은 후로, 팬들이 유기동물을 도와주느 ㄴ행사도 하고 마음을 모아 여러 가지 좋은 일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참 뿌듯 했습니다. 얼굴만큼 마음도 예쁜 친구들. 그들이 밝은 세상을 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를 바랄 뿐입니다.-p47
  6. 그 아이는 당행이도 고비를 넘겨 세 살, 네 살까지 살아 남지만, 더 이상 작고 귀엽지 않자 여자아이에게 버림받습니다. 자신이 좋은 주인을 만나 행복한 인생을 살 줄 알았던 강아지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버려져 고되고 배고프고 막막한 인생을 힘들게 견디다가 외롭고 한 많은 생을 마감합니다. 누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요? -p59
  7. 동물실험을 하는 기업은 생각 외로 상당히 많습니다. 늘 신경 쓰고 관심을 가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론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다고 공언한 회사들도 외주 등의 형태로 갑접적인 돌물실험을 하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이것이 소비자로서 항상 깨어있는어야 하는 이유겠죠.-p79
  8. 단체나 엽합이라고 불리는 집단들이 자주 저지르는 시행착오 중의 하나가 이와 같은 해프닝입니다.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과신이 이런 과실을 부르는 것이죠.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선동되지도 않고 비난한다고 해서 수동적으로 바뀌지도 않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감정적이고 매사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내가 본 그들은 기성세대들의 생각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능동적인 것 같습니다.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많지만, 세련되거나 매력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대하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걸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p81
  9.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문화콘텐츠가 넘쳐나는 지금, 우리 모두와 자라나는 아이들이 약간은 더 이타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책과 영화, 음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동물관련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생명존중의식을 고취시키고, 필요하지 않은 희생을 줄이는 데 일조할 수 있는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구라는 작은 별에서 사람들 떄문에 희생되고 망가지는 동물들과 자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p85
  10. 우리나라에 꼭 세계에서 순위권 안에 드는 대기업이 있어야 하고,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열어 위상을 높여야하고,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연예인들에게 열광해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 과연 국민들이, 소시민 한명 한명이 행복해지는 건가요?-p107
  11. 세상에는 되돌리 수 있는게 있고 없는 게 있습니다. 한반도를 강타했던 매서운 추위의 원인이, 북극지방에 머물러 있어야 할 찬 공기덩이리인 폴라캡이 지구온나환의 영향으로 찌그러져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뉴스를 보고 정말 큰일이구나 싶었습니다. 정치와 경제는 사람만의 문제지만, 지구와 환경은 사람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p114
  12. 모두가 조금은 모자라고 완벽하지 않은 게 사람입니다. 시행착오를 겪고 개선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쩌면 아직은 그렇게 늦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더 늦기 전에 멈출 줄 아는 현명한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를 위한는 행동은 예상 외로 쉽습니다. 빈 방의 전등을 끄고 실대온도를 1도만 더 낮추는 건 어때요?-p115
  13. 우리가 분리수거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도 소비자들이 분리수거를 간편하게 할 수 있또록 포장에 신경써야 합니다. 포장 자체를 단순하게 만들어야하는데, 미적인 것이나 편의 때문에 여러 가시 소재를 복잡하게 사용해서 만드니까 제대로 분리수거 하기가 힘든 것이죠. 또 한가지 제조사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분리수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표시를 크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p125
  14. 우리나라는 반찬 가짓수가 다양하고 푸짐해야 정이 많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일본은 밑반찬을 조금만 주고 더 먹고 싶을 경우에는 추가로 주문해서 먹는다고 하더군요. 물론 추가 주문 시에는 비용이 듭니다. 너무 야박해 보인다고요? 그렇다고 해서 밑반찬이 푸짐한 우리나라 음식점들이 정이 많은건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식당에 가면 전골이나 찌개류는 1인분 주문이 안 됩니다. 무조건 2인 이상이어야 주문할 수 있는 음식들이 있습니다. 혼자서 전골이나 찌개를 먹고 싶어도 주문할 수 없는 것이죠. 이런 건 야박하면서 밑반찬은 정이라고 치부합니다. 이건 앞뒤가 안 맙는 행동이고 모순적이에요.-p129
  15. 좋은컵 대신 텁블러는 어때요? 스타벅스와 커피빈, 카페베네, 할리스 등 많은 커피전문점에서 텀블러 할인을 합니다. 아메리카노를 기준으로 무려 10%가까이 할인해 준다는 사실! 주문 시 "텀블러에 담아주세요"라고 말하기만 하면 되고, 꼭 해당 커피점문점 텀블러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이젠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세요.-p138
  16. 텔레비전 하루 한시간 씩 덜보기 일년에 2400원 절약 설거지물 받아서 사용하기 일년에 1만 5100원 절약 양치컵사용하기 일년에 4만5000원 절약 겨울철에 내복입고 난방온도 1도낮추기 일년에 3만1000원 절약 백열등을 형광등으로 교체하기 일 년에 600원 절약 10분 이상 컴퓨터를 쓰기 않을 떄는 컴퓨터 끄기 일년에 2만 5600원 절약 총 : 12만 5100원-p144
  17. 겨울철에 실내 온도를 조금만 낮춰 보세요. 춥다면 두툼한 스위터를 꺼내 입어 보세요. 그래도 춥다면 당신의 강아지와 고양이를, 옆에 있는 가족을 꼭 껴안아 보는 것도 좋습니다.-p148
  18. 조명등, 어떻게 다를까요? 에너지 절약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특히 전구에서 많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하얀 빛을 내는 백열등은 값은 싸지만 수명이 짧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형관등은 백열등보다 8배 정도 더 오래 쓸 수 있는 데다가, 같은 밝기에도 백열등보다 전기를 70%나 적게 써서 전기 요금도 3배나 적게 듭니다. 백열등(60w)을 형광등(24w)으로 교체하면 연간 17kg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고 하네요. 같은 형광등이라도 굶기가 가늘수록 수명이 더 길고, 수은 쓰레기도 적게 냅니다.-p152
  19. 여러분의 집은 어떤가요? 전기 계량기가 어떤 속도로 돌아가고 있나요? 집 안의 숨어 있는 전기 도둑을 찾아 보세요.-p155
  20. 이타적 식탁 어디선가 '먹는다는 것은 다른 것의 생명으로 내 생명을 이어나가는 것'이라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먹는다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이죠? 한번쯤 나는 '무엇'을 먹고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가장 개인적인 공강일 것 같은 한 끼의 식탁도 남까지 생각하는 이타적 식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 이타적 식탁에 어울리는 채식 레시피를 소개합니다.-p187
  21. 때마다 바뀌는 유행에 좌우되지 않고 진정한 멋을 아는 사람, 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를 좋아하는 사람, 최신 유행의 재킷보다 엄가가 입던 빈티지한 트렌치코트가 더 끌리는 사람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요? 멋진 나와 멋진 지구를 위한 멋진 소비, 어렵지 않습니다.-p203
  22. 소비 ≠ 행복 가지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면 행복할까요? 2009년 신경제재단이 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계산한 결과, 중앙아메리카 소국인 코스타리카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에 반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선진국들의 행복지수는 낮은 편에 속합니다. 코스타리카의 국민소둑은 1만 달러를 조금 웃도는 정도로, 국민소득만 놓고 보자면 2만 달러를 넘어선 우리나라보다는 못사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행복지수를 조사해 보면 늘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죠. 코스타리카 국민들이 행복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경제학자들은 그 답으로 여러가지를 꼽지만, 무엇보다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일과 휴식의 균형이라고합니다. 이곳 국민들은 일년에 한 달 가까이를 쉬는데, 삶의 여유를 위해 소득이 좀 떨어지는 것은 기꺼이 감수한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엔 돈이 없어서 불행한 사람보다 람의 여유가 없엇 ㅓ불행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코스타리카에 가면 첫 인사말이 "Pura Vida"라고 합니다. 해석하면 "인생은 즐거워!"라고 하네요. 인사말만 봐도 왜 그들이 가장 행복한 나라인지 알 것 같습니다. 행복의 조건이 돈이라고 생각하나요? 조금 덜 일하는 대신 조금 더 쉬어가는 것이 행복을 찾는 첫 번째 조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p205
  23. 아날로그적인 생활은 사람을 편하게 해줍니다. 아날로그적인 삶은 사람을 천천히 걷게 해줍니다. 아날로그적인 생각은 사람을 멀리 보게 해줍니다. 아날로그적인 시야는 지구와 사람과 동물을 모두 이롭게 합니다.-p243
  24. 덧분이는 이야기 최근에 읽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책에 내 생각과 비슷한 구절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너무 수동적으로 문명과 기술을 찬양하면서 살아 왔던 건 아닐까요? "요즘은 무슨 일이든 적극적, 적극적을 내세우면서 서양식이 유행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큰 허점이 있어. 적극적이라는 게 우선 한계가 없는 얘기 아닌가. 적극적으로 아무리 해봐야 만족이란 영역과 완전이라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지. 저기 노송나무가 있는데, 나무가 시야를 가린다고 베어 버리면 그 너머에 있는 하숙집이 눈에 거슬리겠지. 그래서 하숙집을 철거하면 그 다음집이 또 눈에 거슬리고. 그런 식으로 확대해 나가다 보면 끝이 없어. 서양식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나폴레옹이든 알렌산드로스든, 이기고 만족했다는 사람은 내 보지 못했네. 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싸음을 하고, 상대가 굴복하지 않으면 재판을 걸어 법정에서 판가름을 하지. 그래서 결착이 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아무리 안달복달해봐야 마음의 결착은 죽을 떄까지 나지 않는 법이니까. 과두 정치가 뜻대로 잘 안 되니까 대의 정치로 바꾸고, 대의 정치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또 다른 정치 체제로 바꾸고 싶어하지 .건방지게 강이 가로 막고 있다고 다리를 놓고, 떡 버티고 있는 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터널을 뚫고, 교통이 불편하다고 철도를 만들고, 그렇게 한다고 영원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래 봐야 인간인데, 얼마나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관철할 수 있겠는가. 서양 문명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일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평생 만족을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문명이야."-p247
  25. 앞으로 내가 고통받는 동물과 망가져 가는 환경을 위해 어떤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껏 그래 온 것처럼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합니다. 닫혀 있떤 마음을 열겠지만,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최선을 다해 보려고합니다. 닫혀 있떤 마음을 열어 준 뭉치와 함꼐 열심히 <오보이!>를 만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가려고 합니다. 유치하다고 비웃었던 미스코리아들의 세계 평화 소원이 내 소원이 된 지금, 내가 죽고 난 후의 몇백년, 몇천 년 후의 세상이 조금이라도 평화로워져서, 사람은 물론 동물과 환경 모두 함꼐 행복한 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김현성-p304

Q. 이 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읽었는가?

아니오.

Q. 이 사람처럼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고,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라면 어떻게 극복 할 수 있을까?

일단 채식을 할 수 없다. 먹는건 너무 행복하지만 과욕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다른 부분에서는 이렇게 세심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이 소박하게나마 세상을 위하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세상이 더 아름답게 될 수 있도록 최선에 노력을 하는것을 보고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들 생각해보고 작게 나마 동참한다면 조금 이라도 세상이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Q. 이 사람에게 닮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

소박하게나마 도전하고 계속해서 이어가는 그 마음과 태도. 그리고 불쌍한 것들을 끌어 안을 수 있는 담대한 마음.

Q. 이 분야에 종사하고 싶은가? 그 이유는?

환경운동가로써 삶은 대단히 고달플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삶도 나름 살만 하겠다. 싶다. 대신 내가 내 밥벌이는 하고 살아야하니 일단 내 입에 쌀을 넣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종사보단 가능한 동참한다는 것이 맞겠다. 이런 편집자와 일을 한다면 대단한 영광이겠다.

Q. 감상평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다. 내가 아는 분들도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길양이를 보고 인사하는 친구도있고 얼마전 열정대학에 와서 강연을 하시는 서민교수님에 책을 보면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절대적으로 사랑해야만 키워야한다고 한다. 동물을이 아프면 많은 돈이 들어가고 커가면서 다양하게 모습이 바뀌고 하니깐 유기견과 유기 동물들이 계속해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생명이 돈으로 치환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지 깨닫게 됬다. 결국 우리도 한 생명체인데 그래서 돈으로써 모든것이 해결이 된다면 결국 우리도 우리가 만들어낸 돈에 종속되어서 아무때다 버려질 수 있는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문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가 어떻게 파괴하고 없쎄고 있는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발전과 진화를 하고 또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계속 소비를 하는 삶이 만족하는 삶이 될 수 없다. 만족이라는 것은 멈추어야 가능한데 계속해서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고 다투는 삶은 결국 우리모두가 공멸하는 길이라 생각된다. 어떻게 하면 이 멸망에 길을 우리가 다시금 멈추고 늦출 수 있을지 모두가 고민하고 생각해봐야한다. 처음 시작은 가볍게 안쓰는 불을 끄고 소비 되는 소비재를 아끼고 가능한 쓰레기를 적게 만들고 재활용 할 수 있는길을 만들어야한다. 조금씩 우리나 신경을 쓰고 산다면 좋아 질 것이다. 이렇게 좋아진 세상이 오면 우리들도 후손들에게 안정하고 깨끗한 세상을 물려주는 자랑스런 선조가 될 수 있고 우리스스로도 건강을 덜 해치면서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큰 길은 여러 작은 길이 모여서 삶에 흐름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열심히 아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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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음식][서빙][세상을 서빙하다][좋아요!좋습니다!긍정과태도에대한안내문]



세상을 서빙하다
국내도서
저자 : 이효찬
출판 : 살림 2015.02.04
상세보기




Q. 평점(10점 만점)

8점 많은일이 있었고 그곳엔 그 남자가 서있었다. 좋아요!

