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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문학][서른여럽 작가, 코치, 강연가로 50억 자산가가 되다][으웩]




Q. 평점(10점 만점)

2.5 점 내 시간 좋은포장지에 똥이 들어있으면 여는 순간 악취가 난다.

Q. 인상 깊은 구절(25개 이상/각 구절 당 번호와 쪽수를 기입해 주세요)

  1. p44 쉽게 중독되는 사람에게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장점이 크다. 어떤 일에 중독이 잘된다는 것은 그만큼 열정이 강하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그일에서 누구보다 빨리 성고할 수 있다. 과거에는 몰랐지만 30대 후반을 살고 있는 내가 인ㅅ애을 살면서 깨달은 것들 가운데 하나다.
  2. p48 어떤 분야건 함꼐 생각을 공유할 사람이 있다는 건 실력 향상을 떠나 정서적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3. p50 당시에는 몰랐지만 내가 시를 벽에 붙여 놓음으로써 친구들에게서 긍적적인 피드백과 함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고, 더 나은 시를 쓰는 데 좋은 공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4. p68 나는 첫 시집의 실패에도 시 쓰기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에 대한 열정이 더 강하게 솟구쳤다고 말하는 것이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나는 지인들에게 "첫 시집을 냈으니, 이제 2집을 낼 거다. 기대해."라고 말했다. 얼마 후 고양 친구 T가 나에게 "1년에 시집을 두 권 정도 내면 좋겠네."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의기양양하게 "두 달에 한 권씩 낼 거다."라고 큰소리 쳤다. 첫 시집도 반자비출판으로 힘겹게 출간한 주제에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씨가 된 듯하다. 시집이 아닌 다른 장르의 책을 1년에 많게는 20여 권가량 출간하고 있으니 말이다.
  5. p73 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나는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공언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정말 대단하다며 시집도 냈으니 잘할 수 있을 거라며 용기를 북돋워주었지만, 다른 부류는 "기자는 아무나 하는 줄 아느냐!", "말도 더듬으면서 어떻게 기자를 하려고 그래?"라며 부정적인 말을 했다. 이미 확고하게 결심이 선이상 나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친구들의 말과 나의 내면의 소리를 따르기로 했다.
  6. p80 나는 서울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실천했다. 첫째, 다음카페'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 개설. 둘째, 서울역을 배회하면서 노숙인들의 고통과 비애를 뼛속 깊이 느끼기. 섯째, 매일 시집을 읽고, 시 한 편씩 쓰기
  7. p104 하루는 이정하 시인이 직접 운영하는 출판사 '명예의 전당'에 전화를 걸었다. 여직원이 전화를 받았는데, 나는 시를 쓰는 사람으로 이정하 시인과 통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잠시 후 이정하 시인이 전화를 받았는데, 그때의 감동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그에게 대구 출신으로 서울에서 시를 쓰고 있따고 말했다. 그리고 그동안 그의 시집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꼭 한 번 뵙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 출신이라는 말에 매우 반색했고 언제 한번 출판사로 놀러 오라고 말했다. 나는 이정하 시인의 언제 한번 놀라 오라는 말을 가볍게 듣지 않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출판사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이정하 시인이 바로 전화를 받았는데 나는 이정하 시인의 출판사를 방문할 약속 시간을 잡았다. 내가 이정하 시인을 만난다는 것을ㅇ 김종원에게 전하자 자신도 함께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김종원과 함께 이정하 시인의 출판사로 갔다. 그날 굉장한 대선배 시인인 이정하 신인과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누웠다. 이정하 시인은 유명 시인임에도 정말 소탈하고 편한 분이었다. 마치 고향 선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8. p108 다음 날 나는 지갑에서 신용카드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그 카드는 예전에 대구에서 삼성카드 영업을 할 때 만든 것이다. 나는 순간 짚이는 데가 있어 급히 카드사로 전화를 걸었다. 확인해본 결과 350만 원이 결제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결제 날짜는 잡지사의 예전 동료를 만났던 다음 날 새벽과 그다음 날이었다. 카드가 사용된 곳은 유흥주점과 마트였다. 그는 나와 술을 마시던 그날 의도적으로 내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빼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순간, 누군가가 망치로 내 뒤통수를 내리친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나는 당장 카드를 정지시켰지만 이미 카드는 한도 초과였다. 카드사 상담원은 최대한 빨리 경찰서에 신고하라고 충고했다. 나는 상담원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떄 당시 내 마음속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분노와 원망과 고통으로 가득 찼었다. 그런데 카드를 훔쳐 간 그보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아무리 나 자신을 질책하고 욕하고 비난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냉정을 찾고 관할 경찰서에다 고소장을 제출했다.
