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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불광불득)


조선 중기 임진왜란 병자호란, 양란 이후에 엄청 정신없는 조선에


일상 생활에서의 실학이 눈을 뜨기 시작 할 때


수많은 벽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즘으로 이야기하면 기록 좋아하는 한 가지에 미친 마니아들 !!


이라고 쓰고 오덕후라고 읽는다.


그들이 남긴 기록들이 모여 모여 퍼즐을 맞추듯 그 당시 시대 상과


그들이 출신의 한계를 넘어서 이루고자 했던 것을 위한 끝없는 노력들!!


믿고 좋아하고 이루고자 한 신념에 대한 끈기와 성실함으로 


후대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철저하게 처절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은 미쳐야 그곳에 미칠 수 있었다.


요즘 시대 상과 비쳐 어떤지 같이 보아 보자.



미쳐야 미친다
국내도서
저자 : 정민
출판 : 푸른역사 200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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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지킨 사람 - P66~67 발췌


 이서우가 쓴 <백곡집서>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글을 맺기로 한다.


 대저 사람은 스스로를 가벼이 여기는 데서 뜻이 꺾이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느라 학업을 성취하지 못하며, 마구잡이로 얻으려는 데서 이름이 딸에 떨어지고 만다. 공은 젊어서 노둔하다 하여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독서에 힘을 쏟았으니 그 뜻을 세운 자라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기를 억 번 만 번에 이르고도 그만두지 않았으니, 마음을 지킨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작은 것을 포개고 쌓아 부족함을 안 뒤에 이를 얻었으니 이룬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아! 어려서 깨달아 기억을 잘한 사람은 세상에 적지 않다. 날마다 천 마디 말을 외워 입만 열면 사람을 놀래키고, 훌륭한 말을 민첩하게 쏟아내니, 재주가 몹시 아름답다 하겠다. 하지만 스스로를 저버려 게으름을 부리다가 어른이 되어서는 그만두어버리고, 늙어서도 세상에 들림이 없으니, 공과 견주어본다면 어떠하겠는가?


함부로 몸을 굴리고, 여기저기 기웃대다가 청춘을 탕진한다. 무엇이 좀 잘된다 싶으면 너나없이 물밀 듯 우루루 몰려갔다가, 아닌듯 싶으면 썰물 지듯 빠져나간다.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싫은 소리는 죽어도 듣기 싫어하고 칭창만 원한다. 그 뜻은 물러터져 중심을 잡지 못하고, 지킴은 확고하지 못해 우왕좌왕한다. 작은 것을 모아 큰것을 이루려 하지 않고 일확천금만 꿈꾼다. 여기에서 무슨 성취를 기약하겠는가?

 옛사람들은 김득신의 노둔함을 자주 화제에 올렸지만, 그 속에서는 비아냥거림이 아니라 외경(畏敬)이 담겨 있었다. 지금도 세상을 놀래키는 천재는 많다. 하지만 기웃대지 않고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성실한 둔재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한때 반짝하는 재주꾼들은 있어도 꾸준히 끝까지 가는 노력가는 만나보기 힘들다. 세상이 갈수록 경박해지는 이유다.』



얼마나 책을 읽으면 많이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열 번? 백 번?


한 권의 책을 억 번 만 번 이르고도 그만 두지 않은 기인 김득신


얼마나 읽었으면 본인이 그 책을 썼다고 느꼈을까? 


뜻이 들어와 골수에 미쳐 온 몸이 퍼져나가는 것이 무엇인지 차 못 궁금해진다.


나도 계속 공부하고 책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그에게서 배워야겠다.









굽은 나무 아래선 쉴 수가 없고 - P81~84 발췌


 하지만 오늘 그가 나를 압도하는 대목은 호한한 독서와 방대한 저작이 결코 아니다. 그 처절한 가난 속에서도 맑은 삶을 살려 애썼던 그의 올곧은 자세가 나는 무섭다.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마년의 별 실속 없는 득의거나 그 많은 임금의 하사품이 아니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고, 알아줄 기약도 없는 막막함 속에서도 제 가는 길을 의심치 않았던 그 믿음이 나는 두렵다.