Q. 인상 깊은 구절(25개 이상/각 구절 당 번호와 쪽수를 기입해 주세요)

  1. 첫째, 나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처음부터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내가 가장 기쁘게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나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한다. 나를 알아야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방향을 정할 수 있다. 둘째, 삶의 목표를 성공이 아닌 성장에 두고 자긍심을 가져야한다. 낮은 출발점에서 서서히 올라가며 깨달은 것이 있다. 삶의 목표가 성공이면 불행해지기 쉽다는 것. 나를 사랑하지도 못한다. 나는 나에게 가장 친하고 든든한 사람이 되어야한다. 그러려면 어제의 나보다 더 당당한 내가 되도록 오늘 더 노력하면 된다. 일에 대한 자긍심은 그렇게 생겨난다. 섯째, 검색하거나 타인의 조언에 기대지 말고 나만의 정답을 만들어야 한다. 세상이 너무 세분화됐다. 그만큼 빠르고 복잡하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들 검색을 많이 한다. 멘토도 있다. 그런데 이 스마트한 시대에서 진짜 살아남는 방법은 사삭하기다. 이것만이 온전한 정신을 갖게 해줄 것이다. 넷째, 경험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작은 경험이 쌓여 내가 되고 꿈이 된다. 진실된 꿈은 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든 내가 경험한 것 안에서 성장한다. 그리고 그 경험과 생각이 모여 나를 성장시킨다.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며 살아야 행복하다.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자. 자신을 주인공으로 대할 줄 아는 사람만이 성장하는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나와 만난 당신도 어제보다 오늘 더 미래의 두렴움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P10
  2. 그리고 한동안 나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흰색 A4 종이 여러장을 벽에 붙여놓고 '내가 잘하는 것, 못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시도 때도 없이 적어댔다. 그 결과 육체노동을 잘하는 나를 알게 됐다. 활동적인 일로 진로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어떤 것을 학습해야할 때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니 사무직은 피해야 했다. 이렇게 하나씩 나를 새로 알아갔다. 이런 식으로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표를 만들었다. 지금 스타 서빙으로 불리는 나는, 실패한 뒤에 새롭게 발견한 나다. 나는 내 경험담을 나누는 강연에 다닐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하게 되면 어떤 확신과 발견이 생겨납니다. 왜 실패하게 돼는지 명확하게 알아내세요. 그게 곧 나를 알아가는 거예요." 성공한 사람이 인생의 새로운 맛을 알고 성공의 원리를 터득하듯이, 실패한 사람들은 실패하지 않는 법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가장 열정적으로 살았던 시간이 아무 소용도 없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정말 장사는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P23
  3.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꼭 맞는 꿈의 직업 찾기를 포기하는 이유는 직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를 알면, 소소한 일상 속에서 내가 어느 때 가장 행복한지를 충분히 관찰한다면 절실함이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P25
  4. 앞서 말한 두 부류의 사람과 명확하게 다른 건 '일'이 삶의 수단이 아니라 삶 자체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에너지는 늘 자신의 가슴에서 나왔고, '진인사대천명'을 읇으며 자신의 결과에 만족할 줄 알았다. 그렇게 하나씩 그릇을 넓히고 키워갔다. 일하는 것을 의무가 아닌 특권이라고 여기듯이.나는 그런사람이 좋았다. 마음엔 늘 명확한 기준이 있고, 여러 가지 변수와 악조건에 의지가 꺾이지 않는 모습이 부러웠다. 삶을 풍성하게 만들고 싶다면 자신의 기준을 세우고 어떤 유혹과 질타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다. 일과 삶의 기준을 만든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일을 통해 내 삶을 만들어가는 것. 삶이 일에 끌려다니지 않는 것. 삶을 위해 일을 하는데도 결국 남는 게 없는 공허한 시간을 살지 않는 것.-P28
  5. 나는 멘토라 불리는 사람들을 어떠한 지침서로 볼 것이 아니라 참고서 정도로만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여행지를 갈 때 먼저 다녀온 여행자에게 이야기 정도는 들을 수 있지 않은가. "모퉁이를 돌면 물웅덩이가 하나 있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사과나무들이 잔뜩 있어."라는 정보를 미리 알 수 있는 정도 말이다. 물웅덩이에 발을 담그든, 사과를 따먹지 않고 그냥 가든, 그때부터는 나의 이야기이고 나의 여행이기 때문에 내가 선택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가는 것과 듣지 않고 가는 데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P29
  6. 그러나 멘토는 만병통치약이거나 신이거나 점쟁이가 아니다. 자신의 분야에서는 최고일지 몰라도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일을 꿰뚫어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나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멘토의 모든 행동과 결정을 다 따를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실패 앞에서 '저 사람이 이렇게 하면 잘된다고 했는데.'라는 변명이 일어나지 않도록 행동할 줄 알아야한다. 삶에는 모든 이에게 통용되는 정답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에서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 갈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게 바로 살아가면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믿는다.-P30
  7. 내가 첫 번째로 스티커를 붙인 지점은 열 살 때다. 마이너스부분 가장 아래에 스티커를 붙였다. 그 스트커에는 된장찌깨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날은 어머니가 뚝배기에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끊여준 날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내 앞에까지 상을 들고 오다가 상을 잘못 기울인 바람에 그 뜨거운 된장찌개가 고스란히 내 몸으로 떨어졌다. 나는 너무 뜨거워서 비명을 질렀던 것 같다. 찌개 그릇이 상에서 스르륵 흘러 내게 엎어지는 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그 순간이 두려웠다. 어머니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원망스런 눈으로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울음이 났다. 나를 슬프게 한 건, 어머니가 나를 보고 있기만 했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에게 악의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달란트가 피부에 느껴지는 뜨거움을 잊게 했다. 마음 어딘가가 타들어가듯 뜨거웠고 펑펑 울었다. 부모님이 가진 정신지적장애라는 한계를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 깨달았다. 부모님이 나를 보호해줄 수 없다는 사실과 나를 지켜내기 위한 모든 일들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된장째개로 잔뜩 축축해진 미진근한 옷을 벗었다. 그리고 욕조에 걸터앉아 펑펑 울면서 찬물이 다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그일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마이너스 자리다.-P34
  8. 결국 우리는 모두 자신이 겪을 수 있는 어떤 한도 내에서 최하점을 찍는 일을 필연적으로 맞게 된다. 그것이 부모님의 죽음이든, 다른 상황에서의 최하점이든, 그래서 인정해야한다. 인생은 원래 그렇다는 것을. 최하점도 내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나에테이고 하나의 지점이라고 말이다.-P37
  9. 따라쟁이로 한동안 살다가 끝이 날 수도있었을 텐데, 다행히 나는 관찰자로 방향을 전화했다. 관찰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나는 이것을 자기 관찰과 타인 과찰로 종류를 나눴다. 똑같이 주어진 상황에서도 나를 다른 사람들 속에서 차별화할 방법은 이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P39
  10. 서빙할 때도 그렇다. 서빙하는 사람에게 관찰력은 여러가지 능력을 키우게 하는 바탕이 된다. 관찰력이 좋아지면 일을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하고 센 에너지를 갖게 된다. 아주 기본적인 것을 이야기 하자면 이렇다. 손님이 시선을 위쪽에 두고 두리번거리면 화장실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를 보면 두리번거리면 핸트폰 충전할 곳을 찾는 것이다. 핸드폰을 귀에 대고 두리번거리면 일행을 찾는 것이고, 사실 이것들은 단순한 반응들이라 알아채기 쉽다.-P40
  11. 끊는 것은 소리가 나도 식는 것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눈 또한 소리 없이 내려 뚜겁게 쌓인다. 결국 성공했따고 말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실패하게 된다.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 끊였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성고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살면 좋겠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실패와 성공이 아니라, 성장하지 못하는 자신이다.-P44
  12. 열정적이면서도 뚝배기처럼 오래가는 사람이 되려면 신념이 필요하다. 이 신념은 나를 바탕으로 해서 세워야 한다. 그래서 자기관찰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겠지만 의외로 쉽다. 일기를 쓰면 된다. 나는 꼭 기억해두고 싶은 이벤트가 있거나 생각할 거리들이 있으면 글부터 쓰려고 한다. 그래야 정리가 된고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대로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덜어낼 수도 있다. -중략- 꼰대 같은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그렇게 '나'를 알아야 다른 사람을 가늠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두면 좋겠다. 우리는 성장해야 된다. 성공한 사람은 성장하는 사람을 당해낼 수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성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또 앞으로도 성장하는 사람이 되자. -P47
  13. 만남에서는 진솔함과 태도 같은 것들이 인연의 깊이를 결정짓는다고 믿는다. 특히 요즘의 내 주변 사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다. 이번에 내가 족발집을 차릴 수있었던 이유는 나와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가능했다. 이런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중략-나는 그런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인연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열렬히 사랑하다 이별을 해도 우리는 닷 ㅣ사랑을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누군가는 진짜 사랑을 찾게 된다. 믿음도 마찬가지다. 믿다보면 언젠가는 민들 사람을 찾게 되지만 몇 번의 상처로 마음을 닫아버리면 우리는 우연의 확률조차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배신보다 더 큰 손해다. 칼을 들고 있으면 부딪칠 상대를 찾게되고, 꽃을 들고 있으면 줄 사람을 찾는게 우리네 마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과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P52
  14. 나는 사람 관계도 비슷하다고 본다. 그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으면 우선 나를 상대에게 줘야 한다. 안 받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진실된 마음으로 다가가다 보면 상대방에게 나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생겨날 것이다. 그게 언제쯔인지 보편화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생겨나고야 만다. 그렇게 상대방과 내가 가까워지면 세상의 레시피,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마음과 경험들이 하나둘씩 쌓여 성장하게 된다고 믿는다. 인연은 인맥 관리와 다르다. 오랜만에 만나면 어떻고 함께하는 시간이 적으면 어떤가? 언제나 솔직한 행동으로 마음을 드러내는 사람이라면 만남의 횟수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내가 족발집을 차리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은 유근이 형은 내게 양양 막국수 레시피를 기꺼이 알려줬다. 그전까지 우리는 같이 일하는 동안 사적인 대화를 2시간도 나누지 않은 사이였다. 하지만 내가 일할 때 보인 어떤 태도들 때문에 그 형은 나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오픈 소식을 듣자 팔을 걷어부치고 내 가게를 찾아와줬다. 만약 내가 건성건성 일하며 동료들을 무시했다면 과연 그가 나를 도와주게 되었을까? 아마 레시피는 커녕 연락처도 나누지 않는 사이로 끝이 났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방법을 알고 싶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으로 부터 쉽게 얻어내려고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누군가에게 선한 마음으로 당신이 손에 넣고자 하는 인생의 레시피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러면 그 레시피를 갖고 있는 세상은 당신을 더 소중하게 생각할 것이고, 당신이 바라던 것 이상의 선물을 줄 것이다.-P54
  15. 중요한 삶의 지향점을 잊고 자꾸자꾸 순간순간에 흔들이면 나는 결국 내가 살고자 하는 삶과 멀어진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다. 이건 스타가 되든 거지가 되든 상관없는 세상의 진리일 것이다. 부자로 살 수 있다거나, 유명세를 잡아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다고 하더라도 나 스스로가 떳떳하지 않으면 좋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정말 잘 성장한 청년 장사꾼이 되어 있으면 사람들은 나의 말, 행동, 마음을 느끼게 될 거다. 그럴 때 지난 시간들이 부끄러워서 더 큰 거짓말을 하는 삶을 살지는 말아야겠다. 그래서 지금, 수면 위 말고 수면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깊이 있게 사는 게 내가 가장 열심히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P60
  16. 험한 일을 당해도, 계획한 일이 성사되지 않아도, 목표 앞에서 좌절해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마음 상태. 나는 이것을'상처에 관한 탄성'이라고 부른다. 세상 경험이 많지 않은 청춘들에게 그런 탄성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이 탄성이 생기려면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만 가지 일들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해결해보고, 종종 고꾸라짐을 당해야 한다. 그 실패들을 마주하면서도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않을 때 상처에 관한 탄성이 생긴다. 어떤 실패 앞에서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경험으로 내정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주요했다. 실패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서 성고과 실패의 가치가 동등해지면 일희일비하지 않고 상철에도 금방 탄력이 붙어서 마음을 회복하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실패가 아직 낯선 사람들은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 빨리 그사건을 수습하거나 정리하려고 든다. 당황했기 때문이다. 뿌끄러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급하게 결과를 분석하려고 하고 성급해진다. 실패를 많이 해본 나는 어떤 결론을 당장 내지 않는다. 익숙해졌기 때문에 탄성은 물론이고, 한 발짝 물러나 사건을 전체적으로 보려는 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 나쁜 상황 안에서도 내가 잘할 일과 장점을 찾으면서 앞으로 나가려고 노력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나의 좋은 점을 하나 알게 되면, 그 다음의 장점들을 연속해서 발견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맞추어 그 장점들을 더 강하게 만들고 싶어져서 생각도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나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괴롭지 않다. 실패가 반갑지는 못하더라도 그 앞에서 좌절하거나 비관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이런 식으로 천천히 마음의 품을 넉넉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당황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로 중요하고, 내가 잘한 것과 고쳐야 할 부분을 나누어 냉정하게 보는 것이 두 번째다. 자꾸 훈련을 하다보면 나쁜 일을 겪어도 마음 회복하는 데에 오래 걸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마음가짐을 강인함이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그렇게 거창한 말은 부끄럽다. 위인전을 보아도, 시대와 사회가 존경하는 유명 인사를 보아도, 그들은 하나같이 실패 앞에서 마음이 넉넉했다. 실패와 잘못을 대충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성장하려고 차분해지는 습관이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삶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누구나 할 수 있느 ㄴ것이 넉넉한 품 갖기인 것 같다. 언젠가 대기업 인사 면접에서 떨어지고 온 단골 손님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면접관이 저한테,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일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냐고 물었어요." 항상 성공만 했다고 대답하자, 면잡관은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다는 거네요?"라고 다시 되물었다고 한다. 내 달골손님은 그 순간이 그렇게나 무안했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위축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좀 더 잘 대답할 기회를 놓친 것 같았다. 그 면접관이 한 질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이 됐다. 사회에 나오기 전까지 실패해본 경험이 단 한번도 없다면, 불가피한 모욕의 순간을 마주했을 때 쉽게 무너지고 만다. 당연한 결과이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조금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식당에서 동료들과 일을 하고 상사와 커큐니케이션을 하는 동안 우리의 화두는 수익이었다. 매출이 얼마나 올랐는지, 손님들이 우리에게서 얼마나 만족할지를 늘 고민하고 얘기했다. 그러다보면 이곳저것에서 "아니요. 안 됩니다. 효찬 씨가 잘못했네요." 같은 거절당하는 말들을 수 없이 듣게 됐다. 밤을 새워가며 고민하고, 창조와 창조를 조합해서 시도해본 것들에 계속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의기소침해지기도 쉬웠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의기소침하기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나답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아니오."라는 말을 들은 만큼, 성공에 가까워지는 길이 명확해진 것이라고, 잘못된 방향을 알게 되었다고, 좀 더 적합한 방법을 찾는 데에 "아니오."만큼 더 좋은 피드백은 없다고 생각을 고쳤다. 손님들과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아니오."라는 말을 자주 듣는 건 그만큼 그 사람들에게서 "좋아요."라는 말을 받아내겠다느 ㄴ의가가 있다는 뜻이다. 두 가지가 비례하면서 우리가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가치도 함께 오른다고 믿는다. 그러니 기꺼이 실패할 자세를 갖춘 사람이 더 탄탄하게 성장할 것이다.-P63
  17. 나의 서빙 철학은 '어떻게 하면 이 가게 안에서 있는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요리사가 자신만의 철학과 기술을 담아 임식을 만든다면 서빙가는 긍리의 이미지와 스토리를 완성시키는 사람이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주방과 카운터를 조율하며 소님을 리드해야 한다. 오늘 어떤 소님이 왔는지, 주방의 분위기는 어떤지를 생각하고 모두가 하나의 화음이라고 여겨야 한다. 이것은 가게 분위기 전체를 리드하는 사람이 서빙가라는 뜻이다.-P69
  18. 그래서 나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다른 사람이 먼저 판단하게 두지 말 것을 강조하고, 타인의 생각을 따라가기만 하는 일을 만류한다. 아무리 좋은 생각과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나의 경험과 생각이 몸에 깃들어야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략- 쳇바퀴에서 뛰어내릴 용기를 가지려면 내 속도가 쳇바퀴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뛰어내렸을 때 나만의 속도가 있음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철학은 나의 경험 속 깨달음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 그 깨달음의 힘이 가장 세다는 것을 잊지 말자.-P71
  19. 할머니는 비겁하게 살지 말 것, 언제나 예의 바르게 행동할 것, 전체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을 늘 강조했다. 그래서 공부를 못한다고 다그친 적은 없지만 타인에 대한 예의를 잊거나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을 내곤 했다. '세상에서 내게 가장 다정한 사람이 할머니인데 이렇게까지 나를 혼낼 수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어린 마음에 해봤던 기억이 있다. "생각한 대로 행동한단다. 알겠지, 효찬아?" 나는 그 말을 하던 할머니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의 단호한 표정에 주눅이 들었던 것도 있지만, 살면서 절대로 잊지말아야 할 규범을 만난 것 같은 강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때를 마지막으로 나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 늘 노력한다. -P75
  20. 막노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온갖 부정적인 느낌과 장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꼭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장면만이 막노동은 아니다. 월급쟁이로서 회사 생활이 지겹다면 그게 진짜 막노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얼마만큼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일하는 우리는 매일 무엇인가를 생산해낸다. 그런데 그 생산의 기준이 내 안에 정립되어 있지않아 외부의 요인에만 휘둘리면 끝없이 끌려가게만 된다. 그럼지치는 것은 시간문제다. 당연한 결과다. 어떤 일이든 자신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나만의 리듬과 박자가 있다면 단순한 일을 맡게 되더라도 단조롭지 않은 일이 된다. -P76
  21. 눈에 보이지 않고 고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자연현상들을 다 인정하지는 않지만, 나는 믿음의 힘만은 맹신한다. 내가 나를 믿어줌으로써, 나는 좀 더 성장하는 사람에 가 닿기 위해 더 노력했다. 내가 나를 배신하거나 져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정말로 나는 성장했고, 그런 나를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이 나의 능력과 일에 대한 방햔을 신뢰해줬다. 그들에게 있어서 나에 대한 믿음은 인정으로 나타났다. 나의 읜견을 따라주고 때때로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보강해주는 그 인정이 다시 나를 풍요롭게 했다. 앞으로도 살아가는 동안 그 순간들은 못 잊을 거 같다. -P81
  22. 무엇을 하든 내일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의 기초는 이렇게 꼭 잘 다져놓았다. 그래야 사람들이 나를 믿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좋아하는 여자를 만날 때 '남자는 자신가!'이라는 주문 같은 구호도 외곤 한다. 누군가는 이런 것들을 근거 없느 ㄴ자신감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굳이 남과 비교해가며 자신감의 자격과 근거를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 있는다는 것 자체가 가능성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한, 끝까지 스스로를 믿어줘야 한다. 자신의 선택과 그에 따른 행동을 믿어야 한다. 나를 가장 열정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그러다가 실패하거나 우여곡절을 겪는다 해도,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자책하거나 지나치게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좀 더 영리하게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만 고민해도 충분하다. 그렇게 또 다시 나를 믿어준다면 결국 그 믿음의힘이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믿어야 한다. 믿음을! 믿음으로.-P82