  9. p112 그러나 나는 막일을 하면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노력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막노동을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처럼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고 되고 결국 자존감을 잃게 되기 떄문이다. 나는 작업반장이나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반말을 하거나 함부로 말할 때 그냥 넘기지 않았다. 당신 나를 언제 보았다고 반말이냐고 눈에 독기를 품고 따지고 들었다. 그렇게 나가자 다른 사람들에게는 몰라도 나에게만큼은 반말을 쓰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나는 파이프와 벽돌을 옮기고 시멘트 포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나를 때도 주문처럼 외웠다. 지금 하는 이 일은 내꿈을 위해 치르는 대가라고, 마지못해 하는 일이 아닌, 내가 선택해서 하는 잠시 스쳐지나가는 아르바이트일 뿐이라고, 머지않아 내가 꿈을 이룬 순간 지금 하는 일들은 더없이 소중한 추억이 될 거라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이일이 내가 꿈꾸는 미래의 주춧돌을 놓는 중요한 일이라고 여겼다. 막노동 일을 하면서 시의 소재를 찾았고, 시어를 생각했다. 잠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돌릴 때 나는 일하면서 떠올렸던 시의 소재와 시어를 수첩에다 메노하곤 했다. 비록 몸은 고단했지만 시를 생각할 수 있어 즐거웠고, 시를 쓸 수 있어 행복했다. 시를 쓰면서 나는 스스로를 특별한 부류, 즉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메시지'가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노력했다. 어둠을 저주하기보다 빛을 가져오는 자가 되리라고 다짐했다.
  10. p116 출판사로부터 거듭 퇴짜를 맞고 있떤 어느 날이었다. 막노동 일을 마친 뒤 바로 고시원으로 가기보다 영등포역 앞에 있는 서점에 들렀다. 그날은 이상하게 시 코너가 아닌 소설 코너를 기웃거렸는데, 내 눈길을 끄는 표지가 있었다. 소설가 김하인의 <국화꽃 향기>였다. 나는 그 소설책을 구입하고는 근처 김밥천국에서 김밥 두 줄을 사 들고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급히 김밥을 먹고는<국화꽃 향기>를 읽어 내려갔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혼자서 킥킥거리며 웃다가 어느 장면에서는 눈물짓곤 했다. 한 권의 책에 그처럼 슬프도록 아름다운 감동이 깃들어 있따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그 후로 나는 꼭 일을 마친 뒤 서점에 들러 소설을 사곤 했다. 그때 조창한인의 <가시고기>도 읽었는데 폭풍 감동이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잠깐 소설 읽기에 빠졌었던 적이 있었다. 나를 처음으로 서설의 매력에 젖어들게 한 책은 대만의 여류소설가 경요의 <노을>이었다. 그 책은 나에게 사랑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하고 위대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소중한 책이었다. 당시 읽었던 그 책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몇 해 전부터<노을>을 사기 위해 인터넷 서점을 뒤져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절판된 것이다. 나는 얼른 그 소설이 다시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있다. <국화꽃 향기>,<가시고기>등을 읽으면서 과거에 가졌던 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자 막노동을 하면서도 오늘은 어떤 책을 구입할까, 어제 읽었던 내용에 이어 오늘은 어떤 내용이 이어질까 궁금해 일이 힘든 줄도 몰랐다. 당시 나에게는 시를 쓰고 소설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 낙마저 없었다면 나는 그 힘들었던 시기를 견뎌내지 못했거나 다른 길로 샜을지도 모른다.