 한편으로 그 갈피 갈피에 서려 있을 피눈물 나는 고통과 열 손가락이 퉁퉁 붓는 동상과 굶주림, 영양실조 끝에 폐병으로 어머니와 누이를 떠나보내는 무력감과 자조감이 나는 또 눈물겹다. 그가 지은<<송유민보전>>에는 두준지란 이의 시가 실려있다.


차라리 백 리 걸음 힘들더라도

굽은 나무 아래선 쉴 수가 없고

비록 사흘을 굶을지언정

기우숙한 쑥은 먹을 수 없네.


 그는 이런 시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이러 무모한 인내와 자기 확신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의 편지글에 보면 "옛날에는 문을 닫고 앉아 글을 읽어도 천하의 일을 알 수 있었지요"라는 구절이 있다. 정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오늘의 우리들이다. 인터넷 시대에 세계의 정보를 책상 위에서 만나보면서도 천하의 일은커녕 제 자신에 대해서조차 알 수가 없다. 정보의 바다는 오히려 우리를 더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할 뿐이다. 왜 그럴까? 거기에는 나는 없고 정보만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내가 소유한 정보의 양이 늘어갈수록 내면의 공허는 커져만 간다. 주체의 확립이 없는 정보는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그만 시련 앞에서도 쉽게 스스로를 허문다. 거품 경제 속에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다 갑자기 닥친 잿빛 현실 속에서 그들의 절망은 너무도 빠르고 신속하다. 실용의 이름으로 대학의 지적 토대는 급격히 무너지고, 문화는 말살되고 있다. 취직과 돈벌이와 영어가 삶의 지상 목표로 변한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젊은이들은 스스로 '저주받은 세대'라고 되뇌이며 우왕좌왕한다. 돈을 벌수만 있다면, 출세를 할 수 만 있다면 지금까지 소중히 여겨온 가치와 자존도 송두리째 던져버릴 태세다. 그렇지만 그런가?

 그 처참한 가난과 신분의 질곡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았던 맹목적인 자기 확신, 독서가 지적편식이나 편집적 욕망에 머물지 않고 천하를 읽는 경륜으로 이어지던 지적 토대, 추호의 의심 없이 제 생의 전 질량을 바쳐 주인 되는 삶을 살았던 옛 사람들의 내면 풍경이 나는 그립다.


 지리산 속에는 연못이 있는데, 그 위에는 소나무가 주욱 늘어서 있어 그 그림자가 언제나 연못에 쌓여있다. 연못에는 물고기가 있는데 무늬가 몹시 아롱져서 마치 스님의 가사와 같으므로 이름하여 가사어라고 한다. 대개 소나무의 그림자가 변화한 것인데, 잡기가 매우 어렵다. 삶아서 먹으면 능히 병 없이 오래 살 수 있다고 한다.


 지리산 깊은 소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못 위로 허구헌 날 비치는 소나무 그림자를 보다 제 몸의 무늬마저 그 그림자와 같게 만든 물고기가 살고 있따. 사시장철 푸르른 나락한 소나무의 기상을 닮아, 삶아 먹으면 병도 없어지고 오래 살 수 있게 해준다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아! 나도 그 못 가에서 살고 싶구나. 그래서 그 무늬를 내 몸에도 지녀두고 싶구나. 날로 가팔라져만 가는 비명 같은 삶의 속도 속에서, 나는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며 생활의 숨결을 골라 보았으면 싶은 것이다.』



조선 시대 책덕후 이덕무 ...


자신의 길을 세우고 그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굽히지 않은 굳은 심지...


올곧음 그리고 자기 확신, 신념


나는 그러한가?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지 생각해 볼 때이다.









제가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 P181~184 발췌


 황상은 열다섯 살 나던 1802년 10월 정약용을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천주학쟁이로 몰려 강진으로 귀양 와 있었다. 처음 강진에 도착했을 때 사람드리 모두 겁이 나 문을 꽁꽁 닫아걸고 받아주려 하지 않아, 그는 하는 수 없이 동네 주막집 방 한칸을 빌려 기식하고 있었다.