  23. 그런데 때마침 어느 차가 멈추고 날 태워주는 게 아니겠소. 그렇게 한 번 차를 얻어타보니 그 이후부터는 자신감이 생기더이다. 덕분에 히치하이킹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소. 그떄부터는 양손으로 하트를 만들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면서 내 마음편한 대로 차를 세우기 시작했소. 그렇게 해서 나는 한 달간의 무전여행을 아주 잘 끝마칠 수 있었다오.-P85
  24.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나만의 언어를 만들기로 했다. 기왕이면 나 혼자 쓰는 말이 아니라 모두에게 좋은 힘을 주는 말을 고민했다. "좋아요! 아, 좋습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옛말을 가슴에 새겼다. 말끝마다 '좋아요'를 습관처럼 붙였다. "효찬아 청소 좀 해." "좋아요. 깨끗해지면 일하기도 좋죠!" "효찬아, 걸레 좀." "좋아요, 여기 있습니다!" "효찬아!" "좋아요!" '좋아요'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유난 떠는 것처럼 보이니까 적당히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그 당시에 유난을 떨고 있는게 맞았다. 그래서 정당히 할 생각이 없었다. '적당히'의 기분도 가늠이 안 되었다. 내게는 일하는 사람들이 즐겁지 않은 일터는 좋은 곳이 될 수 없다는 생각 있었다. 호주에서 일을 하던 때의 경험 때문이다. 그래서 무조건 꾸준히 좋은 에너지를 나눌 방법이 필요했다. 말은 전염성이 강하다. 그리고 어떤 것을 유행시키려면, 아주 자극적인 것으로 시작해 꾸준히 사람들의 일상까지 스며드는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니 '좋아요'는 정말로 유행어가 됐다. 심지어 사장님까지 그말을 썼다.-P96
  25. 이모님들의 분위기가 한 층 오른 뒤에는 일일근로자로 오는 아주머니들께 드릴 업무 메뉴얼을 만들었다. 아무리 경험이 많은 살마이라고 해도 적응이 필요하다. 단 하루 만에 모든 일을 익히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일이 능숙하지 않으니까 긴장하고, 그러면 손님들에게도 마음이 닫히고, 불친절해져서 손님이 불쾌해하고, 가게에 지장이 있었다. "온 지 몇 분이나 지났다고 이걸 빨리빨리 잘해요?" "그래도 일하러 오신 건데." 정직원과 일일근로자 사이의 갈등을 줄일 묘책이 도무지 없는 것만 같았다. 양졲 모두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고안한 건 메뉴얼 제작이었다. 일 시작하기 전에 잠깐 인사만 할 게 아니라, 이 가게에서 일하려면 무엇을 가장 신경써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일하느 ㄴ요령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그분들꼐 어떤 일을 맡길지를 가정한 뒤 일하는 요령을 알려주는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P99
  26. 우리나라에서 서빙 제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려면 주어진 일만 하는 것으로는 성장하기에 부족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을 거듭해가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내가 나에게 준 첫 번째 과제였다. 그리고 제법 잘해낸 것 같다. -P100
  27. 그러다보니 어느새 내가 맡게 되는 일의 비중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엔 일일글로자로 시작해서 요식업의 꽃인 슈퍼바이저 제안까지 받게 됐다. 특히 내가 일했떤 족발집은 이미 맛집으로 정평이 난 집이었다. 우리나라 요식업계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큰 회사이기도 했다. -중략- 이런 이유로 나는 "준비하느 ㄴ자만이 기회를 잡는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특별한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기만 할 텐가! 신부 수업을 착실히 받은 사람 먼저 시집간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하고 실전 경험을 풍부하게 쌓아야 한다. 평생 지루한 표정으로 누군가가 시키는 일만 겨우 소화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다간, 심지어 주어진 일 앞에서도 가끔 게으름을 부리다간 인생은 금방 망가지고 만다.-P103
  28. 이것도 걱정이라서 못하고 저것도 걱정이라서 못 하게 될 떄가 있다. 위험 요소를 미리 고려하고 대비하는 정도를 지나 나의 겅정에 꼼짝없이 당하고 말 때,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깨달았다. 어떤 선택 뒷면에는 늘 위험이 있다는 것을. 매 순간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도. 그게 책임이라는 것을 안 순간 전부 다 고려할 때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왜 아무것도 없는지 알 수 있었다.-P105
  29. 아직은 좀 더 완성시켜야 할 부분이 많음을 알기에, 요즘 나는 '스타 서빙'을 이루기 위해 이렇게 생각하는 연습을 해보고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단어를 내 하루 곳곳에 적절히 배치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단어에 맞게 나를 되돌아보거나 상상해본다. 오늘 나를 난처랗게 한 소님의 질문이나 행동이 있었다면 내가 어떻게 대처를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리고 다음에 그런 유형의 손님을 만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도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좋은 책을 읽고 따라하는 것보다 내 역사를 알고 수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큰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P108
  30. 냉정한 도시 남자처럼 나를 점검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어려움을 당당하게 이겨냈던 때를 떠오리며 이 순간을 실패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경험해본 적 없는 것들 앞에서 어려움이 없다면 그게 더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낯선일을 하는데 헤매지 않는다면 경우는 두 가지다. 모든 일에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거나 전혀 노력하지 않고 대충하느 ㄴ사람이거나. 그러니 못해서 부끄러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느 ㄴ사람들만이 실수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장하느 ㄴ사람만이 문제를 더 많이 발견하고 찾아낸다고 믿는다. 성장이 성고보다 더 가치 있다고 있야기 하는 건, 그러는 동안 발견하고 꺠닫게 되는 나만의 경험들이 내 안에 축적되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적 달성과 성질이 똑같은 성공은 언젠가 사라지고 만다. 끝이 있따. 나 이외의 사람들이 박수를 쳐줘야만, 인정받아야만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자세히 따져보면 그 의미가 내안에 없다. 그래서 성장이 성공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P 114
  31. 내가 모르는 부분에 있어도 솔직해져야 한다. 만약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는 척을 한다면 나는 그 부분에 있어서 평생 모를 것이다. 엔젠가 외국어가 유창한 어떤 사람과 대화를 오래 하게 됐다. 그런데 그는 이야기를 할 때 영어를 섞어서 쓰곤 했다. 어떤 뉘앙스를 표현하기 위한 나름의 방식인 것 같았다. 그리고 하필 나는 그가 쓰는 단어들을 못 알아듣고 있었다. 처음엔 유추해서 그 말들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꼭 이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그냥 넘어가고 말면 평생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리곤 당당하게 물었다. "그런데 세렌디피티가 뭐에요?""인사인트가 뭘 가르키는 말이에요?" 이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 사람이 내 서빙 용어를 모르듯이 나 또한 모르는 게 있다. 물어봐서 답을 찾고, 잊지 않으면 되다. 중요한 건 그 순간을 모면하려고 거짓말하지 않는 내가 되는 것이다.  솔직해지고 나면 얻게 되는 크고 작은 것들이 있다.-P 122
  32. 꺼내어 쓰고 싶은 마음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은 '솔직해지기'다. 옷을 벗어야 맨살이 드러나는 것처럼 마음 역시 겹겹이 둘러친 것들을 걷어내야 쓸 수 있다. 가장 솔직한 마음을 순수하게 꺼내 쓰는 일이 간단다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성심껏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완전하게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 모두가 마음을 시원하게 내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면 좋겠다. 힘들면 힘들다고, 모르면 모른다고, 상대방이 진심을 ㅗ듣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고, 또 다시 누군가에게 털어놓자. 언젠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이것도 인생의 일부분,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하자.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묻고, 그 마음을 꺼내어 진심으로 살기, 이것만이 우리를 성장시킬 것이다.-P 124
  33. 언젠가는 어느 여자 손님이 가게에 진열된 난에다 토를 한적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난이 었다. 동료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탄식헀고, 그 근처에 있는 손님들도 인상을 찌푸리며 조금씩 동요했다. 누군가는 수습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느낌적인 느낌이로는, 그 여자 손님이 '한 번 더' 그럴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여자 손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손님, 거름 주시나봐요. 감사합니다. 이것을 밑더름을 ㅗ삼아 더욱 더 성장하는 가게가 되겠습니다." 물론 그 여자 손님은 아무런 대답 없이 묵묵히 토를 했지만 그녀의 동료들은 웃으며 미안해했고, 또 주위의 손님들은 거름이란 말에 피식 웃었다. 잔뜩 긴장되어 있던 분위기가 느슨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손님의 흔적을 치우면서 생각했다. '그래. 이것은 정말 거름이다. 조선 시대에 인분을 모아 거름으로 쓰던 조상님들도 있는데. 이까짓 것쯤이야! 이까짓 것쯤이야!' 그리고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더 이상 스트레스가 될 수 없었다. -P131
  34. 삶을 진실하게 살다보면 그 태도가 사람을 대할 때도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든, 그 진실한 태도가 내가 하려는 일 곳곳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 어떤 위치에 있든 일보다 어려운 게 사람이라면, 여기에도 진실된 노력과 마음이 필요하다. 그동안 나는 몇 가지 방법으로 인간 관계에 대한 문제를 극복했다. -P135
  35. 그러다보니 어떻게 하면 우리 음식을 좀 더 알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다. "배달을 하면 어떨까?" 동료가 말했다. 그리고는 조금 긴장을 풀고 농담 섞인 대화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땐 재미있는 상상을 하는 게 습관인 나와 동료들은 이런 얘기를 해봤다. "만약 801호에서 족발을 배달시켰다면 나는 901호의 우편물이나 지로 영수증 같은 것을 함께 가지고 올라가는 거야. 그리고 족발을 배달하고 나올 때는 손님에게 물어보는 거지. '혹시 음식물 쓰레기 있으면 주세요. 내려가는 김에 같이 버리게요.'라고." "괜찮겠어? 하긴, 효찬 씨는 웃음소리도 특이하고 목소리도 명량하니까. 부담은 없겠다." "큰 힘 드는 것도 아닌데. 한 번 해보자. 우리만의 서비스를 하자고." 그리고 홍보 전단지를 만들었고 배달을 시작했다. 웃으며 손사리를 치는 손님도 있었지만, 빵끗 웃는 얼굴로 내 손에 무언가 쥐어주는 손님도 있었다. 큰 어려움이나 비용 없이도 손님에게 큰 즐거운을 줄 수 있었다. 나도 손님의 표정과 반응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게 됐다. 그러다보니 배달 단골손님들 중 몇몇 집은 언젠가부터 음료수를 준비하거나 과일을 깍아서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해줬다. 마이너스에서 흑자로 돌아오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P142
  36. 서빙가들도 사림인 이상 욕을 하는 손님, 인상 찡그리는 손님, 기분 나쁘게 만드는 재주를 지닌 손님 등을 겪고 나면 온 세상의 모든 군상을 보게 되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때 자신의 기분을 가진 기분 좋게 푸는 방법이 있다. 손님에게 그대로 대들거나 음식을 갖다줄 때 툴툴대는 것이 아니다. 나쁜 기분을 그대로 되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심호흡 한번 하고 다시 다가가 최상의 서비스를 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그 손님의 '우리는 알수 없지만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된 기분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이상 쓴 손님도 결국 웃거나 말투가 부드러워진다. 놀랍게도 어느새 모두의 굳은 마음이 풀어진다. 다른 직업에 종사한 사람들도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운 후배, 동료, 상사에게 떡 하나 더 주자. 나를 위해서 -P154
  37. 불평불만만 있어서 일의 능률도 없고 오히려 주방의 분위기를 해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가게에 있어서 필요치 않은 사람이라 재단을 해야 되지만, 대부분 그전에 알아서 그만둔다. 또한 한 가지의 일을 맡기면 한 가지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하나하나 검사해주고 한 가지씩 일을 시키면 무난하게 해내는 평범한 사람이다. 마지막 한 명은 더 나은 방법이 있는지 스스로 모색하는 능동적인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검사를 하거나 시킬 것이 아니라 자리만 만들어주면 된다. 그런 사람을 인재라고 부르며 요직에 세워두어야 마땅하다.-P162
  38. 상처가 덧나면 우리는 걸치고 있었던 옷을 벗는다. 약을 바르기 위해 맨살을 드러낸다. 마음의 병도 이렇게 치유하면 좋겠다. 가장 힘들 때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것으로. 그래야 어디가 어떻게, 왜 아픈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아픈지를 알면 그다음엔 어떻게 고칠지에 대한 방법도 누구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알아가고 성장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둘러쳐진 여러 겹들을 걷어내고 똑바로 볼 때 시작된다고 믿는다. -P172
  39. 가게에서 비싼 것을 서비스로 내어준다고 해서 서비스의 질이 함께 오르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쑤시개에서 감동을 느끼고, 누군가는 솔직한 대답에서 마음을 연다. 그래서 서비스는 가격이 아니라 가치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된다. 그리고 그 가치는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것이어야한다. 서빙하는 사람에게 관찰이 중요한 이유다. -P174
  40. 그대는 이 스마트한 시대에 살아남고 싶은가? 그러면 검색하지 말고 사색하자. 이것만이 삶의 균형과 즐거움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P177
  41. 그리고 계절이 몇번 더 바뀌고 내가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시 가족 모임이 있었고, 명절이었다. 식사를 하다가 재밌는 일을 겪었다. 내가 재수를 하기로 마음먹을 때에 결정적으로 큰 여향을 준 어른꼐서 당신이 내게 대학을 권한 걸 기억 못하셨던 거다. "아, 내가 그랬어?" 그때 다시 생각했다.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서 말이다.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짓는 선택을 하는 데에 있어서 타인의 말을 더 많이 듣고 귀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정작 나를 위한 걱정들로 가득한 말이고, 누군가가 보기에는 안정된 길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나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고 그러니까 그들이 그 상황에서 아무리 심각하게 진심으로 이야기했든 그렇지 않든 시간이 얼마만큼 지나고 나면 결국 나만 기억하는 말이 될 것이라고. 왜 기억을 하지 못하셨을까 생각해봤다. 이 선택과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 나뿐이었다. 그분의 말은 어디까지나 그분의 시각에서 하는 말이다. 책임을 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갖는 말의 무게는 다르다. 아마 대학에 대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 타인의 말을 지나치게 많이 반영하게 될 때가 있다. 사소하게는 라면을 끊일 때도 그렇다. 누구는 라면 봉지에 든 재료만을 넣고 끊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옆에 있는 어떤 사람은 이것저것을 넣어 먹고 시프도 좀 적게 넣어야 제 입에 맞을 거다. 만약 이 라면을 끊여서 나 혼자 먹을 거라면 다른 사람에게 간을 봐달라고 하거나 라면에 넣을 재료를 정해 달라고 해선 안 된다. 누구는 짜게 먹고 누구는 싱겁게 먹고 누구는 맵게 먹는다. 내가 먹을 거면 내 입맛에 맞춰야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내 인생을 살고 싶다면 내 입맛에 맞춰야 한다. "살맛 난다."는 말은 아마 그런 데서 오지 않았을까?-P187
  42. 오피스아워는 계속 진행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의 두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이블에 두부 요리라고 하나 만들어볼까 궁리도 해본다. 열려 있는 대화의 문으로 모두가 용기 있게 들어서길 바란다.-P200
  43. 엄마가 할머니와 통화하기까지는 약20분이 걸렸다. 한글과 숫자를 잘 모르기 때문에, 단축번호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가 와서 친절하게 그런 것들을 입력해주거나 편리한 기계들을 잘 쓸 수 있도록 알려주기 않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계속 엉뚱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못 걸리를 몇 번이나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가 계속 전화를 잘못 걸고 있다는걸 인지하고부터 20분이 될 때까지 엄마는 연신 전화를 걸었다가 끊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그 시간 동안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기는커녕 종이에 적힌 삐뚤삐뚤한 숫자를 진지하게 보면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엄마가 지금까지 나한테 전화를 걸었던 그 시간들이 20분은 더 걸렸던 거였구나. 그런데 나는 5초도 안되어서 끊었던 거구나.'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된 몇 가지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정리가 됐다. 그리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소리를 내어 우는 게 그 순간에 내가 한 일이 었다. 내가 생각한 효도는 엄마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고 가끔씩 용돈을 드리느 ㄴ일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남다른 가정에서 자라오면서도 다른 사람ㄷ르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을 철저히 내 삶에 적용하려고 했다. 좋은차, 넓고 크 집, 정갈하고 비싼 음식, 높은 연봉을 주는 직장이 삶의 행복수치를 정하는 기준이라고 믿으며 살았던 것이다. 여태 전혀 다른 생활을 해오고서도 그때까지 나는, 궁극적으로, 그 엇비슷한 삶을 흉내 내려고 했던 거다. 사실 아버지가 제일 좋아 하는 음식은 치킨과 삼겹살이다. 엄마는 맵지 않느 ㄴ국수를 좋아한다. 명품 옷이 어떻고 좋은 차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인지도, 관심도, 구별도 없다. 다만 하고 싶은 게 있을 뿐이었다. 엄마는 내 목소리를 듣고 상태를 궁금해했다. 확인이 되고 가늠이 되면 그것으로 행복한 삶이었다. 눈앞에 당장 자식이 없더라도, 그렇게나마 느낄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마음이 커다랗게 부풀 수 있는 넉넉한 행복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 부모님은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나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싶어했다. 당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것들을 내심 부정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다른 가정들처럼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행복은 좀 더 놃은 곳, 저 사회라는 곳에 있다고 믿어서 바깥의 기준을 나에게 적용하려고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나를 키워낸 울타리 안의 풍경보다는 바깥의 사정을 더 궁금해하며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세히 보지 않는 것이다. 마치 "우리 엄마 손은 작고 통통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 손을 찾으라면 못 찾고 제가 생각하는 어머니의 손에 대한 이미지와 비슷한 손을 덥석 잡고야 마는 게임처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 때가 있다. 반드시 바꿔어야 하는 삶은 따지고 보면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여기까지를 인정하는 데에 나는 너무나 오래 걸렸다. 가족을 이해하고 나니, 여러 형태의 삶들이 다르게 보였다. 하나를 깨달은 뒤 여러 가지를 수용하면서 살 수 있게 된 기분이 든다. 이 일을 계기로 자기관찰과 타인관찰도 중요하지만, 가족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게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부모님이 다른 사람들보다 서툴고 능숙하지 못한 게 나의 핸디캡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새삼 깨달아서 힘이 됐고. 세상에는 날 때부터 잘난 사람만 있을 수는 없다. 연약한 사람, 말주변이 없는 사람, 사회의 약자라고 분류되는 여러 사람들이 많고 많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이다. 아마 꽤 많은 사람들이 사회 안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은연중에 체감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나는 그렇게 정의되어 있는, 그래서 사회의 보호를 받고 있는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덕분에 더 넓은 폭의 사고와 태도를 갖추게 됐다고 마음을 바꾸고 나니, 좀 더 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폈다. 어머니의 증조할머니가 어머니와 많이 비슷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내지식 또한 부모님을 닮을 확율이 유전적으로 높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벌써부터 겁먹고 싶지도 않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조건을 갖고있는냐가 아니라 어떤 태도와 마음을 갖고 있느냐니까. 얼마나 열심히 행복을 느끼는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얼마나 열심히 잘기 위해 노력하는지에 따라 행복과 사랑의 크기가 달라진다고 믿는다. 나는 무한하고 싶다. 그리고 어떤 시련과 아픔이 와도 그 또한 내가 살아가면서 감당해야 되는 인생의 일부분이라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동안 자신이 숨겨온 어떤 핸디캡을 떠올린 사람이 있다면, 그분들 역시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해본다.-P 256
  44. 하지만 이렇게 경직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오늘을 효찬 스럽게 살다보면 또 그렇게 책처럼 하루하루를 써나가다 보면 ,결국 이것들 자체가 하나의 인생이 된다는 간단한 공식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삶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은 오늘과 지금이다. 오늘을 사소하게 생각하고 지금을 대수롭게 여긴다면 우리는 특별한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없다. 사소한 것에 특별함이 있따. 그런데 애초부터 특별한 것은 정말 존재할까? 극한의 스포츠이자 꿈의 스포츠로 불리는 포뮬러원은 시속 300킬로미터로 질주하면서부터 경쟁이 시작된다고 한다. 이런 위험천만한 스포츠 속에서 15년 동안 매년 1승을 한 레이싱 선수가 있다. 그의 이름은 미하엘 슈마허다. 그는 큰사고를 당하면서 현재까지 거동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든 사고는 놀랍게도 경기장이 아니라 스키장에서 일어났다. 이처럼 사소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이 갑자기 큰일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평범한 속에 비범함이 있고 사소한 것에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느끼는 방법은 음미하고 생각하며 곱씹는 것이다. 그러니 '느끼기'에 소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한다고 해서 하루가 닳지 않는다. 더 열심히 느끼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사라져버리지도 않는다. 단지 뼈가 되고 경험이 될 뿐이다. 손해 보는 장사? 결코 아니다. 인생을 즐기고 싶다면, 더 단단하게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즐거원 보이는 일들만 좆을 필요가 없다. 생각을 바꾸고 태도를 바꿔서 즐겁지 않았던 순간에도 재미를 느끼려고 또 만드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가 찾고자 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내가 느끼려 하지않는다면 켤고 느낄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살맛나게 또 맛깔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온전히 그대가 삶을 느끼는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주위에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그래서 사소하게 넘겨버리기는 그 일들을 다시 한 번 자세히 들여다 보자. 삶도 오래 보아야 예쁘다.-P275