  11. p119 나는 자기계발서를 30권쯤 읽었을 때 사고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그 생각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버킷리스트를 A4용지에 적어 내려갔다. -베스트셀러 작가 되기 - 대한민국 최고의 성공학 강사 되기 - TV, 라디오에 출연하기,-해외에 저작권 수출하기 -내가 쓴 글이 교과서에 등재되도록 하기 - 다양한 장르의 책 쓰기 - 외제차 구입하기 -대기업 등의 사보에 칼럼 쓰기 - 두 달에 책 한 권 출간하기 - 책 100권 쓰기 - 연 수입 30억 원 -대형서점에서 사인회 하기 나는 내가 적는 리스트들이 정말 실현될까, 이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언젠가 실현된다고 믿고 적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버킷리스트를 적으면서 정말 이루어질까, 라는 의심에 사로잡힌다. 이런 의심을 가진 사람들의 꿈들은 절대 실현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의심으로 인해 확신이 무너져 중도에 포기하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 버킷리스트에 적었던 꿈들을 모두 실현했다. 아니, 그 이상으로 이루었다.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현재 자신이 가진 능력은 꿈 실현에서 그다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대신 실현된다고 믿는 강한 확신과 믿음, 잠재력 계발이 꿈 실현의 키가 된다. 나는 버킷리스트를 적은 종이를 지갑과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보고 암송했다. 이때 내가 습과적으로 했던 것이 있는데 바로 시각화다. 아직 원하는 것들을 성취하지 못했지만 마치 성취한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상상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각화를 습관화했다. 그러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적인 생각이 있던 자리에 긍정적인 생각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 저절로 치열하게 살기 시작했다.
  12. p128 나는 살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곰이 겨울잠을 자듯이 고시원 방에 있는 작은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최대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움직이지 않으면 체내 에너지도 덜 소모하게 되어 배가 덜 고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처음에는 내 생각이 맞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배고픔은 고통스럽다 못해 괴로울 지경이었다. 먹고 싶은 음식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족발, 회, 삼겹살, 치킨, 탕수육 등이 머릿속에서 빙빙 돌았다. 만약 내 앞에서 살아 있는 돼지가 꿀꿀거리고 돌아다니고 있다면 그대로 살찐 엉덩이를 물어뜯었을 것이고, 광어나 우럭이 펄떡거리고 있다면 칼로 회를 뜨지도 않고 통째로 뜯어 먹었을 것이다. 그만큼 배고픔이 심했고, 음식이 절박했다.
  13. p136 그날 밤, 거나하게 취해 고시원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내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술과 회를 얻어먹은 데 대해 기뻐하기까지 한 나 자신이 한없이 못나 보였다. 아니,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 한편에서는 지독한 가난에 찌들어 사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러곤 나를 향한 혐오스러운 감정은 다시 자괴감으로 바뀌었다. 순간 누군가와 부딪쳤다. 마음속에 온갖 증오로 가득 차있던 나는 그에게 다짜고짜 원망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뭐야? 결찰이다!"라고 말했는데, 내가 아랑곳하지 않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경찰이면 다야?"라며 눈에 독기를 품고서 대들자 그는 별 미친놈 다 보겠다면 나를 슬슬 피해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힘들었기에 그런말도 안되는 행동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해 화가 칠민다 못해 분노했다. 갑자기 돈이 싫다 못해 증오스러게 여겨졌다. 그날 야리끼리 일단으로 받았던 돈 8만 5천원을 그 자리에서 조각조각 찢어서 공중으로 던져버렸다. 찢어진 지폐들은 바람에 나부끼며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마주 오던 사람들이 이런 나를 어이없는 놈, 미친놈처럼 쳐다보며 지나갔다. 그렇다. 그 순간에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랬다. 완전 미친놈이었다. 도박에서 모든 돈을 잃고서 이성을 잃은 미친놈 같은 눈을 한 채 나는 바람에 흩어지는, 조각조각 난 피 같은 돈의 흔적들을 쳐다보았다. 가슴이 저미다 못해 찢어지게 아파왔다. 갈기갈기 찢어진 지폐의 흔적들이 마치 나 자럼 여겨졌던 것이다. 