 황상은 서울에서 온 훌륭한 선생님이 아전의 아이들 몇을 가르친다는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주막집을 찾았다. 그렇게 며칠을 내쳐 찾아가 쭈뼛쭈뼛 엉거주춤 글을 배웠다. 7일째 되던 날 다산은 황상에게 글 한 편을 써주었다. 이 글은 다산의 문집에는 없고, 황상의 문집에만 실려 있다.


 내가 황상에게 문사 공부할 것을 권했다. 그는 쭈뻣쭈벗하더니 부끄러운 빛으로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제가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가 있다.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 데 민첩한 사람은 소홀한 것이 문제다. 둘째로 글 짓는 것이 날래면 글이 들떠 날리는 게 병통이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친 것이 폐단이다. 대저 둔한데도 계속 천착하는 사람은 구멍이 넓게 되고,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진 단다. 답답한데도 꾸준히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하게 된다. 천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뚫은 것은 어찌하나?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네가 어떤 자세로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한다."

 당시 나는 동천여사에 머물고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지만 선생님! 저는 머리도 나쁘고, 앞뒤가 꽉 막혔고, 분별력도 모자랍니다. 저도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잔뜩 주눅 든 소년에게 선생은 기를 복돋워준다.

 "그럼 할 수 있고말고. 항상 문제는 제가 민첩하다고 생각하고, 총명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생긴단다. 한 번만에 보면 척척 외우는 아이들은 그 뜻을 깊이 음미할 줄 모르니 금세 잊고 말지. 제목만 주면 글을 지어내는 사람들은 똑똑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저도 모르게 경학하고 들뜨게 되는 것이 문제다. 한 마디만 던져주면 금세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들은 곱씹지 않으므로 깊이가 없지. 너처럼 둔한 아이가 꾸준히 노력한다면 얼마나 대단하겠니? 둔한 끝으로 구멍을 뚫기는 힘들어도 일단 뚫고 나면 웬만해서는 막히지 않는 큰 구멍이 뚫릴 게다. 꼭 막혔다가 뻥 뚫리면 거칠 것이 없겠지. 미욱한 것을 닦고 또 닦으면 마침내 그 광채가 눈부시게 될 것이야.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되겠니? 첫째도 부지런함이요. 둘째도 부지럼함이며, 셋째도 부지런함이 있을 뿐이다. 너는 평생 '부지런함'이란 글자를 결코 잊지 말도록 해라. 어떻게 하면 부지런할 수 있을까? 네 마음을 다잡아서 딴 데로 달아나지 않도록 꼭 붙들어 매야지. 그렇게 할 수 있겠니?

 황상은 스승의 이 가르침을 평생을 두고 잊지 않았다. 스승이 시키는 대로만 했다. 그리고 스승을 처음 만난 지 61년이 지난 임술년에 그 떨리던 첫 만남을 기억하며<임술기>란 글을 한 편 지었다. 정약용의 윗글도 이 글 속에 들어 있다. 윗 글에 이어지는 황상의 술회를 보자.


 내가 이때 나이가 열다섯 이었다. 당시는 어려서 관례도 치르지 않았었다. 스승의 이 말씀을 새기고 뼈에 새겨 감히 잃을까 염려하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61년 동안 독서를 폐하고 쟁기를 잡고 있을 때에도 마음에 늘 품고 있었다. 지금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글 속에서 노닐고 있다. 비록 이룩한 것은 없다 하나, 구멍을 뚫고 막힌 것을 툭 터지게 함을 삼가 지켰다고 말할 만하니 또한 능히 마음을 확고히 다잡으라는 세 글자를 받들어 따랐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나이가 일흔 다섯이 넘었으니 주어진 날이 많지 않다. 어찌 제멋대로 내달려 도를 어지럽힐 수 있으랴. 지금 이후로도 스승께서 주신 가르침을 잃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하고, 자식에게도 저버림 없이 행하게 할 것이다. 이에 임술기를 적는다.


 스승의 가르침을 들은 소년은 그로부터 61년의 세월이 지나 일흔여섯이 되도록 스승이 남겨주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뼈에 새겨 자나 깨나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삶을 살아왔노라고 눈물겹게 고백하고 있다. 따뜻한 가르침은 이렇듯 깊고 깊은 울림을 남긴다.