Q. 이 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읽었는가?

아니오

Q. 이 사람처럼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고,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라면 어떻게 극복 할 수 있을까?

과거 몸값을올리는방법이라는글로 처음만났었고, 세바시에서의 강연도 들은거 같고, 꿈톡이라는 곳에서 주체하는 강연에서 실제론 처음봤다. 왜 그가 이렇게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치는지 이책을 보기전까지는 몰랐다. 무엇이 이사람을 일으켜 세우길래 저 눈빛과 몸, 그리고 아우라를 감고 다니를 것일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책에 남겨 있었다. 불우한 가정환경, 철저한 노력에도 실패한 여러사업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받아들인 스타서빙, 그는 이시대에 은은히 빛나는 긍정에 아이콘이다. 스스로에 신념을 갖게되고 그것을 다른사람을 기쁘게 하기위한 것일 때 나도 이사람처럼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만이 아닌 내 고객을 위해서 그는 또 하루 하루를 살 것이다.

Q. 이 사람에게 닮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

목적을 갖게되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더 나은 모습이 되고, 그 모습이 처음엔 어색하고 힘들지만 습관으로 만들어 나중에 자연스럽게 그 모습이 되고 주의 사람들에 힘이 되는 사람이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사람에 책을 보게 된게 행복하다. 눈설미는 계속해서 키워야할 것이고, 어떤 돌발 상황이라도 기꺼이하는 모습을 닮고 싶다. 기꺼이한다는 것이 말과 행동이 하늘과 땅에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을 나는 알게되었다.

Q. 이 분야에 종사하고 싶은가? 그 이유는?

서빙, 사장님 가게에서 얼마간 급히 일손이 필요해서 일을 한적이 있다. 하루종일 서서 일하는 이직업은 동작도 빨라야하고 머리도 좋아야한다. 상황판단 능력은 더욱 더 좋아야한다. 이렇게 힘든일로 이정도 성과를 낸다는 것은 정말 이직업을 숙련가를 넘어선 전문가에 길까지 갈 수 있는 그만에 노력이 있는거 같다. 사실 사람과 만나는 것은 너무나 좋아한다. 서빙이라는 것으로 만나는 것은 또 다른 만남이다. 종사하고 싶지 않다. 결국 서비스를 한다는 것 나를 팔아야한다는 것인데, 늘긴 하겠지만 내가 나를 더욱 더 잡아먹을 것이다. 기꺼이 할 수 있지 않을 것이다.

Q. 감상평

과거 몸값을올리는방법이라는글로 처음만났었고, 세바시에서의 강연도 들은거 같고, 꿈톡이라는 곳에서 주체하는 강연에서 실제론 처음봤다. 왜 그가 이렇게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치는지 이책을 보기전까지는 몰랐다. 서빙이 전문가에 길로 갈 수 있다고 느끼게 해준 사람이다. 소소한 것이라도 깊이 파고들면 결국 사람들에게 그 능력을 인정 받게 된다. 누가 이사람과 일하고 싶지 않을텐가? 본인 일뿐만아니라 계속해서 성장해가는 사람과 누구든지 일을 하고 싶어한다.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스스로 잘아간다는 모습을 잘 모여주는 사람이다. 결국 누군든 내 삶은 내가 책임지게 되어있다. 나를 보고 세상을 보고 가족을 보면서 계속해서 사색을 하면서 방향을 잡고 꾸준히 노력을 해야한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지금에 내가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나는 소리없이 쌓여갈 것이다. 성공보다 성장에 초점을 두고 나를 보자. 내 속에 내가 무엇을 원하고 성장하려고 하는지 보자. 나를 계속해서 키우자. 이런 생각이 든다. 결국 삶은 온전히 본인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 누구에 이야기를 듣게되어도, 선택은 본인에 몫이다. 충고하지 않길 충고 한다는 이야기와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도 이제 쓸대 없는 오지랖을 줄이고 필요한 것에 집중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오지랖이 아닌 베품이 될 수 있도록 나를 더욱 좋고 깊고 넓은 사람으로 스스로 만들고자 노력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제공해주는 책으로 기억 될 듯싶다. 언제 가서 족발 한그릇을 하고 와야겠습니다. 글쓰니 족발 먹고싶다. 살이 찌니 물이나 먹고 정신차려야겠다. 실패, 실패, 실패, 실패, 실패, 를 계속해서 했지만 결국은 본인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굉장히 잘 뽑아냈고 결국 해내고 말았다. 아직 젊은 친구니 계속해서 얼마나 더 성장하게 될지 기대가 크다. 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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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서민의 기생충같은 이야기][노력도기질이다]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국내도서
저자 : 서민,지승호
출판 : 인물과사상사 201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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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평점(10점 만점)

9점 잔잔한 이야기로 서민적 글쓰기 겸 말하기를 센스있게 전달한다.