  14. p.137  며칠 후 출판사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하나같이 비슷한 내용의 답신이었다. "보낸 주신 원고 검토를 마쳤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저희와 함께 작업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또 다른 원고가 있다면 다음에 보내 주시면 검토하겠습니다." 일부 출판사들은 답신 자체를 보내오지 않았다. 처음에 두세 번 이런 답신을 보면서 거절에 대한 실망이 컷지만 계속되는 퇴짜에 실망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 후로도 계속 출판사에다 원고를 투고했다. 모두 출간이 어렵겠다는 부정적인 답신을 보내왔다. 심지어 어느 편집자는 내용이 상당히 실망스럽다며, 차라리 시를 계속 써보는 건 어떻겠는지, 라는 약간 비꼬는 내용의 답신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그 답신을 끝까지 다 읽지 않고 삭제했다. 부정적인 기운을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거정하는 편집자들의 말에 개의치 않았다. 이 정도에 상처 받거나 좌절한다면 내꿈은 이미 물 건너간 것나 다름 었다고 생각했다.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출판사들로부터의 거절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나는 유명한 자가가 아닌, 아직 예비 작가이기에 이런 시련은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과거 대구에서 삼성카드 영업을 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하루에도 수십명의 고객들에게 거절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출판사들로부터 거듭 퇴짜를 맞을 때마다 좌절과 절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오기가 생겨났다. '그래, 어딘가에 반드시 내 원고를 알아줄 출판사가 있을 거야.' '그래, 끝까지 해보자. 누가 이기나.' 이때 나는 다섯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출판사들로부터 여러 번 퇴짜를 맞았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포기해선 안 된다는 것, 둘째, 편집자들의 피드백을 공부라고 생각하며 계속 원고를 수정해야 한다는 것, 섯째, 세상에는 출판사들이 많다는 것, 넷째,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 다섯째, 지금 겪는 시련들이 훈낫 소중한 자산이 되어준다는 것 사실 성공한 시인이나 작가들 가운데 과거의 나처럼 여러 출판사들로부터 거절을 당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다. 그들 역시 거듭되는 출판사의 퇴짜에 좌절과 절망을 껶으며 절필을 결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마침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일부 출판사들은 원고를 반려하면서 부족한 부분에 대한 피드백을 해준다. 그 피드백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그리고 꾸준히 원고를 수정해나가면 처음 원고에 비해 훨씬 좋아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그들의 피드백을 통해 좀 더 나은 책의 기획력과 원고를 쓰는 요령을 얻을 수 있다. 나는 거듭되는 출판사들의 거정레도 계속 투고를 멈추지 않았다. 내 꿈을 실현 할 때까지 자존심 따위는 개나 주어버려야겠다고 결심 했다. 알량한 자존심보다 내 꿈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15. p142 나는 계속되는 출판사들의 거절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아무리 내면이 단단한 사람일지라도 거절당하는 횟수가 이백 번 이상 넘어가게 되면 내면의 확신과 믿음의 탑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안정적인 직장도 아닌,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그나마도 나가지 못하는 노가다 일을 하고 있는 현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이따금씩 부모님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적지 않는 빚에다 외동아들이 서울에서 이렇다 할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있으니 면목이 없었다.