 진정한 용기는 보다 작은 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을 지켜줄 신념을 만들어주고 지켜줄 수 있는 스승의 존재는 제자의 삶을 보다 스스로 자주적으로 살 수 있게 도와준다. 이것이 요즘 유행하는 멘토와 멘티, 스승과 제자 의 가장 큰 덕목이다.


200년 전 이야기 이지만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이야기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밝혀주는 일화라 하겠다.


 아 성공하면 10% 기부해야 할 재단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 ㅎㅎㅎ









웃고 받아주시게 - P220~222


 꽃병에 11송이 꽃을 꽂아 팔아 동전 ㅅ무무 닢을 얻었소. 형수님께 열 닢을 드리고, 아내에게 세닢, 작은 딸에게 한 닢, 형님방에 땔나무 값으로 두 닢, 내 방에도 두닢, 담배 사느라 한 닢을 쓰고 나니, 공교롭게 한 닢이 남았소. 이에 올려보내니 웃고 받아주면 참 좋겠소.


 <여무관>, 즉 이덕무에게 보낸 편지다. 박지원은 이덕무에게 밀랍을 녹여 가짜 매화 만드는 법을 배웠다. 오랜 연습 끝에 매화 11송이를 만들어 화병에 꽂아 비단 가게에 팔고, 받은 돈 가운데 한 냥을 이덕무에게 보내면서 자랑삼아 쓴 편지다. 물론 둘 사이에만 통한 장난이다. 선비가 매화를 만드는 것만 해도 해괴한데, 그걸 팔아 돈을 벌었다니 큰 허물이 될 소리다. 이제 자신이 만든 매화를 비단 가게에서 돈 주고 살 정도로 실력이 늘렀다는 자랑을 이렇게 했다. 읽으면 웃음이 나온다.

 이 글을 받은 이덕무는 또 이렇게 답장했다.


 내가 마침 구멍난 창을 바르려 했지만 종이만 있고 풀이 없었는데, 무릉씨가 내게 돈 한 닢을 나눠주는 바람에 풀을 사서 바르는 일을 마쳤다. 올해 귀에 이명이 나지 않고 손이 부르트지 않는 것은 모두 무릉씨의 덕분이다.


 정으로 보낸 편지에 정으로 화답했던 것이다. 박지원의 척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과 괴로움은 바로 박지원 특유의 톡 쏘는 풍자와 촌철살인의 해학에 있다.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을 돌려서 말하고, 길게 말해야 할 것을 한두 마디로 찔러서 이야기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게 말꼬리를 흐리고, 비유 속에 할 말을 감춰두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 글은 언뜻 보아서는 분명한 의미를 알 수 없다. 여러 번 곱씹어야 본 뜩이 드러난다.


 옛사람이 술을 경계한 것이 아주 심했다 할 만하네. 술에 부림당하는 것을 주정한다고 하니 그 흉덕을 경계한 것이요. 술 그릇 중 주가 있으니 뒤집어져 빠지는 것을 경계한 것일세. 술독이란 글자는 괴롭다는 글자와 관계되고, 술잔이란 글자는 혹독하다는 글자에서 빌려온 것이네. 잔이란 글자는 그릇이 아니라는 뜻이고, 잔이란 글자는 위험하다는 글자와 비슷하지 않은가. 뿔잔이란 글자는 부딪침을 경계한 것이고, 잔이란 글자는 창 두 개를 그릇 위에 얹은 것이니 서로 다툼을 경계한 것이지. 술통이란 글자는 절제하라는 뜻을 나타내고, 술 따르는 그릇은 금하고 억제하라는 말이라네. 죽음을 따르는 것이 취함이 되고, 삶에 속하는 것이 술깸인 것이지. 주관은 평씨가 술을 맡았는데, <본촌강목>을 살려보니, 부편초가 능히 술을 깨게 한다고 했더군. 우리들이 술을 즐김은 옛 사람보다 더하나 옛 사람이 경계를 드리운 뜻에는 어두우니, 어찌 크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원컨대 이후로 우리가 술을 앞에 두면 문득 옛 사람이 글자를 만들었던 뜻을 생각하고, 여기에 더하여 옛 사람이 만든 그릇의 이름을 살피기로 하세. 어떠한가?