Q. 인상 깊은 구절(25개 이상/각 구절 당 번호와 쪽수를 기입해 주세요)

  1. 생각해보면 중고교 때 공부는 좀 잘했지만, 삶의 재미는 진짜 없었어요. 초등학교 때보다 더 재미가 없었던 것이, 여자 없이 남자 애들만 잔뜩 있잖아요. 거기서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아무런 재미도 없었고, 다시 돌이키기 싫은 시절이었죠. 빨리 탈출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는 대학 가면 좋은 세상이 열린다고 스스로를 다독였고요. 선생님들이 그런 만을 했잖아요. 공부할 때가 좋은 거라고. 거짓말이더라고요. 저는 그때를 벗어나니까 훨씬 더 좋은 세상이 왔어요. - p24
  2.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떤애가 "너처럼 병신 같이 생긴 애는 처음 보았어. 넌 어떻게 그렇게 생겼냐?"고 한 적도 있어요. 그때 제가 뭐라고 그랬냐 하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럴 수도 있지"라고 했어요.-p27
  3. 집을 나온 지 몇 달쯤 후 벤치에 앉아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에는 잘 못 느끼고,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던 세상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세상이 참 아름답더라고요. 열 달 넘게 지옥에 있다가, 물론 그 지옥은 우리 둘이 같이 만든 지옥이죠. 그 지옥에서 기어 나와 보니까, 원래 제가 누리던 것들이 너무 아름답고 감사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 p43
  4. 집사람을 소개해준 분이 제 이혼 담당 변호사예요. 처음에는 '또 수임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요.(웃음)그분은 그럴 분이 아니고요. 아무튼 여자를 소개받았는데, 너무 예브고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와 헤어지고나서 밤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연락을 할까, 말까를 100번도 더 왔다 갔다 했어요. 연락하면 또 만나자는 거고, 결국 결혼하자는 이야기잖아요. 화려한 생활과 평범한 남자가 되는 길 중에서 고민을 진짜 많이 했어요. 결국 그러다가 문자를 남겼죠. '잘 들어가셨나요?', 그 문자 하나로 결혼을 하게 되었죠. 집사람은 외모가 뛰어나지 않습니까? 항상 애프터를 받는 사람이었고요. 그래서 제 문자에 대해서 별반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해요. '얘도 나를 좋아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다는데, 저한테는 운명을 결정짓는 문자였던 거죠.(웃음)- p51
  5. 제가 워낙 확고하기 때문에. 하루 이틀 생각한 게 아니라 30년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애를 왜 안가지냐?'라고 할 때 '외모 때문에' 그러면 없어 보이잖아요. 그래서 인터뷰를 할 때 이렇게 말을 하고는 해요. '우리나라처럼 아이를 착취하는 나라에서 아리를 낳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지식인 같잖아요.(웃음) - p53
  6. 결혼은 얼굴 뜯어먹고 사는 것이 맞아요. 게다가 집사람의 미모가 표피적이지 않고 깊이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살면 살수록 '어제보다 예쁘네' 하는 걸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더 잘 살 수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애교가 있어요. 필살기가 정말 대단해요. 어쩜 그렇게 귀엽고 유머가 있는지, 그런 것을 보기 위해서 좀 맞아도 된다, 이런 생각이 들죠. - p57
  7. 누워서 잘 때 털을 쓰다듬으면서 잔다는 것이 저는 되게 행복하고요. 집사람도 그렇고요. 그게 억지로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남편이 개를 키우고 싶은데, 부인이 싫다고 하면 키우면 안 되는거죠. - p63
  8. 그래서 일정 부분 자기 것을 포기하면서 살아가야 되는 건데요, 저는 이렇게 세뇌를 해요. 어렇게 예쁜 여자랑 사는데 내가 이 정도는 참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런 식으로 결혼은 자기를 설득하면서 희생을 합리화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 p67
  9. 그렇죠. 결혼에 대해 이왕 이야기를 했으니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여자가 남자를 고를 때 집안일을 하는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요즘은 남녀 다 일하는 시대인데, 집안일을 누군가는 해야 되잖아요. 남자가 전혀 안하는 경우 여자가 직장과 가사를 다 하기가 힘들어요. 그러면 인생이 피곤해집니다. 저는 여자들한테 항상 이런 말을 합니다. 얼굴보다는 차라리 집안일을 할 것인지를 보라고요.(웃음)- p 67
  10. 우리나라의 낙태가 세계적으로 상위권이라고 하는데, 70퍼센트가 기혼 여성이거든요. 남편이 콘돔을 안 썼다는 이야기죠. 여성의 피임은 정말 어려워요. 한 달 중 21일을 호르몬제제를 먹어야 되는데, 우리 호르몬이 아주 정교한 시스템에서 가동되고 있거든요. 외부에서 호르몬을 투여하면 호르몬 체계가 흔들릴 수 있어요. 피임약 먹고 그러다 불임이 되는 거는 그런 이유입니다. 반면 콘돔은 껍질만 쓰면 되는 거니, 얼마나 쉽습니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콘돔을 잘 만드는 나라입니다. 콘돔을 쓰면 느낌이 안 좋다고 하는 애들이 있는데, 꼭 잘 하지도 못하는 애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설사 느낌이 안 좋다고 하더라도 여자들을 위해서 느낌을 요만큼만 양보하면 되잖아요. 그걸 양보 안느라 많은 여성들이 임신으로 몰고, 나중에 그 책임을 여자한테 덮어씌우잖아요. 낙태를 하면 또 문란하다고 욕을 하고요. 자기랑 해서 그랬는데 말입니다. 그런 것이 어이가 없는 거죠. 남자들은 정말 간단하게 피임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 남자들이 알아서 피임 기구를 챙겨야 합니다. - p71
  11. 개업의 선배 보면 재미없는 하는 경우도 많고요. 보람은 물론 있겠지만, 무슨 과를 하든지 거의 대부분이 감기 환자를 보는 현실에서 뭘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다른 길이 없을 때는 그렇게 살아야겠다 싶었는데, 훨씬 더 재미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선생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이미 '기생충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원래 예정된 기간 3주에다가 방학 4주를 더해서 7주간 일을 했는데, 끝까지 말씀 안하시더니 마지막 주에 말씀하시더라고요. "혹시 하지 않겠냐?"라고. 되게 조심스럽게 "네가 하면 참 좋을 텐데, 내가 하라고 할 수는 없고", 이렇게 말씀 하셨어요. 기생충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있으니까 꼬셔봤자 안 할 거다, 이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제가 한다니까 굉장히 좋아하시면서 조촐한 잔치를 열어주셨는데요. 선생님은 연구를 열심히 하고, 이런 것을 기대하셨는데, 그 판단은 조금 틀린신것 같고요.(웃음) - p76
  12. 그렇죠. 특히 임상 의사들은 기초의학에 대해서 뭘 저렇게 하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죠. 원광대 계시는 기생충학 선생님이 학술상을 탔는데, 그분이 정신과와 기생충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기생충을 택했는데요. 이 상을 받으면서 그 시절이 떠오른다고 하더라고요. 촌스러운 선택을 했다고 야단을 맞았던 생각. 저희 아버님은 저를 잘 부탁한다고 밥을 한 번 사셨는데요. 교수님께서 뭐라고 하셨냐 하면, 기생충학을 못 하게 끌고 가는 아버지들도 있는데, 밥까지 사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하셨대요. 물론 아버지가 기생충을 한다는 것에 좀 실망하시기는 하셨죠. 어머니도 그렇고. 그래도 나중에 서울대 교수까지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셨대요. 저는 사실 거기에 큰 관심은 없었고요. 저는 교수만 되면 된다고 생각했고, 아버님은 꿈이 크셨죠. 저희 누나 아들이 의대를 갔어요. 그 후에도 누나가 아들을 너무 죄더라고요. 일일이 간섭하고. 그래서 제가 누나에게 '애가 알아서 골부 잘하는데 왜 그렇게 하냐'라고 했더니, "애가 나쁜길로 빠지면 너처럼 기생충을 할 수가 있잖니?" 그러더라고요. 누나의 생각은 이렇구나 하고 알게 되었죠.(웃음) - p 79
  13. 제가 원래 악플 같은 것도 신경을 안 쓰고요. 제가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부분이 있고요. 옛날부터 어차피 남들은 저에게 대해서 별로 좋은 이야기를 안 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모도 좀 그렇고. 제가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이런 적이 별로 없고, 어릴 때부터 못생기고, 조용하고, 성격도 이상하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와서 제 스스로 남의 말에 신경을 안 쓰는 면이 생긴 것 같아요. 기생충을 그래서 했나?(웃음) 제가 좋으면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 p81
  14. 말라리아가 지금은 아프리카에 있지만, 지구 온난화가 되면 전 세계로 퍼질 수가 있다는 우려도 있고요. 아프리카 사람을 100만 명씩 죽이는데, 그렇다면 이걸 박멸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위아 더 월드' 정신도 필요하잖아요. 제가 강의 때마다 하는 이야기인데, 말라리아는 모기에 물려서 걸리니 모기장만 있으면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데, 아프리카에 '모기장 보내기 운동' 이런 것을 별로 안 하잖아요. 관심도 없고요. 우리가 남을 돕는 것에 대해서 너무 인색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아프리카처럼 기생충으로 고통받는 많은 나라가 있고, 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연구하느 ㄴ사람이 많습니다. 선진국이라는 것이 별건가요? 오지랖이 넓어서 남의 고통에 관심을 갖는, 이런게 선진국이잖아요. - p86
  15. 어기는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교수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성스러운, 최고의 직책이 되었으면 좋겠고요. 교수 좋지 않나요? 회환 위기 이후에 각 직종마다 정년이 많이 짧아졌잖아요. 교수는 상대적으로 긴 편인데요. 보통 예순다섯 살인데, 정치권은 나이와 관계없이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정치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요? - p89 
  16. 그때는 듣보잡에 가까워서 별로 안 탔어요. 야간 나내는 듣보잡 정도였죠.(웃음) 국회의원이 기생충 학자들한테 김치에서 이런게 발견되었다, 이거는 어떤 거냐 하고 먼저 물어보면 우리가 의견을 모아서 답을 할 거잖아요. 그래야 되는데, 먼저 언론에 터뜨린 거죠. 그게 굉장히 잘못된 거라고 보는데요. 사실 별것 아닌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서 국회의원 이름은 다 기억하게 되었지만, 이게 누구를 위한건가요? 덕 본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이런게 있으면 최소한 뭔가, 이후로 만전을 기하게 되었다, 이런게 있어야 되는데 그런게 전혀 없고요. 모두에게 상처만 주고 말았던 거죠. 사람들이 김치를 불신하고, 김치 회사는 장사가 안되고. 이 기생충알이 인체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 이런 것만 물어보았어도 대답을 해주었을 텐데요. 우리는 항상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데, 신문 1면에 나오고 갑자기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어요. 질문이 대충 이래요. '기생충알이 있는데, 이게 김치에서 살 수 있냐?'고 하면 놀라 가지고, 우리가 "살 수야있죠"그러면 "살 수 있답니다"이렇게 보도를 하는 거에요. 사실은 100개의 회충알이 있으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1개 살까 말까 한 것이고, 그나마도 5일, 일주일, 열흘 지나면 다 죽는 건데, 그걸 가지고 그렇게 이야기할 것은 아니죠. - p92
  17. 그게 비료를 안 쓰고, 유기농을 했다는 강력한 증거죠.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고, 중국산 김치를 먹어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되는데요. 크게 보도했다가 태산명서일필로 끝난 대표적인 경우죠. 어쨌든 국회의원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한탕주의에 빠진'이라는 글을  썼다가 그 의원의 보좌관하고 싸웠지 않습니까? 그때 많은 경험을 했죠. - p93
  18. 기생충은 같이 공존하면서 '이만큼만 주면 여기서 잘 살겠다' 이런 거고, 바이러스는 '우리가 널 다 먹겠다' 이렇게 기본이 안되 있는 매개하고 진화상에서도 밑바닥에 있는 애들이죠. 기생충이 정말 착하다는 증거가 오랫동안 약을 먹어왔는데도 전혀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회충약만 해도 벌써 30년정도 먹어왔어요. 그런데도 회충은 지금도 회충약 한알에 죽습니다. 이런 애들이 없죠.  - p95
  19. 그거는 아니고요. 6대라고 하면 왠지 없어 보이고 금방 끝날 것 같아서, 9대라고 한 거고요. 사실은 6개입니다. 그중 하나가 스파르가눔은 뱀을 먹고 걸린다, 하지만 뱀을 먹지 않고 걸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과연 뭘 먹고 걸리는가?하는 겁니다. 교과서에는 민물고기나 약수라고 되어 있는데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담수어나 약수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거죠. 두 번째는 간질이라고, 소의 간에 사는 기생충인데요. 이것은 뭘 먹고 걸리는가, 우리는 미나리를 의심하죠. 왜냐하면 걸린사람들이 다 미나리를 먹었고, 미나리즙을 시아버지께 드렸는데 걸렸다는 경우도 있고요. - p101
  20. 제가 사실은 멧돼지한테는 선모충이 얼마나 있을까 조사를 한번 했어요. 당연히 결과가 잘 안 나왔어요. 연구 보고서 냈더니 평가가 C로 나왔고, 앞으로 그쪽에는 연구비 신청을 못 하게 된 건데요. 이래서 사람들이 안 하는구나 싶었어요. 이제는 제가 방송도 나가고 돈도 좀 벌고 하니까 이런 연구를 제 돈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을 하는 거죠. - p102
  21. 항문 근처에 벌레가 있으니깐 환자는 변이 나오는 줄 알고 화장실로 가서 힘을 주었는데, 변이 안나오고 항문에 뭔가 걸린 느낌이 들러래요. 손을 뻗어보니깐 뭔가 축축하고 기다란 것이 만져지느 ㄴ거죠. 결국 그 환자분이 벌레를 빼냈죠. 원래 수명이 5년 정도 되는 앤데, 환자분이 설사를 한 탓에 밀려나서 생을 마감한 거죠. 나중에 길이를 재어보니까 6미터 쯤 되었대요. - p105
  22. 시체가 다 없어져도 관의 유기물만 좀 남아 있는 상태에도 알이 나오기도 하죠. 여기서 100퍼센트 보존되는 것은 아니고요. 그보다 옛날에는 전 국민의 100퍼센트가 감염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죠. 기생충이 우리 친구라는 것이 괜한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가 전통의 보존 이런이야기를 한다면 기생충을 예뻐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 p107
  23. 왜 없겠어요. 수돗물이 있으니까 거기에 맞는 맞춤형 기생충이 있죠. 와포자충이라는 기생충이 수돗물을 타고 전파돼요. 1993년 미국의 밀워키 사건은 대단했죠. 40만 명이 걸렸던 사건인데요. 나중에 원인이 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서 시장이 물 끊여 먹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는데요. 거기서 대단한 것이 뭐냐 하면, 처음에 단체로 사람들이 배탈이 나서 출근을 안했고, 그 이후에도 계속 환자가 생겼어요. 이걸 불과 5일 만에 진단을 한건데, 너무 대단한 거죠. 미국의 화경보건국인가 여기는 대단한 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바로 알아내는지.- p108
  24. 논문이라는 게 말이죠. 어떤 미라는 보았더니 회충이 나왔다 그러면 논문을 한 편 쓸 수 있어요. 또 다른 미라를 보았더니 역시 회충이 나왔다, 그걸 논문으로 또 스면 저도 미안하고 학술지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말이에요. 다른 뭔가가 있어야 해요. 이 사람은 회충과 더불러 편충도 걸렸다든지, 회충이 원래 있어야 할 장소인 장은창자에 있지 않고 간으로 가 있다든지 이래야 논문으로 실려요. 그게 아니면 회충 유행지가 아닌데 회충이 나온다든지. 참쿨큰입흡충은 이런 시나리오가 멋지게 작동을 해서 외국 학술지에 실린 거죠. 원래 참굴큰입흡충은 우리나라 남서 해안 지방에만 있는 기생충인데, 이게 500년 전 경상남도 하동에서 발견된 미라에서 나왔다, 어떻게 된거냐? 그 시대에는 참굴큰입흡충이 하동에서도 유행했다, 이런 스토리가 나오잖아요. 단순히 참굴큰입흡충을 발견했다는 것보다 재미있죠? 이런 식으로 논문 쓸 때 중요한 것이 스토리예요. 스토리를 짜는 것. 턱없이 짜면 안되고, 증거를 모아서 스토리를 만드는 거죠. - p110
  25. 그런데 이런 스토리를 잘 짜려면, 제가 항상 제자들한테 하는 이야기인데, 책을 많이 읽어야 된다, 특히 소설을 많이 읽어야 된다고 합니다. 저도 소설을 많이 읽었더니 논문, 특히 고찰 부분을 잘 쓰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소설을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기본 요건인 거죠. - p111
  26. 간장게장은 5일 이상 숙성을 한다, 이런 식이라도 가이드라인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많은 숫자가 회충약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려 하거든요. 회충약이라는 것이 물론 필요하기는 하죠. 가쪽기리 모여서 뭔가를 같이 한다는 것이 요새는 회충약 먹을 때 말고는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약을 먹고 나서 기생충 걱정을 안 해도 되겠다는 심리적 안정감도 주는데요, 이왕이면 약국에서 회충약만 팔지말고 디스토마 약도 자유롭게 팔게 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간디스토마는 담도암이 있으니까 치요할 필요가 있은데요. 병원 가서 대변검사를 하고 결과가 양성 반응이 나와야 디스토마 약을 주고, 그래야 보험이 된다고 하면 까다로워서 사람들이 기피하게 된다는 거죠. - p119
  27. 기생충 학자들은 항상 그렇게 이야기해야죠.(웃음) 우리끼리의 묵계라고 할까요? 상상도 못 할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해야 남들은 듣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고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기생충 없앤다고 해서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웃음) - p122
  28. 모기장 가져가서 사용한 후에 돌아올 때 다른 사람 주고 오면 되죠. 요새 모기장은 모기가 닿으면 바로 죽도록 약품처리가 되어 있답니다. 기사를 보니까 LG에서 모기 박멸하는 에어컨을 개발했다는데, 진짜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런게 나오면 저희 기생충 학자한테 한 대씩 줘서 '어떻습니까?'하고 의견을 듣고 그러면 좋잖아요.(웃음)그렇게 안하더라고요. 장사를 못해. - p125
  29. 광절열두조충은 꺼낼 떄 다 죽어 있죠. 구충제 먹여서 꺼내야 하니까요. 수술로 꺼낸 게 움직이는 경우는 많이 보았어요. 20년 된 스파르가눔도 움직였고요. 제가 논문에도 썼어요. 꺼낼을 때 꿈틀댔다고.(웃음)- p129
  30. 드물기는 하지만 기생충을 한번 정도는 의심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백혈구 중에서 기생충에 감염되면 올라가는 호산구라는 게 있거든요. 호산구가 높아질 때는 기생충 검사를 의뢰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의과대학이라면 기생충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게 맞다고 봐요. 루게릭병ㅇ이라고 있는데요, 그게 빈도가 10만 명에 하나 나올까 말까하는 굉장히 드문 질환입니다. 그런 병에 대해서는 배우면서 백만 명 이상의 감염자가 있는 기생충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죠. - p130
  31. 실제로 경향신문 칼럼에 "기생충이나 연구하지"라는 댓글이 가끔 달려요. 논문을 많이 쓰니까 그런 말을 들어도 찔리지가 않는 거죠. 실제로 "저 올해 논문 열 편 썼습니다."라고 댓글을 단 적도 있는데요. 그렇게 할 수 있는다는 게 되게 좋더라고요. 앞으로도 매년 열 편씩은 쓰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는 해요. 들개 시절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논문을 쓰려고 해도, 하루에 한두 줄도 못 쓰고 그랬어요. 뭐든지 안 하다 하면 어렵잖아요. 세 편 정도만 써보면 그 벽이 허물어지고 논문 쓰는 게 별게 아니구나 싶지만, 그때는 어찌나 괴롭던지.- p138
  32. 그 후로는 네이처에 제 1저자로 쓴 사람이 나오고 있지 않죠. 저같은 과학자에게 네이처나 사이언스는 북극성 같은 존재예요. 지난번에도 황우석 박사 사태가 났을 때, 과학계 사람들은 처음에 다 황우석을 지지했죠. 왜 그랬냐 하면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이 설마 조작이겠냐,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요. 네이처, 사이언스, 셀, 이걸 NSC라고 부르는데요, 이게 우리한테는 거의 신이에요. 저는 그 꿈을 다 버리고, 쪽수로 하겠다는 거고요.(웃음)- p141
  33.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기초의학이 위축된 거는 외환 위기가 결정적이지만, 의학전문대학원도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한 학기에 1,000만원 이상씩 비싼 등록금을 내고 학교를 다니니, 그걸 한탕에 만화하기 위해서는 기초의학 같은 것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마음을 가진 것 같아요. 실제로 매년 의대를 졸업하는 3,000명 중에서 2,000명이 의전원생인데, 처음 의전원을 만든 취지는 의전원생은 졸업 후 기초의학에 많이 갈 거라고 생각한 거거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물론 의전원의 긍정적인 면이 있기는 하죠. 임상의학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고, 의전원 출신이 그전 의대 추신보다 연구를 잘할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기생충학이나 기초의학에는 안 좋은 영향을 끼친 거 같아요. - p144
  34. 보통 책을 쓰다가 안 되면 좌절을 하는데, 저는 좌절하는 대신에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언제가는 베스트셀러를 쓰겠다는 마음으로 깠던 것이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기회라는 것이 언제 올지 모르니, 미리 준비를 해두는 게 중요하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 쓰고나니까, 그전에 제가 전문가가 아니었다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슨 말이냐면, 서민의 기새충 열전에 나왔떤 기생충을 학교 수업 때 애들한테 가르치는데, 너무 잘 가르치는 거예요. 각 기생충에 대해서 쓰려고 열댓 편씩 참고 문헌을 읽다 보니까 그렇게 박식해진 거예요. 2탕을 쓰겠다는 것도 챗에 안 나온 기생충을 가르치려니 제가 답답해서 그런 것도 있어요. 역시 사람으 책을 써야 전문가가 돼요. - p147
  35. 그럼요. 옛날에는 회충 가지고 하루 종일 가의하기도 했어요. 회충의 외모부터 시작해서 우리 몸에 들어오고 난 뒤의 행적 등을 1시간이 넘게 강의했죠. 요즘은 우리나라에 없는 것들은 한 번에 모아서, 이런 게 있다는 식으로 가의하고 말아요. 지금 문제가 되는 기생충 위주로 강의하고 있죠. 이거는 물론 자랑인데요. 2012년 전국 30개 의과대학이 동시에 기생충과목 시험을 본 적이 있어요. 거기서 우리 학교 애들이 5등을 했습니다. 다른 과목은 안 그랬는데요. 제가 탁월하게 강의를 잘했따는 이야기죠.(웃음)물론 문제 출제 위원 중 1명이 저였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출제 위원이 누군든 간에 우리 학생들의 실력이 좋았다는 거잖아요.(웃음) - p151
  36. 기초의학을 전공하면 배고프다는 인식이 너무 커요. 그게 기생충에 대한 편견보다 큰데요. 사실 지금은 그렇지도 않아요. 교수로서 월급 받는 것도 그렇고, 논문 하나 쓰면 논문 격려금이 100만 원에서 1,000만 원, 2,000만 원씩 되고요. 네이처에 쓰면 1억 원까지 주는 학교도 있거든요. 그런 현실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아요. 기초의학이 뭘 하는지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오직 돈 벌겠다는 마음으로 의대에 들어왔고, 지금까지 이걸 위해서 노력했기 떄문에 의사가 될 거야, 이것 말고는 어떤 말도 귀에 안 들어오는 것 같아요. 안타깝죠. 막상 기초 교수가 어떻게 사는지를 좀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 같은데요. 제 월급이 임상 선샘님보다 30~50퍼센트 가까이 적기는 하지만, 알바를 통해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임상 의사들의 삶이 사실은 만만하지 않아요. 새벽 2시까지 일하고, 당직도 서고 그러잖아요. 저도 학교에서 밤새고 이럴 때가 있지만, 그거는 제가 원해서 '이 논문 오늘까지 끝내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하는 거거든요. 그런 것하고 어쩔 수 없이 돌아가며 순번대로 하는 것하고는 기쁨의 정도가 다르다는 거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과 언제 올지 모르는 환자를 기다리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죠. - p152
  37. 이런 특혜는 다른 직업을 가진 이는 절대 가질 수 없다, 아직도 의사는 좋은 직업이고, 보람도 있다, 이렇게요. 그런데 항상 타워팰리스를 기준으로 삼으면 평생 불행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의사 자격증으로 누릴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의사가 택시 운전을 한다면, '닥터 택시'라고 이름을 붙이고, 요금을 두 배 이상 비싸게 받아도 남들은 이럴 거 아니에요. '나 탁터 택시 한번 타봤다', '어 나도 타보고 싶어.'- p158
  38. 결론이 이거죠. 남자라면 김태희를 고르는 게 맞는데, 여자라면 달리생각해야 된다, 못생긴 남자가 여자에 대한 존경심도 많고, 그래서 더 좋은 남편이 될 수 있다는 거죠.(웃음) - p161
  39. 의사를 믿지 말아야 할 72가지 이유 이책은 완전히 의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감을 이용해 돈을 벌자느 ㄴ거잖아요. 국민 건강을 담보로 해서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이비가 판을 치는 것은 의사들이 책을 안 써서 이런 거다, 그래도 글발이 좀 되는 제가 각 분야 전문가와 손잡고 의학 관련 시리즈를 다 섭렵하자' 이런거죠. - p168
  40. 자기가 잘 모르는 이야기는 핮 ㅣ말아야 되는데, 주로 구충제 그러면 '글쎄 의사한테 물어봐야겠는데' 하는게 아니라 자기네들끼리 '옆집 아저씨가 그러는데, 이렇다더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그 아저씨가 전문가가 아닌 거죠. 그래서 갑갑한 거예요. 구충제 관련 글에 이런 댓글도 있었어요. 댓글이 열 개쯤 있는데, 아홉 번째 댓글에 '서민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구충제 먹지 말라고 했어요.' '맛습니다.' 이런 댓글을 달아야죠. (웃음)뭔가 출처가 있잖아요. 아는 사람이, 또는 우리 언니가 그러는데, 이런 식이면 정체를 알 수가 없잖아요. 최소한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저한테는 전화해서 '진짜 그런 말 했냐?'고 물어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아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거죠. 너무 이런지식들이 많아요. 천식이라든지, 비만 이런 것들. 애가 자꾸 많이 먹어요, 이런 것에 대해 모르는 사람끼리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이렇다더라, 아니 저렇다더라' 하면서 싸우는 것이 너무 어이가 없다는 거죠. 의사가 10만 명이 되는 시대에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자기네들끼리 지식을 쌓고 있느냐, 이어에 껵분해서 전 과목 책을 쓰자는 생각을 한 거죠.(웃음)- p170
  41. 의학 사이트에 가서 논문 읽는 방법에 대해서. 1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거든요. 그런식으로 광고성 기사나 사이비 책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약간의 검색기술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이러면 자기가 아플 때도 도움이 되죠. 무조건 의사한테 '알아서 고쳐주시오'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공부를 하면서 답을 찾아갈 수 있으니까요. - p172
  42. 그러니까요. 이병이 어느순간 생기더니 미국 아이들 10명 중 1명이 이와 관련된 약을 먹고 있어요. 약을 먹으면 효과가 조금 있기는 한데, 그 약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거든요. 과연 부작용을 감수하고 아이들한테 약을 줘야 하느냐, 의문이 들죠. 이것도 한 예지만, 요즘에는 병을 만드는 주도권이 제약 회사로 넘어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약 회사는 자본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돈을 쓰기 유리하고, 의사는 파편화되어 있기 떄문에 그런 것 같아요. - p176
  43. 고양이 때문에 걸리는 게 아닌데, 번지수를 잘못 찾은거에요. 사람들이 톡소포자충에 걸리는 이유는 오염된 야채나 돼지고기, 소고기, 양고기를 덜 익혀 먹기 때문이거든요. 99퍼센트 정도가 이걸로 걸리고요, 나머지는 오염된 물을 통해서 걸리는데요. 고양이로 인해서 걸리는 것은 거의 없다느 ㄴ말이죠. 사람들이 톡소포자충 보도가 나가니까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버려요. 버려진 고양이가 먹을 게 없으니까 쥐를 잡아먹는데, 그 쥐가 톡소포자충에 걸린 쥐면 고양이도 감염이 된다는 말이죠. 그 뒤 일주일 동안 대변으로 톡소포자충의 알을 잔뜩 뿌립니다. 그게 다시 쥐나 소, 돼지 등 다른 동물한테 가는 거죠. 그러니까 길 고양이를 만들면 오히려 톡소포자충을 더 확산시키는 것이 되는 거죠. 그 기사의 문제점은 그거였어요. 톡소포자충에 걸리는 원이이 고양이가 아니라 날고기나 물, 야채를 통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안 했고요. 고양이가 악의 근원인 것처럼 해서 오히려 고양이를 내쫓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톡소포자충이 더 확살될 수 있따는 거죠. - p179
  44. 의사들도 돈에 되게 민감할 수 밖에 없어요. 예를 들면 정신과가 갑자기 뜬 것이 뭐냐하면요. 노인요양병원에 정신과 의사가 꼭 있어야 된다고하거나, 재활의학과도 이런 것 때문에 취직률이 높아지니까 지원율이 올라가는 거거든요. 모든 것은 추동하느 힘은 돈이죠. 다 수가를 올리면 해결되는 일이고요. 해적한테 총을 맞았던 석해균 선장 사건도 응급 의료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었는데요. 석 선장은 다행히 살았지만, 마땅한 응급실을 찾지 못해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2008년 자료를 보면 전국 20개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한 외상 환자가 551명인데, 그중 32퍼센트인 179명은 적절한 치료만 되었다면 살릴 수 있었던 환자래요. 그런데 이런 응급실을 갖추기가 민간 차원에서는 쉽지가 않아요. 수가가 낮으니까요. 아주대도 계속 적자를 봐서 유지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하잖아요. 그런 것은 민간에 맡기지 말고, 국가가 어떻게든 관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나라에서도 석 선장 사건 이후 문제의식을 갖고 그런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니까, 앞으로는 외상으로 인해 죽는 사람이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p187
  45. 포경수술보다 사실 우리나라는 콘돔 문제가 더 심각한 것 같은데요. 거듭 이야기하자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좋은 콘돔을 만드는 나라거든요. 0.0015미리미터 정도로 되는 최고로 얇은. 사람들이 그걸 쓰다 빠진줄 알고, 일ㅈ어버린 줄 알고, '어디 갔지?' 하고 찾는데, 끼워져 있는거죠.(웃음)그 정도로 느낌이 좋은 콘돔을 만드는 나라에서 콘돔 사용률이 미국의 10대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이 어이없는 거예요. - p190
  46. 그래도 수가는 현실화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심장 수술을 9시간 동안 했다, 무지 힘든일 입니다. 하지만 쌍꺼풀 수술하는 것보다 덜 받잖아요. 이런 왜곡된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는 거죠. 의사들은 다 느끼고 있는 거고요. 힘든 일, 예를 들어 뼈를 맞춘다든가 이런 것을 했을 때, 좀더 많은 돈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기 떄문에 문제가 발생 할 수 있죠. - p194
  47. 갑상선암에 대해서 굳이 저뿐 아니라 유럽의 저명 학술지에서도 과잉 진단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학회 내부적으로도 그렇게 결론이 났고요. 2~3미리미터짜리를 뭐하러 떼내나, 빨리 자라는 암이 있고, 천천히 자라는 암이 있습니다. 갑상선암이 사람을 위협하려면 최소한 300년 정도 걸려요. 그것도 짧게 잡아서. 사람의 수명이 여든 살밖에 안되니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거죠.- p 198
  48. 우리나라가 차라리 독일보다 낫다고 봅니다. 미국만 해도 보험회사가 몇백 개가 되는데, 어떤 병원은 A보험이랑 계약하고, 그 옆 병원은 B 보험이랑 계약하고 이런 식이라서, 자기는 A병원이 가깝지만 훨씬 먼 B 병원에 가야 보험을 적용받는 경우가 있죠. 그런데 우리는 모든 병원이 건강보험과 계약하도록 강제했으니, 의료 천국이죠. - p211
  49. 아닙니다. 그 책의 다른 내용도 수박 겉핥기고, 진지하게 파고 들어간 것이 없어요. 책은 그 따위로 쓰면 안됩니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읽어도 시간이 아까운, 결코 좋은 책이 아니었어요. 역시 사람은 아는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 p224
  50. 의사협회는 굉장히 보수적인 답체잖아요. 그런데 의협 회장조차도 민영화를 반대하고 있죠. 민영화가 되면 의료의 질이 낮아진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또 의사들 자신도 결국에는 환자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죠. 게다가 의료 민영화가 된다고 해서 의사들의 삶의 질이 금방 좋아지는 것도 아니에요. 자본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의사들 사이에서 격차가 벌어질 수도 있고요. 삼성같은 빅4 같은데는 더 잘되고, 그렇지 않은 데는 더 안되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싶습니다. 지금도 이미 그러고 있는데요. 그게 심화될 것 같습니다. - p233
  51. 공공 병원이 왜 필요하냐 하면, 돈 많은 사람은 그런 데 안 가잖아요. 삼성, 아산 병원을 가지. 없느 ㄴ사람들이 싼 진료비 때문에 공공 병원을 가거든요. 그 사람들이 가는 병원을, 적자라는 이유로 문을 닫는다는 것이 너무한 거죠. 그렇게 따지면 국립의료원도 진작 없어져야 했고, 다른 공공 병원도 다 없어져야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도 우리나라 병원의 절대다수가 민간 병원이고 외국에 비해 공공 병원이 부족한 편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아무리 떠들어도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더라고요. 그런 거 보면 참 갑갑하죠. 그게 가까운 미래에 자기 일이 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저야 뭐 단국대 병원에서 VIP로 해줄 거니까 관계가 없는데요. 사람들이 당장 남의 일이라고 무관심하더라고요. - p241
  52. 저느 ㄴ건강보험료가 올라가면, 예를 들어 국민 1인당 한달에 3만원씩만 더 내면, 민영 의료보험 필요 없이 완전히 건강보험료로만, 병원에 가서 우리가 최고로 많이 내야 1년에 100만원을 내는 그런 시대가 온다고 믿어요. 지금 의료비 중 자기부담률이 40퍼센트인 것 아세요? 병원비가 100만 원이 나왔으면 40만 원ㅇ르 내야 되는 거죠. 40만원이 별것 아닐지는 몰라도 1억 원이라고 하면 4,000만 원을 내야 되잖아요. 이 보장률을 90퍼센트까지만 올리면 치료비가 1년에 1억 원이라고 하면 1,000만 원만 내면 되는데요. 그걸 조금만 조정해서 100만 원만 이하로 부담하는 법을 만들자고 몇몇 단체들이 노력하고 있거든요. 사실 건강보험료는 더 낼수록 우리한테 좋은 거에요.- p254
  53. 건강보험은 정말 지켜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것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국민들의 여론이 제일 중요한데요. 사살KTX 민영화 이런것도 국민들이 솔직히 관심 없잖아요. 같이 동참하고, 싸워주고, 막아줘야 되는 건데, 정말 남의 일처럼 생각하면서 '시민의 발을 볼모로' 이런 기사가 나올 때 분개하잖아요. 시민들이 그 기사에 이용당하는 거죠. 그럴 때 같이 좀 분개해주고 해야 되는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요. 철도 공사 직원들끼리 반대해봤자, 얼마나 무서워하겠어요. - p251
  54. 저자의 의도가 뭐냐고요. 친구 딸은 저한테 들은 대로 썼는데, 선생님이 채점하면서 틀렸다고 했대요. 더 책임감 있게 기르자느 뜻이지 기르지 말자는 뜻이 아니라고요. 세상에, 저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저자의 의도를 정하는 게 말이 되나요? 이런 교육이 문제인 것 같아요.- p260
  55. 의사들의 문제가 그거잖아요. 주변에 의사 친구 말고는 다른 친구가 없고, 다 의사끼리만 놀고. 의사끼리 모여서 우리는 잘났고 너네는 못났다, 이런 특권 의식이 굳어지다 보니 소통이 안 되는 거죠. 의사들끼리는 당연해 보이는 일이지만 다른 애들 보면 '놀고 있네'라느 ㄴ느낌이 들수밖에 없고, 이게 점점 샇이면 엄청난 괴리가 발생하는데요. 그걸 극복하려면 책을 읽거나 아니면 일반인들 하고 많이 대화를 하고 그래야 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 p286
  56. 한 달쯤 지났을 떄 제가 한 번 방송을 잘한 적이 있어요. 기분 좋더라고요. 다시보기로 찾아서 보고 뿌듯해하고 그랬죠. 재연할 떄 가끔 연기가 잘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보면 뿌듯하죠. 바보 연기 이런 것을 잘해요. 제가 망가진다기보다 실제로 약간 그런 면이 있기 때문에 잘하는 것 같아요. 그런게 보람이죠. - p308
  57. 제가 권위의식이 없기 때문에 마음대로 깔 수 있는,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교수기 때문에 편하다고 해요. 제가 어린 시절부터 자기 비하 이런 것에 일가견이 있었잖아요. 그런 것이 빛을 발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남한테 까이고 비난을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제가 더 즐거원하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 p310
  58. '개랑 사람이 같나'라는 건데, 그런 논리가 폭력적이라는 거죠. 개 자체보다 저희가 그 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한 건데. 아무튼 그때가 인생에서 제일 슬플 때였어요. 마이너스10이 최고 슬픈 거라고 하면 거의 마이너스 10이었는데, 슬플다는 것 때문에 위로를 해줄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느 ㄴ거죠. 반면 그때 조문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어요. - p330
  59. 서클 여학생한테 누가 물어보았대요. 서민이 돈을 꾸어달라고 하면 꾸어줄 거냐고 하니깐 민이 오빠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꾸어준다고 했대요. 그 사람이 돈을 못 갚는다고 하더라고 못 갚을 사정이 있어서 그럴 거라고 이야기 했다는데요. 그때 기분이 좋았어요. 친구 이런거 말고도 믿음이라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 같네요. 제가 신뢰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좋아했던 것을 보면. - p334
  60. "뭐 하나 더 시켜야하지 않을까요?" 그 말이 너무 반가워 하마터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뻔했다. 그 뒤부터 우리는 카페 주인이 째려본다 싶을 때마다 마실 것을 주문했다. 그때 마셨던 커피 때문에 치아 미백을 해야 했지만,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일하면 편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 p340