  16. p144 심한 좌절을 느끼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는데 출판사였다. 그때 내게 전화를 주셨던 분이 바로 '출판계의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던 '바움출판사'의 고 이창훈 사장님이다. 그분은 내게 보낸 준 원고를 잘 읽었다며 원고와 관련해 의논할 것이 있다면서 출판사에 와달라고 말했다. 사실 그동안 의논할 게 있다며 들러달라는 출판사들로부터 당한 여러 차례 나쁜 기억이 있었기에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바움출판사와 인연이 되었다. 홍대 근처에 위치한 바움출판사는 당시 '책이있는마을'출판사와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었다. 처음 대면한 이창훈 사장님은 마흔 초반의 인상이 참 좋은 분이었다. 그분과 원고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때 이사장님은 두권의 시리즈 산문집을 기획하고 있었다. 내게 그날 이창훈 사장님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투고한 원고는 다음에 출간하는 것으로 하고 먼저 자신이 기획한 두 권의 산문집의 원고를 써서 인세 계약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투고한 원고를 퇴짜 맞은 데 대한 서운함보다는 이제 작가의 신분으로 출판사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뻣다. 물론 출판사가 원하는 퀄리티의 원고를 써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지 않았다. 갖은 고생 끝에 원고를 썼는데 출판사에서 퀄리티가 떨어진다면 거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책을 쓰겠다고 말했다. 그 순간 앞으로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17. p146 나는 고군분투한 끝에 5개월가량 걸려 2권의 산문집 원고 집필을 마칠 수 있었다. 나는 꼼꼼히 탈고를 마친 뒤 원고를 메일로 출판사에 보냈다. 그리고선 떨리는 심정으로 출판사로부터 올 답신을 기다렸다. 출판사로부터 답신이 오기까지 며칠 동안 나는 '내가 쓴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곤 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선 이번만큼은 정말 잘되리라 긍정적인 생각을 갖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내 필력을 믿었다.
  18. p147 나는 첫책을 계약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진짜 꿈, 즉 가슴 뛰는 꿈을 품으면 어떤 시련이 닥쳐도 그것을 이룰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장은 자신을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좌절과 절망이 내면을 더욱 단단하게 한다는 것도 배웠다. 작가가 되지 못하는 열 가지 비결 첫째, 위대한 작가가 되려고 노력한다. 둘째, 워드를 잘 치지 못한다고 겁부터 낸다. 섯째, 문서 편집 요령을 통달할 때까지 글쓰기를 미룬다. 넷째, 먼저 문학박사 학위부터 따고 나서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다. 다섯째, 출판사로부터 퇴짜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할 때까지 기다린다. 여섯째, 책을 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스스로를 자책한다. 일곱째, 남들이 보면 비웃을 거라고 걱정한다. 여덟 째, 너무 더워서, 너무 추워서, 너무 습해서, 날이 너무 좋아서 글쓰기 싫다고 불평한다. 아홉째, 천 문장을 쓰기 전에 모든 문학 사조를 분석한다. 열째, 사람들을 감동시킬 멋지고화려한 말만 골라 쓴다.
  19. p158 하루는 작은누나로부터 아버지 생신 때 집에 다녀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사실 아직 직업도 없는 상황에서 고향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집에 가봐야 대출금으로 인한 힘든 상황,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집안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원망 섞에 잔소리만 잔뜩 들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못난 아들이지만 자식 된 도리를 저버릴 순 없었다. 나는 잘 먹지 못한데다, 잦은 음주로 인해 초췌한 얼굴로 고향집으로 향했다. 그날 아버지의 예순아홉 번째 생신이 마지막 생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금요일 오후에 고향집에 갔다. 아버지의 생신에 빈손으로 가는 것보다 아직 직업도 없는 백수신세라는 것이 더욱 부끄러웠다. 그날따라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다 할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누나들을 통해 내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직장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따는 이야기를 들으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나의 야윈 몸과 핼쑥해진 얼굴을 보며 걱정하는 언사를 늘어 놓았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어머니에게 신경질적으로 "지금 이상황에서 그깟 살 좀 빠지고 얼굴이 핼쑥해지는 게 대수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 당시 내가 했던 말이 많이 후회가 된다. 언제나 부모님은 자식 생각, 걱정뿐이라는 것을 서른 고개 지나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20. p170 나는 세 번째 책<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기다림>이라는 산문집을 쓰고 있었다. 출근 전 두 시간, 퇴근하고 나서 세 시간가량 책 쓰기에 매달렸다. 일과 병행하는 탓에 진도는 더디기만 했다. 그래도 하루에 A4용지 7-10장가량 써나갔다. 나는 어떻게 하면 원고 집필을 좀 더 빨리 마칠 수 있을 까 고민했다. 그러다 친구들을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다. 초창기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퇴근 후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다음 날 일어났을 때 그렇게 허무 할 수가 없었다. 술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어김없이 신세한탄이나 직장 상사 험담, 또래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 등 내 꿈 실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들뿐이었다. 나는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자주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지'라는 회의감에 시달렸다. 내 꿈이 자꾸만 시간의 파도에 밀려가는 것만 같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꿈을 실현할 때까지 업무 외의 시간을 온전히 책 쓰기에 쏟기로 결심 했던 것이다.
  21. p176 평소 그녀는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금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으면 나에게 선물했다. 작가는 무릇 좋은 책을 많이 ㅇ릭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녀를 통해 알게 된 책들 가운데<노르웨이의 숲>과 <꿈을 찾아 떠나는 양치기 소년>,<그리스인 조르바>가 있다. 이 책들은 그녀가 읽었을 당시에는 유명한 책이 아니었디만 그녀가 읽은 뒤 몇 년 지나지 않아 베스트셀러, 스테디 셀러가 되었다. 그녀는 책을 고를 때 베스트셀러위주로 고르지 않고 그 책이 담고 있는 내ㅐ용을 보고 고르곤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만약에 그녀가 서점을 운영했다면 성공적으로 경영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22. p179 나는 그녀를 만나면서 좋아하는 남녀 사이에 꽃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오롯이 느꼈다. 그동안 이별과 사랑에 대한 시를 썼지만 그녀를 만난 뒤부터 내가 알던 사랑에 대한 개념은 완전히 달라졌다. 쉽게 말해 그녀에게 느꼈던 감정들이 진짜 사랑이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당시 이명제를 "그녀를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살짝 바꾸어서 말하고 싶을 만큼 나에게 있어 그녀는'사랑'그 이상이었다.
  23. 그날 나는 전화로 여자 친구에게 신문사에서 쫓겨났다고 전했다. 그러자 여자 친구는 전혀 심각하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잘됐네, 이제부터 자기가 원하는 글을 쓰면 되잖아. 비록 지금 힘들어도 인생을 길게 보면 오히려 이편이 훨씬 나을 거야. 자긴 꿈이 있잖아. 난 자기를 민더."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가슴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에너지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럿이 바로 '희망'이었다. 정말 나를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 더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오롯이 느꼈다.
  24. 어느 날은 사는 게 너무 힘든 나머지 죽기로 결심했다. 내가 죽어버린다면 밤마다 찾아오는 무서움과 그녀를 향한 그림움이 끝나겠지, 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나와 함께 있어주기 위해 오신 어머니에게 "엄마한테 미안한데, 나 죽어 버리고 싶어! 도저히 못 살겠다! 사랑하는 사람도 죽고, 도저히 힘들어서 못 살겠다!"라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차를 끌고 무작정 부산으로 향했다. 그날 비가 많이 내렸는데 시속 180-~200킬로미터로 달렸다. 빗길에 차가 미끄러지면 어떻하나, 이 따위의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냥 교통사고로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50분가량을 달려서 부산 톨게이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교통요금을 지불하려고 하자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톨게이트 사무실에 가서 이름과 자동차 번호를 말하고 입금 계좌번호를 받은 뒤 통과할 수 있었다. 그날 나는 뜻대로 죽지도 못한 채 부산에서 그냥 차를 돌려 대구로 와야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대구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어 이상하네, 분명히 차 안에 지갑을 너어 두었는데 '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찾아보다 콘솔박에서 지갑을 발견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분명 부산 톨게이트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았는데 보이지 않던 것이 집에 다 와서는 눈에 뛴것이다. 순간 한 가지 깨달음이 왔다. 그녀가 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순간 지갑이 보이지 않게 나의 눈을 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그녀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25. p250 나는 비전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래서 당시 나는 다음과 같은 '비전 선언문'을 작성해서 홈페이지에 올려두었다. 첫째,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가, 고정 팬들을 거느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둘째, 1년에 5권 이상의 책을 출간해 꾸준히 세상에 나의 존재를 알린다. 셋째, 꿈이 없는 사람에게 확고한 꿈을 심어주고,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강한 자신감을 심어주는, 세상에 빛이 되는 책을 집필한다. 넷째, 나의 강점인 책 쓰기, 동기부여 강사로서의 활동을 통해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한다. 다섯째, 1년에 3권씩 서정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린다. 여섯째, 꿈은 있지만 실현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돕는 드림헬퍼가 된다. 비전과 더불어 여덟가지 삶의 원칙을 지키며 살고자 노력했다. 물론 지금도 이원칙을 따르고 있다. 첫째, 아침 5시에 기상한다. 둘째 절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섯째,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넷째, 성공할 때까지 돈을 절약한다. 다섯째, 출판사의 원고 청탄은 신중히 생각해서 받아들인다. 여섯째, 매일 책을 읽는다. 일곱째, 꿈, 목표를 생생하게 상상하면서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열럽째,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노력으로 보완한다. 