Q. 이 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읽었는가?

아니오.


Q. 이 사람처럼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고,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라면 어떻게 극복 할 수 있을까?

 일단 외모가 다르다. 정말 거울을 보고 슬퍼하고 자극받고 공부를 14시간 밖에 못해서 우는 서민 교수에 모습이 내눈앞에 있는거 같다. 내 단점을 알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모습을 나는 노력도 기질을 타고 난다고 생각했다. 나는 잘 아는 사람만이 나를 성장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집어내고 그것을 위해서 나를 쓸수 있다. 나를 얇게 파악하지 말고 나는 이러니깐 이걸 꼭 해야겠다하는 마음가짐이 나올 수 있게 나를 파야겠다.


Q. 이 사람에게 닮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

스스로를 잘 알고 자아성찰에 대한 깨달음이 있다고 느꼈다. 솔직함이 가장 큰 무기이다. 유머20에 사실 80에 대한 힘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자연스러운 융화이다. 읽는 사람이 위화감 없이 다가 갈 수 있는 배려는 정말 좋다. 곧 곧에 있는 깨알 같은 유머로 인해서 처음 접하면 어려울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선입견을 낮춰준다.


Q. 이 분야에 종사하고 싶은가? 그 이유는?

기생충학, 의사, 둘중에 하나라도 잘하기에도 힘든데, 글쓰기, 방송출연, 애견가, 한동안은 알콜 마스터, 거대 조직을 점조직으로 만드는 탁월한 인사 관리를 보면 어떤 것이든 하나 잡으면 끝을 잘 내는 듯싶다. 일정 수준까지 올라가기 까지 본인에 기질이 부족하더라도 그것을 노력으로 꾸준함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글쓰기는 정말 꾸준히 해서 나도 마태우스를 뛰어넘는 소설을 써야겠다.(웃음)


Q. 감상평

세상에 컬투에 베란다 쇼가 문을 닫은지도 벌써 횟수로 2년정도가 되다니 몰랐다. 서민 교수를 처음 접하게 된건 베란다 쇼였다. 약간 어울한 목소리, 마스코트와 같은 작은눈 하지만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솔직하게 하는 당당함에 나는 매력을 느꼈다. 언젠가 이야기를 해보면 소소한 재미를 같이 나눌수 있을까 했는데 바로 2016년 3월 12일 열정대학 특강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깨알같은 유머를 들으면 모인 열대인들은 신나게 웃을 수 있었다. 사진을 찍을 때 교수님 앞에 앉아 찎을까했는데 살짝 자리를 비켜주셔서 "이런 날이 올지 몰랐다고 이런 소소한 행복이 좋다"고 말했다. 교수님은 "이런게 소소한 행복이에요?"라고 하셔서 "네"라고 대답을 해드렸다. "소신이 있어서 좋네요."하고 웃어 ? 넘겨 주신 교수님께 감상평이나마 감사하다. 책에 내용과 강연에 내용이 겹치는게 많아서 진짜 교수님은 솔직하고 담담한 사람이라는 것을 또 느꼈다. 사회에 대해서 본인이 속한 의사 집단에서 방송을 하는 방송인으로 글을 쓰는 작가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본인은 많은 자아비판과 어릴 적 느끼지 못한 인정으로 인해서 많은 어려움이 있으셨지만 세상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고 더 옳바른 이야기를 하고자. 언제나 용기를 내신다. 하나에 법이 제정이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게 되는지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우리가 모두 나서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200만에 젊은이들이 모여서 이런 의제를 이야기 할 때가 있아면 표를 무시할 수 없게 될꺼라고 스스로를 생각을 해야하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은 살지만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간다.  누군가가 행복한 삶을 서민 교수님에게 묻는다면 가진것 / 원하는 것 이라고 이야기 한다. 우리는 소유로써 행복은 이렇게 밖에 나타내지 못한다. 가장 행복할 때가 집에 있는 개들과 놀때라는 서민교수님을 보면 그 말이 진실 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스로 참되고 진실되게 살아가기 때문에 만족과 행복을 모두 다 가진게 아닐지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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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평점(10점 만점)

2.5 점 내 시간 좋은포장지에 똥이 들어있으면 여는 순간 악취가 난다.

Q. 인상 깊은 구절(25개 이상/각 구절 당 번호와 쪽수를 기입해 주세요)

  1. p44 쉽게 중독되는 사람에게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장점이 크다. 어떤 일에 중독이 잘된다는 것은 그만큼 열정이 강하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그일에서 누구보다 빨리 성고할 수 있다. 과거에는 몰랐지만 30대 후반을 살고 있는 내가 인ㅅ애을 살면서 깨달은 것들 가운데 하나다.
  2. p48 어떤 분야건 함꼐 생각을 공유할 사람이 있다는 건 실력 향상을 떠나 정서적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3. p50 당시에는 몰랐지만 내가 시를 벽에 붙여 놓음으로써 친구들에게서 긍적적인 피드백과 함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고, 더 나은 시를 쓰는 데 좋은 공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4. p68 나는 첫 시집의 실패에도 시 쓰기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에 대한 열정이 더 강하게 솟구쳤다고 말하는 것이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나는 지인들에게 "첫 시집을 냈으니, 이제 2집을 낼 거다. 기대해."라고 말했다. 얼마 후 고양 친구 T가 나에게 "1년에 시집을 두 권 정도 내면 좋겠네."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의기양양하게 "두 달에 한 권씩 낼 거다."라고 큰소리 쳤다. 첫 시집도 반자비출판으로 힘겹게 출간한 주제에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씨가 된 듯하다. 시집이 아닌 다른 장르의 책을 1년에 많게는 20여 권가량 출간하고 있으니 말이다.
  5. p73 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나는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공언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정말 대단하다며 시집도 냈으니 잘할 수 있을 거라며 용기를 북돋워주었지만, 다른 부류는 "기자는 아무나 하는 줄 아느냐!", "말도 더듬으면서 어떻게 기자를 하려고 그래?"라며 부정적인 말을 했다. 이미 확고하게 결심이 선이상 나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친구들의 말과 나의 내면의 소리를 따르기로 했다.
  6. p80 나는 서울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실천했다. 첫째, 다음카페'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 개설. 둘째, 서울역을 배회하면서 노숙인들의 고통과 비애를 뼛속 깊이 느끼기. 섯째, 매일 시집을 읽고, 시 한 편씩 쓰기
  7. p104 하루는 이정하 시인이 직접 운영하는 출판사 '명예의 전당'에 전화를 걸었다. 여직원이 전화를 받았는데, 나는 시를 쓰는 사람으로 이정하 시인과 통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잠시 후 이정하 시인이 전화를 받았는데, 그때의 감동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그에게 대구 출신으로 서울에서 시를 쓰고 있따고 말했다. 그리고 그동안 그의 시집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꼭 한 번 뵙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 출신이라는 말에 매우 반색했고 언제 한번 출판사로 놀러 오라고 말했다. 나는 이정하 시인의 언제 한번 놀라 오라는 말을 가볍게 듣지 않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출판사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이정하 시인이 바로 전화를 받았는데 나는 이정하 시인의 출판사를 방문할 약속 시간을 잡았다. 내가 이정하 시인을 만난다는 것을ㅇ 김종원에게 전하자 자신도 함께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김종원과 함께 이정하 시인의 출판사로 갔다. 그날 굉장한 대선배 시인인 이정하 신인과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누웠다. 이정하 시인은 유명 시인임에도 정말 소탈하고 편한 분이었다. 마치 고향 선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8. p108 다음 날 나는 지갑에서 신용카드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그 카드는 예전에 대구에서 삼성카드 영업을 할 때 만든 것이다. 나는 순간 짚이는 데가 있어 급히 카드사로 전화를 걸었다. 확인해본 결과 350만 원이 결제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결제 날짜는 잡지사의 예전 동료를 만났던 다음 날 새벽과 그다음 날이었다. 카드가 사용된 곳은 유흥주점과 마트였다. 그는 나와 술을 마시던 그날 의도적으로 내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빼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순간, 누군가가 망치로 내 뒤통수를 내리친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나는 당장 카드를 정지시켰지만 이미 카드는 한도 초과였다. 카드사 상담원은 최대한 빨리 경찰서에 신고하라고 충고했다. 나는 상담원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떄 당시 내 마음속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분노와 원망과 고통으로 가득 찼었다. 그런데 카드를 훔쳐 간 그보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아무리 나 자신을 질책하고 욕하고 비난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냉정을 찾고 관할 경찰서에다 고소장을 제출했다.
  9. p112 그러나 나는 막일을 하면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노력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막노동을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처럼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고 되고 결국 자존감을 잃게 되기 떄문이다. 나는 작업반장이나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반말을 하거나 함부로 말할 때 그냥 넘기지 않았다. 당신 나를 언제 보았다고 반말이냐고 눈에 독기를 품고 따지고 들었다. 그렇게 나가자 다른 사람들에게는 몰라도 나에게만큼은 반말을 쓰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나는 파이프와 벽돌을 옮기고 시멘트 포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나를 때도 주문처럼 외웠다. 지금 하는 이 일은 내꿈을 위해 치르는 대가라고, 마지못해 하는 일이 아닌, 내가 선택해서 하는 잠시 스쳐지나가는 아르바이트일 뿐이라고, 머지않아 내가 꿈을 이룬 순간 지금 하는 일들은 더없이 소중한 추억이 될 거라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이일이 내가 꿈꾸는 미래의 주춧돌을 놓는 중요한 일이라고 여겼다. 막노동 일을 하면서 시의 소재를 찾았고, 시어를 생각했다. 잠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돌릴 때 나는 일하면서 떠올렸던 시의 소재와 시어를 수첩에다 메노하곤 했다. 비록 몸은 고단했지만 시를 생각할 수 있어 즐거웠고, 시를 쓸 수 있어 행복했다. 시를 쓰면서 나는 스스로를 특별한 부류, 즉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메시지'가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노력했다. 어둠을 저주하기보다 빛을 가져오는 자가 되리라고 다짐했다.
  10. p116 출판사로부터 거듭 퇴짜를 맞고 있떤 어느 날이었다. 막노동 일을 마친 뒤 바로 고시원으로 가기보다 영등포역 앞에 있는 서점에 들렀다. 그날은 이상하게 시 코너가 아닌 소설 코너를 기웃거렸는데, 내 눈길을 끄는 표지가 있었다. 소설가 김하인의 <국화꽃 향기>였다. 나는 그 소설책을 구입하고는 근처 김밥천국에서 김밥 두 줄을 사 들고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급히 김밥을 먹고는<국화꽃 향기>를 읽어 내려갔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혼자서 킥킥거리며 웃다가 어느 장면에서는 눈물짓곤 했다. 한 권의 책에 그처럼 슬프도록 아름다운 감동이 깃들어 있따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그 후로 나는 꼭 일을 마친 뒤 서점에 들러 소설을 사곤 했다. 그때 조창한인의 <가시고기>도 읽었는데 폭풍 감동이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잠깐 소설 읽기에 빠졌었던 적이 있었다. 나를 처음으로 서설의 매력에 젖어들게 한 책은 대만의 여류소설가 경요의 <노을>이었다. 그 책은 나에게 사랑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하고 위대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소중한 책이었다. 당시 읽었던 그 책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몇 해 전부터<노을>을 사기 위해 인터넷 서점을 뒤져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절판된 것이다. 나는 얼른 그 소설이 다시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있다. <국화꽃 향기>,<가시고기>등을 읽으면서 과거에 가졌던 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자 막노동을 하면서도 오늘은 어떤 책을 구입할까, 어제 읽었던 내용에 이어 오늘은 어떤 내용이 이어질까 궁금해 일이 힘든 줄도 몰랐다. 당시 나에게는 시를 쓰고 소설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 낙마저 없었다면 나는 그 힘들었던 시기를 견뎌내지 못했거나 다른 길로 샜을지도 모른다.
  11. p119 나는 자기계발서를 30권쯤 읽었을 때 사고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그 생각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버킷리스트를 A4용지에 적어 내려갔다. -베스트셀러 작가 되기 - 대한민국 최고의 성공학 강사 되기 - TV, 라디오에 출연하기,-해외에 저작권 수출하기 -내가 쓴 글이 교과서에 등재되도록 하기 - 다양한 장르의 책 쓰기 - 외제차 구입하기 -대기업 등의 사보에 칼럼 쓰기 - 두 달에 책 한 권 출간하기 - 책 100권 쓰기 - 연 수입 30억 원 -대형서점에서 사인회 하기 나는 내가 적는 리스트들이 정말 실현될까, 이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언젠가 실현된다고 믿고 적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킷리스트를 적으면서 정말 이루어질까, 라는 의심에 사로잡힌다. 이런 의심을 가진 사람들의 꿈들은 절대 실현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의심으로 인해 확신이 무너져 중도에 포기하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 버킷리스트에 적었던 꿈들을 모두 실현했다. 아니, 그 이상으로 이루었다.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현재 자신이 가진 능력은 꿈 실현에서 그다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대신 실현된다고 믿는 강한 확신과 믿음, 잠재력 계발이 꿈 실현의 키가 된다. 나는 버킷리스트를 적은 종이를 지갑과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보고 암송했다. 이때 내가 습과적으로 했던 것이 있는데 바로 시각화다. 아직 원하는 것들을 성취하지 못했지만 마치 성취한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상상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각화를 습관화했다. 그러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적인 생각이 있던 자리에 긍정적인 생각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 저절로 치열하게 살기 시작했다.
  12. p128 나는 살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곰이 겨울잠을 자듯이 고시원 방에 있는 작은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최대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움직이지 않으면 체내 에너지도 덜 소모하게 되어 배가 덜 고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처음에는 내 생각이 맞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배고픔은 고통스럽다 못해 괴로울 지경이었다. 먹고 싶은 음식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족발, 회, 삼겹살, 치킨, 탕수육 등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다. 만약 내 앞에서 살아 있는 돼지가 꿀꿀거리고 돌아다니고 있다면 그대로 살찐 엉덩이를 물어뜯었을 것이고, 광어나 우럭이 펄떡거리고 있다면 칼로 회를 뜨지도 않고 통째로 뜯어 먹었을 것이다. 그만큼 배고픔이 심했고, 음식이 절박했다.
  13. p136 그날 밤, 거나하게 취해 고시원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내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술과 회를 얻어먹은 데 대해 기뻐하기까지 한 나 자신이 한없이 못나 보였다. 아니,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 한편에서는 지독한 가난에 찌들어 사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러곤 나를 향한 혐오스러운 감정은 다시 자괴감으로 바뀌었다. 순간 누군가와 부딪쳤다. 마음속에 온갖 증오로 가득 차있던 나는 그에게 다짜고짜 원망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뭐야? 결찰이다!"라고 말했는데, 내가 아랑곳하지 않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경찰이면 다야?"라며 눈에 독기를 품고서 대들자 그는 별 미친놈 다 보겠다면 나를 슬슬 피해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힘들었기에 그런말도 안되는 행동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해 화가 칠민다 못해 분노했다. 갑자기 돈이 싫다 못해 증오스러게 여겨졌다. 그날 야리끼리 일단으로 받았던 돈 8만 5천원을 그 자리에서 조각조각 찢어서 공중으로 던져버렸다. 찢어진 지폐들은 바람에 나부끼며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마주 오던 사람들이 이런 나를 어이없는 놈, 미친놈처럼 쳐다보며 지나갔다. 그렇다. 그 순간에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랬다. 완전 미친놈이었다. 도박에서 모든 돈을 잃고서 이성을 잃은 미친놈 같은 눈을 한 채 나는 바람에 흩어지는, 조각조각 난 피 같은 돈의 흔적들을 쳐다보았다. 가슴이 저미다 못해 찢어지게 아파왔다. 갈기갈기 찢어진 지폐의 흔적들이 마치 나 자럼 여겨졌던 것이다. 
  14. p.137  며칠 후 출판사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하나같이 비슷한 내용의 답신이었다. "보낸 주신 원고 검토를 마쳤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저희와 함께 작업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또 다른 원고가 있다면 다음에 보내 주시면 검토하겠습니다." 일부 출판사들은 답신 자체를 보내오지 않았다. 처음에 두세 번 이런 답신을 보면서 거절에 대한 실망이 컷지만 계속되는 퇴짜에 실망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 후로도 계속 출판사에다 원고를 투고했다. 모두 출간이 어렵겠다는 부정적인 답신을 보내왔다. 심지어 어느 편집자는 내용이 상당히 실망스럽다며, 차라리 시를 계속 써보는 건 어떻겠는지, 라는 약간 비꼬는 내용의 답신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그 답신을 끝까지 다 읽지 않고 삭제했다. 부정적인 기운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거정하는 편집자들의 말에 개의치 않았다. 이 정도에 상처 받거나 좌절한다면 내꿈은 이미 물 건너간 것나 다름 었다고 생각했다.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출판사들로부터의 거절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나는 유명한 자가가 아닌, 아직 예비 작가이기에 이런 시련은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과거 대구에서 삼성카드 영업을 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하루에도 수십명의 고객들에게 거절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출판사들로부터 거듭 퇴짜를 맞을 때마다 좌절과 절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오기가 생겨났다. '그래, 어딘가에 반드시 내 원고를 알아줄 출판사가 있을 거야.' '그래, 끝까지 해보자. 누가 이기나.' 이때 나는 다섯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출판사들로부터 여러 번 퇴짜를 맞았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포기해선 안 된다는 것, 둘째, 편집자들의 피드백을 공부라고 생각하며 계속 원고를 수정해야 한다는 것, 섯째, 세상에는 출판사들이 많다는 것, 넷째,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 다섯째, 지금 겪는 시련들이 훈낫 소중한 자산이 되어준다는 것 사실 성공한 시인이나 작가들 가운데 과거의 나처럼 여러 출판사들로부터 거절을 당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다. 그들 역시 거듭되는 출판사의 퇴짜에 좌절과 절망을 껶으며 절필을 결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마침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일부 출판사들은 원고를 반려하면서 부족한 부분에 대한 피드백을 해준다. 그 피드백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그리고 꾸준히 원고를 수정해나가면 처음 원고에 비해 훨씬 좋아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그들의 피드백을 통해 좀 더 나은 책의 기획력과 원고를 쓰는 요령을 얻을 수 있다. 나는 거듭되는 출판사들의 거정레도 계속 투고를 멈추지 않았다. 내 꿈을 실현 할 때까지 자존심 따위는 개나 주어버려야겠다고 결심 했다. 알량한 자존심보다 내 꿈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15. p142 나는 계속되는 출판사들의 거절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아무리 내면이 단단한 사람일지라도 거절당하는 횟수가 이백 번 이상 넘어가게 되면 내면의 확신과 믿음의 탑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안정적인 직장도 아닌,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그나마도 나가지 못하는 노가다 일을 하고 있는 현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이따금씩 부모님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적지 않는 빚에다 외동아들이 서울에서 이렇다 할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있으니 면목이 없었다.
  16. p144 심한 좌절을 느끼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는데 출판사였다. 그때 내게 전화를 주셨던 분이 바로 '출판계의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던 '바움출판사'의 고 이창훈 사장님이다. 그분은 내게 보낸 준 원고를 잘 읽었다며 원고와 관련해 의논할 것이 있다면서 출판사에 와달라고 말했다. 사실 그동안 의논할 게 있다며 들러달라는 출판사들로부터 당한 여러 차례 나쁜 기억이 있었기에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바움출판사와 인연이 되었다. 홍대 근처에 위치한 바움출판사는 당시 '책이있는마을'출판사와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었다. 처음 대면한 이창훈 사장님은 마흔 초반의 인상이 참 좋은 분이었다. 그분과 원고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때 이사장님은 두권의 시리즈 산문집을 기획하고 있었다. 내게 그날 이창훈 사장님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투고한 원고는 다음에 출간하는 것으로 하고 먼저 자신이 기획한 두 권의 산문집의 원고를 써서 인세 계약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투고한 원고를 퇴짜 맞은 데 대한 서운함보다는 이제 작가의 신분으로 출판사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뻣다. 물론 출판사가 원하는 퀄리티의 원고를 써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지 않았다. 갖은 고생 끝에 원고를 썼는데 출판사에서 퀄리티가 떨어진다면 거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책을 쓰겠다고 말했다. 그 순간 앞으로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17. p146 나는 고군분투한 끝에 5개월가량 걸려 2권의 산문집 원고 집필을 마칠 수 있었다. 나는 꼼꼼히 탈고를 마친 뒤 원고를 메일로 출판사에 보냈다. 그리고선 떨리는 심정으로 출판사로부터 올 답신을 기다렸다. 출판사로부터 답신이 오기까지 며칠 동안 나는 '내가 쓴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곤 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선 이번만큼은 정말 잘되리라 긍정적인 생각을 갖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내 필력을 믿었다.
  18. p147 나는 첫책을 계약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진짜 꿈, 즉 가슴 뛰는 꿈을 품으면 어떤 시련이 닥쳐도 그것을 이룰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장은 자신을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좌절과 절망이 내면을 더욱 단단하게 한다는 것도 배웠다. 작가가 되지 못하는 열 가지 비결 첫째, 위대한 작가가 되려고 노력한다. 둘째, 워드를 잘 치지 못한다고 겁부터 낸다. 섯째, 문서 편집 요령을 통달할 때까지 글쓰기를 미룬다. 넷째, 먼저 문학박사 학위부터 따고 나서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다. 다섯째, 출판사로부터 퇴짜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할 때까지 기다린다. 여섯째, 책을 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스스로를 자책한다. 일곱째, 남들이 보면 비웃을 거라고 걱정한다. 여덟 째, 너무 더워서, 너무 추워서, 너무 습해서, 날이 너무 좋아서 글쓰기 싫다고 불평한다. 아홉째, 천 문장을 쓰기 전에 모든 문학 사조를 분석한다. 열째, 사람들을 감동시킬 멋지고화려한 말만 골라 쓴다.
  19. p158 하루는 작은누나로부터 아버지 생신 때 집에 다녀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사실 아직 직업도 없는 상황에서 고향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집에 가봐야 대출금으로 인한 힘든 상황,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집안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원망 섞에 잔소리만 잔뜩 들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못난 아들이지만 자식 된 도리를 저버릴 순 없었다. 나는 잘 먹지 못한데다, 잦은 음주로 인해 초췌한 얼굴로 고향집으로 향했다. 그날 아버지의 예순아홉 번째 생신이 마지막 생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금요일 오후에 고향집에 갔다. 아버지의 생신에 빈손으로 가는 것보다 아직 직업도 없는 백수신세라는 것이 더욱 부끄러웠다. 그날따라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다 할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누나들을 통해 내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직장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따는 이야기를 들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나의 야윈 몸과 핼쑥해진 얼굴을 보며 걱정하는 언사를 늘어 놓았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어머니에게 신경질적으로 "지금 이상황에서 그깟 살 좀 빠지고 얼굴이 핼쑥해지는 게 대수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 당시 내가 했던 말이 많이 후회가 된다. 언제나 부모님은 자식 생각, 걱정뿐이라는 것을 서른 고개 지나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20. p170 나는 세 번째 책<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기다림>이라는 산문집을 쓰고 있었다. 출근 전 두 시간, 퇴근하고 나서 세 시간가량 책 쓰기에 매달렸다. 일과 병행하는 탓에 진도는 더디기만 했다. 그래도 하루에 A4용지 7-10장가량 써나갔다. 나는 어떻게 하면 원고 집필을 좀 더 빨리 마칠 수 있을 까 고민했다. 그러다 친구들을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초창기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퇴근 후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다음 날 일어났을 때 그렇게 허무 할 수가 없었다. 술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어김없이 신세한탄이나 직장 상사 험담, 또래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 등 내 꿈 실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들뿐이었다. 나는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자주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지'라는 회의감에 시달렸다. 내 꿈이 자꾸만 시간의 파도에 밀려가는 것만 같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꿈을 실현할 때까지 업무 외의 시간을 온전히 책 쓰기에 쏟기로 결심 했던 것이다.
  21. p176 평소 그녀는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금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으면 나에게 선물했다. 작가는 무릇 좋은 책을 많이 ㅇ릭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녀를 통해 알게 된 책들 가운데<노르웨이의 숲>과 <꿈을 찾아 떠나는 양치기 소년>,<그리스인 조르바>가 있다. 이 책들은 그녀가 읽었을 당시에는 유명한 책이 아니었디만 그녀가 읽은 뒤 몇 년 지나지 않아 베스트셀러, 스테디 셀러가 되었다. 그녀는 책을 고를 때 베스트셀러위주로 고르지 않고 그 책이 담고 있는 내ㅐ용을 보고 고르곤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만약에 그녀가 서점을 운영했다면 성공적으로 경영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22. p179 나는 그녀를 만나면서 좋아하는 남녀 사이에 꽃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오롯이 느꼈다. 그동안 이별과 사랑에 대한 시를 썼지만 그녀를 만난 뒤부터 내가 알던 사랑에 대한 개념은 완전히 달라졌다. 쉽게 말해 그녀에게 느꼈던 감정들이 진짜 사랑이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당시 이명제를 "그녀를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살짝 바꾸어서 말하고 싶을 만큼 나에게 있어 그녀는'사랑'그 이상이었다.
  23. 그날 나는 전화로 여자 친구에게 신문사에서 쫓겨났다고 전했다. 그러자 여자 친구는 전혀 심각하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잘됐네, 이제부터 자기가 원하는 글을 쓰면 되잖아. 비록 지금 힘들어도 인생을 길게 보면 오히려 이편이 훨씬 나을 거야. 자긴 꿈이 있잖아. 난 자기를 민더."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가슴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에너지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럿이 바로 '희망'이었다. 정말 나를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 더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오롯이 느꼈다.
  24. 어느 날은 사는 게 너무 힘든 나머지 죽기로 결심했다. 내가 죽어버린다면 밤마다 찾아오는 무서움과 그녀를 향한 그림움이 끝나겠지, 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나와 함께 있어주기 위해 오신 어머니에게 "엄마한테 미안한데, 나 죽어 버리고 싶어! 도저히 못 살겠다! 사랑하는 사람도 죽고, 도저히 힘들어서 못 살겠다!"라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차를 끌고 무작정 부산으로 향했다. 그날 비가 많이 내렸는데 시속 180-~200킬로미터로 달렸다. 빗길에 차가 미끄러지면 어떻하나, 이 따위의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냥 교통사고로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50분가량을 달려서 부산 톨게이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교통요금을 지불하려고 하자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톨게이트 사무실에 가서 이름과 자동차 번호를 말하고 입금 계좌번호를 받은 뒤 통과할 수 있었다. 그날 나는 뜻대로 죽지도 못한 채 부산에서 그냥 차를 돌려 대구로 와야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대구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어 이상하네, 분명히 차 안에 지갑을 너어 두었는데 '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찾아보다 콘솔박에서 지갑을 발견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분명 부산 톨게이트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았는데 보이지 않던 것이 집에 다 와서는 눈에 뛴것이다. 순간 한 가지 깨달음이 왔다. 그녀가 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순간 지갑이 보이지 않게 나의 눈을 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그녀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25. p250 나는 비전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래서 당시 나는 다음과 같은 '비전 선언문'을 작성해서 홈페이지에 올려두었다. 첫째,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가, 고정 팬들을 거느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둘째, 1년에 5권 이상의 책을 출간해 꾸준히 세상에 나의 존재를 알린다. 셋째, 꿈이 없는 사람에게 확고한 꿈을 심어주고,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강한 자신감을 심어주는, 세상에 빛이 되는 책을 집필한다. 넷째, 나의 강점인 책 쓰기, 동기부여 강사로서의 활동을 통해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한다. 다섯째, 1년에 3권씩 서정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린다. 여섯째, 꿈은 있지만 실현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돕는 드림헬퍼가 된다. 비전과 더불어 여덟가지 삶의 원칙을 지키며 살고자 노력했다. 물론 지금도 이원칙을 따르고 있다. 첫째, 아침 5시에 기상한다. 둘째 절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섯째,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넷째, 성공할 때까지 돈을 절약한다. 다섯째, 출판사의 원고 청탄은 신중히 생각해서 받아들인다. 여섯째, 매일 책을 읽는다. 일곱째, 꿈, 목표를 생생하게 상상하면서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열럽째,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노력으로 보완한다. 
  26. p252 마지막으로 가난은 재난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젊은 사람일수록 가난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얼마나 제약을 주는지, 얼마나 마음을 초조하게 하고 움츠러들게 하는지 알아야한다. 가난하면 차츰 꿈과 목표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가난하지 않다면 충분히 극복해 냈을 시련에도 쉽게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충분히 가난이라는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 내가 1인기업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가진 재능을 돈으로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세상에 대한 나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테고 자연히 부가 쌓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면 저절로 나를 둘러싼 가난이라는 환경은 부의 환경으로 바뀌게 된다. 과거의 이런 생각은 부유하게 사는 나의 현재 모습을 볼 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자가 되고자 한다면 성공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 부에 대해 사고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습관을 가져보자. 자신의 사고를 컨트롤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은 생각대로 일어나게 된다.
  27. p329 김태광이 말하는 책을 쓰면 좋은 열가지 이유 첫째, 보이지 않던 꿈이 명확해진다. 둘째,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게 된다. 셋째, 학벌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게 된다. 넷째, 자신만의 천재적인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다섯째, 책을 펴내는 순간, 독자에서 저자의 위치로 신분상승하게 된다. 여섯째, 부정적인 사고에서 긍정적인 사고로 전환하게 된다. 일곱째, 책 출간이라는 평생의 꿈이 실현된다. 여덟째, 자존감이 높아진다. 아홉째, 가족과 친척, 친구들, 동료들로부터 찬사를 듣게 된다. 열째,자식들에게 삶의 지혜를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다.
  28. p340 직장인이 책을 써야하는 이유 다섯가지 첫째, 책은 최고의 소개서다. 언론 인터뷰보다 더 영향력이 크다. 둘째,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 대중을 대상으로 책을 출간하게 되면 세상에 자신의 존재감을 들러낼 수 있다. 셋째, 전문가의 자격증이다. 책을 출간하는 순간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게 된다. 넷째, 미래가 달라진다.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생활에 활력이 생긴다. 다양한 기회들이 생겨난다. 다섯째, 사회에 공헌하는 일이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 노하우를 책에 담는다면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의 인생이 달라지게 된다.
  29. p361 남자, 자리계발하지 않는 여자 절대 만나지 마라. 여자, 야망 없는 남자 절대 만나지 마라. 성공해서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을 써서 성공하라. 가격을 보지 말고 가치를 보고 사라. 성공해서 BMW를 사는 것이 아니라 BMW를 먼저 구입해서 그에 맞는 마인드를 가져라. 성공해서 롤렉스시계를 차는 것이 아니라 먼저 롤렉스시계를 참으로써 그 위치에 맞는 사람이 돼라. 성공해서 멋진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멋진 배우자를 먼저 만나서 크게 성공하라. 빈 지갑, 가난한 현실을 탓하기보다 성공의 그릇, 마인드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라.