  26. p252 마지막으로 가난은 재난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젊은 사람일수록 가난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얼마나 제약을 주는지, 얼마나 마음을 초조하게 하고 움츠러들게 하는지 알아야한다. 가난하면 차츰 꿈과 목표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가난하지 않다면 충분히 극복해 냈을 시련에도 쉽게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충분히 가난이라는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 내가 1인기업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가진 재능을 돈으로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세상에 대한 나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테고 자연히 부가 쌓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면 저절로 나를 둘러싼 가난이라는 환경은 부의 환경으로 바뀌게 된다. 과거의 이런 생각은 부유하게 사는 나의 현재 모습을 볼 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자가 되고자 한다면 성공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 부에 대해 사고하고, 행동하고, 말하는 습관을 가져보자. 자신의 사고를 컨트롤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은 생각대로 일어나게 된다.
  27. p329 김태광이 말하는 책을 쓰면 좋은 열가지 이유 첫째, 보이지 않던 꿈이 명확해진다. 둘째,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게 된다. 셋째, 학벌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게 된다. 넷째, 자신만의 천재적인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다섯째, 책을 펴내는 순간, 독자에서 저자의 위치로 신분상승하게 된다. 여섯째, 부정적인 사고에서 긍정적인 사고로 전환하게 된다. 일곱째, 책 출간이라는 평생의 꿈이 실현된다. 여덟째, 자존감이 높아진다. 아홉째, 가족과 친척, 친구들, 동료들로부터 찬사를 듣게 된다. 열째,자식들에게 삶의 지혜를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다.
  28. p340 직장인이 책을 써야하는 이유 다섯가지 첫째, 책은 최고의 소개서다. 언론 인터뷰보다 더 영향력이 크다. 둘째,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 대중을 대상으로 책을 출간하게 되면 세상에 자신의 존재감을 들러낼 수 있다. 셋째, 전문가의 자격증이다. 책을 출간하는 순간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게 된다. 넷째, 미래가 달라진다.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생활에 활력이 생긴다. 다양한 기회들이 생겨난다. 다섯째, 사회에 공헌하는 일이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 노하우를 책에 담는다면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의 인생이 달라지게 된다.
  29. p361 남자, 자리계발하지 않는 여자 절대 만나지 마라. 여자, 야망 없는 남자 절대 만나지 마라. 성공해서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을 써서 성공하라. 가격을 보지 말고 가치를 보고 사라. 성공해서 BMW를 사는 것이 아니라 BMW를 먼저 구입해서 그에 맞는 마인드를 가져라. 성공해서 롤렉스시계를 차는 것이 아니라 먼저 롤렉스시계를 참으로써 그 위치에 맞는 사람이 돼라. 성공해서 멋진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멋진 배우자를 먼저 만나서 크게 성공하라. 빈 지갑, 가난한 현실을 탓하기보다 성공의 그릇, 마인드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라.