Q. 이 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읽었는가?

아니오

Q. 이 사람처럼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고,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라면 어떻게 극복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뻔뻔하게 이야기 한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내가 금전적성공을 이뤄도 이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서전이기 때문에 사실 이 내용들에 출처는 본이이겠지만 책을 읽다보면 거의 70년대 말에 상황 같다는 느낌이 온다. 그러나 사실 저자에 나이를 보면 2000년대 이야기 이다. 내가 20년전 있었을때 그랬나 싶지만 조금 당황스럽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일이라면 이렇게 처절하게 해야한다고 생각을 한번 해보았다. 역시 그런 환경을 처해본게 군대 정도라서 그런지 완전히 와닿지는 않는다. 작가라는 것이 이렇게 쓰고 글을 출판할 수 있는 것이면 나도 도전해야겠다. 12주 과정을 듣는 것은 사양하겠다. 3달만에 책을 쓰는것이 신기하다. 또한 그런 것을 듣고 하는 사람도 신기하다.


Q. 이 사람에게 닮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

본인이 사랑하는 것을 놓지 않는 고집과 신념은 정말 높게 산다. 하지만 그것이 다 이다.


Q. 이 분야에 종사하고 싶은가? 그 이유는?

작가라는 직업이 이렇게도 업으로 삼고 살아간다는 사람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나도 하고 싶다. 쓰고 내고 카페를 만들고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람을 모으고 다시 책을 내고 같은 방법을 반복하다보면 나도 어느순간 베스트셀러! 그리고 유명한 저자가 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하는 꾸준함에 힘이 무엇인지 알겠다. 나도 내 꾸준함을 계속 해서 해 나가야 겠다. 갑자기 인도영화 마운틴 맨이 생각난다. 사고로 죽은 아내를 생각해서 정하나와 망치로 산을 깍아 내린자. 마운틴 맨. 과연 비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끈기가 필요하고 할 수 있는 직업이라면 하고 싶다.

Q. 감상평
작정하고 읽었다. 속이 뒤집어 져도 읽어야 쓸 수 있다. 결국 다 읽었고 나는 시간을 아쉽게 썼다. 세상에 사람이 만명이면 만갈래에 길이 있다. 서로 교차하기도한다. 한동안 같이 길을 가기도한다. 그 길들 중에 이번에 읽은 길은 참으로 지독한 길이었다. 많이 쓰면 된다. 오래쓰면 된다. 버티면 된다. 라기보다 하다보니 늘었다. 양적 성장이 질적 성장을 보여주었다. 책에 깊이는 정말 눈물이 나는 정도지만 페이지는 인정한다. 물론 겹쳐서 쓴 인용구도 많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한 일들이니깐! 제목에 한번 탄식했고 내용으로 탄식했고 광고로 또 한번 탄식했다. 이책을 고른 내 손과 뇌를 탔하고 왜 이책이 독서의 즐거움이 있는지 당황스럽니다. 하루라도 빨리 책을 팔던지(알라딘에 조회하니 1000원이다. 에효) 열정대학에 기부를 하던지! 아니면 내 전용 냄비받침이 될지 모르겠다. 여러가지 내가 예민하게 반응을 하고 있는데 그 예민함에 상당한 영향은 준 책임에는 부정할 수가 없다. 앞으로 책은 꼭 서점가서 훝어보고 사야겠다. 충격과 공포를 간만에 안겨준 책이라서 오랫동안 내 뒷 생각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 것같다. (다른 하나는 별들의 전쟁이라는 스타크래프트 설정집을 그대로 쓴 소설이다.) 참 탄식이 절로난다. 내 생각과 내 시간과 내 노력이 이렇게 아쉬 울 수 있다는 것을 세삼 알게해준 책에게 고맙다. 한 동안 내가 아는 책이 아니면 독서의 즐거움 책은 잘 보고 선택을 해야겠다. 아 눈물이나내. 내가 책을 고르고 보면 잘 눈물이 나는 사람이 아닌데 ... 눈물이 난다. 눈물을 닥아내고 이제 새로운 책을 향해서 가야지 아니면 정말 속이 오염될 듯 싶다. 다음책은 체 게바라 평전,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스티븐잡스 평전,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를 골라 뒀는데 무엇 부터 볼지 고민이다. 다음책은 제발 내 삶에 시간을 슬프지 않게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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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장사꾼
국내도서
저자 : 김윤규,청년장사꾼
출판 : 다산북스 2014.12.22
상세보기



Q. 인상 깊은 구절(25개 이상/각 구절 당 번호와 쪽수를 기입해 주세요)

 

1.6p 이제는 적응력,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시대다. 꼭 인정받기 위해서만이 아리라, 어디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적응력은 치열한 사회에서 꼭 필요한 능력이 되었다. 나는 적응력을 가장 잘 잘휘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장사꾼'이라고 생각한다.

2. 25p “영업왕이 될 자질을 충분히 갖춘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나이가 어린 것 같네요. 자동차는 10만 원, 100만 원짜리가 아닙니다. 영업을 하기 전에 장사를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요?” 나이가 어리다는 말에 반박하고 싶은 마음도 그 순간에는 잠시 들었지만, 한참을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래, 영업왕의 말이니 맞는 말이다. 내공을 쌓자. 장사를 한번 해보자.’ 이렇게 해서 나는 장사의 길로 접어들었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3. 49P 머신이나 설비 문제도 연석 형이 앞장서 해결했다. 우리가 지금도 매장 오픈을 준비할 때 드나드는 곳은 시장이다. 황학동 시장에는 중고 주방용품, 가구, 국내 집기가 많고, 남대문시장에는 수입 집기와 식기류가 있다. 발품을 팔아 시장을 돌아다니며 가게마다 가격을 비교해보고 흔히 쓰는 용어로 쇼부를 본다. 아무래도 이건 연석형의 전문 분야다. 흥정의 달인, 김연석 선생은 만져보고 두들겨보고 뒤집어보며 꼼꼼하게 체크한다. 형은 커피 머신을 비롯해 각종 물품들을 중고로 매우 저렴한 가격에, 그럼에도 꽤 쓸 만한 녀석들로 잘 골라왔다.

4. p50 홍보는 이렇게 고객이 은연중에 하는 것이 베스트다!

5. p55 고민만 하다 보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먼저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이 옳은 것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볼 수 밖에 없다. 시간을 선택하는 데에 쓸 게 아니라, 선택한 것이 최선이 되도록 하는 데 써야 했다.

6. p63 당시 골목 안에 있는 가게들은 유명한 전집, 고깃집, 해산물을 파는 집 등 무거운느낌의 음식들, 소주 안주 중심의 식당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가벼운안주를 파는 맥주집으로 간다!

맥주랑 잘 어울리는 간단한 안주로 뭐가 가장 좋을지 조사했고, 우리는 감자튀김을 발견했다. ‘작은 가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감자튀김집!’

7. p68 발견한 것이 바로 파이렉스. 원래 계량컵으로 쓰이는 잔인데, 손잡이도 달려 있고 모양도 독특하고 예븐 데다가 눈금이 적혀 있어서 우리가 맥주를 정직하게 판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따. 컵이 약간 비싼 게 단점이긴 했지만, 나는 뭔가 이 왔다. 지금은 우리처럼 파이렉스 잔을 맥주잔으로 쓰는 데가 생겼다고 하는데, 당시 우리가 파이렉스 맥주잔을 쓰는 건 정말 최초였다고 자부한다. 그렇게 탄생한 우리 파이렉스 맥주잔은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각종 sns에 올라오는 사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열정감자를 알아서 홍보해주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8. p74 “될 일도 되게하고, 알될 일도 되게한다!” 알될 거란 편견을 깨고 결국 되게 하는 게 청년장사꾼 멤버들이다. 스스로 정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 혼자서가 아니라 멤버들이 함께 가는 것, 그리고 결국 달성해 보이는 것, 시간으로 승부를 하든, 아이디어로 승부하든 그 과정은 머리가 기억하고 몸이 기억한다.

9. p80 특히 oo데이, oo날이 되면 우리만의 방식으로 특별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며 뭔가를 더 기획하고 생각한다. 실제로 청년장사꾼의 매장에서는 기념일이 수시로 찾아온다. 가정의 달 기념, 수능 기념, 할로윈데이 기념, 국국의 날 기념 등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기념일이벤트를 통해 청년장사꾼만의 열정을 맘껏 드러내는 것이다.

10. p88 우리는 이렇게 매일매일 열심히 청결을 관리한다. 매장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RORmt하게 음식을 파는 것이야말로 손님들과 믿음을 ᄊᆞᇂ을 수 있는 첫 걸음이 아닐까? 그러니 오늘도 청소하자! 아주 깨끗이!

11. p98 “회사 피로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맴버들의 피로도가 높아지면 회사 전체의 피로도도 높아져서 운영이 더 힘들어 진다는 것이다.

12. p103 날씨가 안 좋으면 장사가 잘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가 단골손님을 만들기에는 절호의 기회다. 우리가 손님들에게 잘하면 잘할수록 손님들은 우리를 기억하고 다시 찾는다. 그러니 손님들이 우리 가게를 나갈 때는 항상 웃으며 나갈 수 있게 하자!

13. p112 우리는 감자집이 잘되는 이유를 제대로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자리 덕부인지. ‘감자라는 아이템 때문인지, 우리의 맨파워때문인지, 정말 무엇 때문인지. 명확히 알아야 또 다른 성공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14. p118 스타트업 기억의 직원들은 한 명 한명이 그 기업의 최고 홍부 수단이자 얼굴이다. 내가 회사고 회사가 나인 셈이다. 우리 멤버들은 다 한명, 한명이 청년 장사꾼이다. 그렇게 각자가 누구보다 열심히, 재미있고 활기찬 매장을 만들어 가기 위해 애써온 과정이 결실로 이어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15. p126 매장을 잘되게 하는 건 만든 사람이 아니라 오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당연히 오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사고해야 하는 것이 맞다. 오는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뭔가 문제가 포착 된다면 지체 없이 곧바로 해결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16. p135 우리 매장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다시 오고 싶은 재미있는 매장으로 키워나가는 것, 이는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청년장사꾼 멤버들이 가장 잘하는 것이라 자부한다. 그리고 바로 이점이야말로 우리가 장사로 돈 버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기도 하다.

17. p141 매출이 높으면 멤버들의 사기도 자연히 오른다. 수확이 확실한 것만큼 큰 동기부여도 없다. 그래서 이벤트를 단순히 이벤트로만 끝내선 안 된다. 동기부여, 우리가 놓칠 수 없는 포인트다.

18. p143 나는 맴버들이 그냥 장사를 하는게 아니라 장사를 통해 더 큰 것을 배워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목표매출을 정하는 일은 그냥 숫자를 정하는 게 아니라. 그달의 매출을 생각하려면, 한 달 동안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변수들을 살피고 고려해야한다. .

19. p150 날마다 새롭게 겪는 장사의 경험들을 공유하며 우리 멤버들은 이렇게 매일 조금씩 더 성장해간다. 가능한 모든 종류의 장사를 다 해보는 그날까지 우리의 도전은 아마도 계속 될 것이다.

20. p160 하지만 매장의 콘셉트는 일관되게 지켜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손님들의 피드백에 귀를 기울이되, 중심은 흔들리지 않기. 그리고 원칙의 일관성을 지키기! 일정함이 주는 안정감과 기대감은 손님들이 매장에 와서 은연중에 느끼는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21. p173 청년장사꾼의공유문화는 아지트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약점은 연대로 극복하고, 장점은 문한대로 활요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매장과 매장의 경우도 그렇다.

22. p182 비전이 공유되지 못하면 단체는 성정 동력을 잃을 것이다. 각야각색 멤버들의 다양성은 존중하되 같은 방향, 같은 목표를 중심에 두지 못하면 우리의 에너지는 제대로 모일 수가 없다.

23. p184 “상즉상 인즉상.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이윤이며, 신용은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이다.”

24. p195 간판깨기는 다른 매장이나 트렌드를 공부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매장을 다시 되돌아보자는 의미도 있따. 만약 다른 사람들이 우리 매장에 간판깨리를 하러 온다면 어떤 느낌일까? 우린 정말로 잘하고 있나?

25. p 209 손님은 12시에 왔는데, 그때 우리가 전혀 손님을 맞을 준비가 안되어 있다면 그것은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다른 멤버들에게도 예의가 아니고, 장사꾼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26. p224 나는 맴버들이 이렇게 우리가 하는 일로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낄때가 정말 행복하다. 안된다는 편견을 깨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에 그런 우리 스스로가 너무 대견하다.

27. p233 우리가 장사를 하며 배운 것들을 나눔으로써 불필요한 실패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따면 하나의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28. p255 지역문화를 만들고,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대형 프랜차이들이 넘보지 못할 재미있는 마을을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Q. 이 사람처럼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고,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라면 어떻게 극복 할 수 있을까?

 

가게를 하면서 온 손님에게 대쉬해서 감자 팔아서 결혼한 점은 하기 너무 힘들 꺼 같다. 극복을 하려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감을 모두 더 키우기 위해서 몸과 영혼을 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에 쏟을 수 있어야겠다. 뭔가 이것저것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잔념들이 고민들이 나를 힘들게한다. 딱 하나만 잘 해도 세상에선 어떻게 먹고 사는데는 크나큰 걱정은 없다. 그러니 제발 하나에 집중해서 호구지책은 마무리 할 수 있게 노력하자.

 

Q. 이 사람에게 닮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

 

무엇이든 도전하고 그 도전이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고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해결해 나가는 뚝심을 닮고 싶습니다. 결국 우리는 계속해서 문제를 만나게 되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답을 찾아가는지를 장사를 통해서 이사람은 소통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득을 취하되 사람도 취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내고 실행하는 능력이 바로 실력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실력은 책을 통해서 하는 공부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그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더 성장할 수있는데 이것을 가장 잘 잡아낸 사람입니다.

 

Q. 이 분야에 종사하고 싶은가? 그 이유는?

 

장사는 결국 내가 가진 그 문언가를 파는 행위이다. 형태가 다를 뿐이지 우리는 언제나 나를 판다. 시간도 팔고 능력도 팔고 자존심도 마음도 판다. 그렇게 파는 사람으로 살려면 이런 분야에서 파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깊숙하게 느껴보고 생각하는 기회를 얻는 것도 좋겠다. 나를 더 크게 키우려면 해보고 싶다.

 

Q. 감상평

 

장사라는 것이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팔게 될까? 파는 것에 집중해서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이 생각 하지 못한 해결방안을 만들고 실행하고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까지 올린 그 근성과 노력이 나는 존경스럽다. 청년 장사꾼에서 보는 인재를 보면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이 결국 살아남는다고 한다. 우리는 열심히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세상에서 산다. 성공을 비추는 것은 밝은 부분이라 다가가기 쉽다. 만약 실패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연하다는 것을 당연시 안하고 한번쯤 생각해본다. 이렇게 노력해도 안 되는 세상이라면 정말 슬프고 희망이 없는 사회일 것이다. 지금도 한번 실패를 하게 되면 계속해서 주홍글씨가 따라온다. 낙오자, 실패자, 부적응자, 어떻게 이들을 일으키고 손잡아 줄 수 있을까? 고민이 살짝 된다. 책을 통해서 본 강윤규, 청년장사꾼에 세상은 아직 노력과 근성, 실력이 통하는 사회이다. 과연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해본다. 손님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다시 재해석해서 더 나은 것을 제공하고, 끊임없이 더 나은 것을 생각한다. 고치고 또 고치고, 이게 진짜 최선이고 끝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닌 주변 사람들, 이웃 상가, 지나가는 행인들과 소통하는 것이 가장 먼저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열정대학 앞에는 열정도가 있다. 청년장사꾼이 야심차게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서 조성한 곳이다. 지나갈 때마다 큰소리에 인사를 들을 수 있다. 매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늘 인사를 잘 해주신다. 나도 덩달아 인사를 한다. 갈 때마다 음식도 맛있지만 에너지가 넘쳐서 충전돼서 나온다. 이런 건 정말 좋다. 책을 보면 정말 다양한 곳에서 경험을 한다. 월드컵 경기장, 해돋이명소, 명동, 골목상권, 백화점, 물건을 팔 수 있는 곳은 어디든 가리지 않는다. 이 경험들이 책에는 오롯이 녹아있다. 책에 보면 장사가 뭐니?‘ 라는 질문이 나온다. 왠지 덕수쌤이 물어본 것 같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나중에 물어봐야지. 전에 아버지가 가게를 차린다고 하셨다. 그래도 20대에 창업을 해서 지금 잘나가는 사람이 누군가 생각해보니 바로 청년장사꾼이 생각이 났다. 어떻게 성공을 했고, 무엇들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책을 사고 바로 온날 단숨에 읽었다. 선택이 어떻게 되든 안 될 일도 되게 하고 될 일도 되게 한다는 그 이야기를 보는 순간 우리는 사실 과정에 너무 힘을 쏟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됐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책으로도 그 느낌을 전해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독서의 즐거움을 위해서 책을 재독을 했다. 사회와 장사가 어떻게 합쳐지는지 보았다. 먼저 첫째, 손님이 최우선이다. 둘째, 직원들과 소통한다. 셋째 매일 최선을 다한다. 넷째, 계속 새롭고 좋은 것을 추구한다. 다섯째, 좋은 것은 유지한다. 여섯째, 많은 정보를 선입견 없이 받아들인다. 이 외에도 있겠지만 나는 이정도 발견을 했다. 과연 우리 가게에서도 접목시킬 수 있을까? 고민이다. 지역장사는 음식뿐만 아니라 추억도 같이 판다. 오래된 가게는 무언가가 있다. 음식이 진짜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있다. 특색 있는 맨파워가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가게들은 몇 군데 없다. 매년 사라지는 가게들을 보면 슬프다. 이런 것을 보면 가게도 진화론적 관점에선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 진화를 늘 염두 해야 한다. 어떤 재앙이 와도 살아남을 수 있는 내성이 있던지, 적응력이 뛰어나 근방 변화를 하던지, 아예 새로운 판을 만들어서 독자 생존을 해야한다. 청년 장사꾼은 새로운 판을 만들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생존할지 기대가 크다. 맛있는데 오래 동안 내 시간과 함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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