Q. 이 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읽었는가?

아니오

Q. 이 사람처럼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고,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극복해야 하는 부분이라면 어떻게 극복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뻔뻔하게 이야기 한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내가 금전적성공을 이뤄도 이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서전이기 때문에 사실 이 내용들에 출처는 본이이겠지만 책을 읽다보면 거의 70년대 말에 상황 같다는 느낌이 온다. 그러나 사실 저자에 나이를 보면 2000년대 이야기 이다. 내가 20년전 있었을때 그랬나 싶지만 조금 당황스럽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일이라면 이렇게 처절하게 해야한다고 생각을 한번 해보았다. 역시 그런 환경을 처해본게 군대 정도라서 그런지 완전히 와닿지는 않는다. 작가라는 것이 이렇게 쓰고 글을 출판할 수 있는 것이면 나도 도전해야겠다. 12주 과정을 듣는 것은 사양하겠다. 3달만에 책을 쓰는것이 신기하다. 또한 그런 것을 듣고 하는 사람도 신기하다.


Q. 이 사람에게 닮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

본인이 사랑하는 것을 놓지 않는 고집과 신념은 정말 높게 산다. 하지만 그것이 다 이다.


Q. 이 분야에 종사하고 싶은가? 그 이유는?

작가라는 직업이 이렇게도 업으로 삼고 살아간다는 사람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나도 하고 싶다. 쓰고 내고 카페를 만들고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람을 모으고 다시 책을 내고 같은 방법을 반복하다보면 나도 어느순간 베스트셀러! 그리고 유명한 저자가 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하는 꾸준함에 힘이 무엇인지 알겠다. 나도 내 꾸준함을 계속 해서 해 나가야 겠다. 갑자기 인도영화 마운틴 맨이 생각난다. 사고로 죽은 아내를 생각해서 정하나와 망치로 산을 깍아 내린자. 마운틴 맨. 과연 비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끈기가 필요하고 할 수 있는 직업이라면 하고 싶다.

Q. 감상평
작정하고 읽었다. 속이 뒤집어 져도 읽어야 쓸 수 있다. 결국 다 읽었고 나는 시간을 아쉽게 썼다. 세상에 사람이 만명이면 만갈래에 길이 있다. 서로 교차하기도한다. 한동안 같이 길을 가기도한다. 그 길들 중에 이번에 읽은 길은 참으로 지독한 길이었다. 많이 쓰면 된다. 오래쓰면 된다. 버티면 된다. 라기보다 하다보니 늘었다. 양적 성장이 질적 성장을 보여주었다. 책에 깊이는 정말 눈물이 나는 정도지만 페이지는 인정한다. 물론 겹쳐서 쓴 인용구도 많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한 일들이니깐! 제목에 한번 탄식했고 내용으로 탄식했고 광고로 또 한번 탄식했다. 이책을 고른 내 손과 뇌를 탔하고 왜 이책이 독서의 즐거움이 있는지 당황스럽니다. 하루라도 빨리 책을 팔던지(알라딘에 조회하니 1000원이다. 에효) 열정대학에 기부를 하던지! 아니면 내 전용 냄비받침이 될지 모르겠다. 여러가지 내가 예민하게 반응을 하고 있는데 그 예민함에 상당한 영향은 준 책임에는 부정할 수가 없다. 앞으로 책은 꼭 서점가서 훝어보고 사야겠다. 충격과 공포를 간만에 안겨준 책이라서 오랫동안 내 뒷 생각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 것같다. (다른 하나는 별들의 전쟁이라는 스타크래프트 설정집을 그대로 쓴 소설이다.) 참 탄식이 절로난다. 내 생각과 내 시간과 내 노력이 이렇게 아쉬 울 수 있다는 것을 세삼 알게해준 책에게 고맙다. 한 동안 내가 아는 책이 아니면 독서의 즐거움 책은 잘 보고 선택을 해야겠다. 아 눈물이나내. 내가 책을 고르고 보면 잘 눈물이 나는 사람이 아닌데 ... 눈물이 난다. 눈물을 닥아내고 이제 새로운 책을 향해서 가야지 아니면 정말 속이 오염될 듯 싶다. 다음책은 체 게바라 평전,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스티븐잡스 평전,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를 골라 뒀는데 무엇 부터 볼지 고민이다. 다음책은 제발 내 삶에 시간을 슬프지 않게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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