 <답영재>, 즉 유득공에게 보낸 답장이다. 통음의 술자리를 마친 이튿날 앞으로는 너무 지나친 음주를 서로 삼가자는 반성을 담았다. 술과 관련된 글자를 있는 대로 끌어와서 그야말로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 모두를 '계' 한 글자와 관련지었다. 거의 파자 놀이에 가까운 기상을 마음껏 펼쳤는데 그 연상력이 자못 놀랍다. 그러면서도 담은 내용은 희떠운 농담 수준을 벗어났다. 이런 글은 앉은자리에서 일필휘지로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동안 축적해온 생각을 어떤 계기를 만나 펼쳐본 것이다.



 재치는 그동안의 식견과 색다른 관점 사이에서 솟아나 상황에서 꽃핀다.


유교가 지배했던 조선 그래도 재미있는 분들이 있으니 어떻게 선비가 가짜매화를 만드는 것을 친우에게 자랑삼아서 편지를 보낼 수 있는 것인지. 본래 평생을 백수로 살았연암 박지원인데 꼭 그런 것 만도 아닌 듯싶다. 이렇게 매화를 판 것을 자랑삼아 편지까지 썼으니 그 기쁨이 이루어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해학과 풍자함이 넘쳐 우리도 즐겁고 재미있는 나날을 보내면 좋겠다.










너와 함께 지낼 수 없어 미안하구나 - P233~235


 한 쌍의 멧새가 매화 향기를 따라 내 집 마당으로 날아들었다. 추운 겨울이 다 끝난 것이다. 새들은 향기에 취해 나뭇가지를 떠날 줄 모른다. 즐거운 노래가 그치지 ㅏㅇㄶ는다. 쓸쓸하던 마당이 갑자기 환하다. 그는 새들에게 말을 건넨다.

 "여기가 그렇게 좋으냐? 나도 너희들이 좋구나.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우리 집에서 함께 살자꾸나. 네 짝과 더불어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보렴. 매화꽃이 이렇게 활짝 피었으니, 조금 있으면 매실이 주렁주렁 매달리겠지. 그떄는 함께 매실을 따 먹으며 재미있게 노아보자꾸나."

 하지만 새들은 들은 처도 하지 않고, 멀리서 달려오는 봄빛만 바라보고 있다. 네 글자로 된<시경>풍의 고체시다. 그래서<시경>에 나오는 시와 비슷한 구절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아가위꽃>이란 시는 분위기가 서로 비슷하다. <아가위꽃>은 옛날에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잔치하면서 부르던 노래였다. 그 가운데 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아내와 자식이 정답게 지내는 것이

 마치 금슬을 연주하는 것 같아도,

 형님과 아우가 화목해야한

 즐겁고 기쁘다고 할 수가 있다.

 네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

 그대의 처자식을 즐겁게 해주어라.

 이렇게 하려고 애를 쓴다면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족과 형제가 화목하게 지낸다면 그것보다 기쁜 일이 없겠다. 그러니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 아내와 자식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한다면 그 소망이 정말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다섯째 구절에 '네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란 말이 나온다. 정약용의 시 여섯번째 구절 '네 집안을 즐겁게 해주어라'란 말과 비슷하다. 그가 일부러<시경>의 표현을 빌려와서 담으려 했더 뜻도 여기에 있다.

 '네가 보고 싶지만, 아비는 너와 함께 지낼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하지만 매화 가지를 찾아온 저 멧새처럼 함께 지내고 싶은 소망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면 언제가는 꼭 그렇게 될 수 있지 않겠니. 너도 지금은 한 사람의 아내요, 자식을 기르는 어머니가 되었다. 형제간에 우애롭고 가족간에 화목하게 지낼 수 있도록 네가 더 노력하렴. 그러면 저 예쁜 꽃이 진 자리에 알찬 열매가 주렁주렁 매다리듯 네 집안에 기쁘고 즐거운 일이 언제나 가득할 게다.'

 딸에게 그림을 그려주며 정약용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딸은 아버지가 치마에 그려 보내준 그림을 보고, 멀리계신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을 떨구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시집오시던 날 입었던 빛 바랜 치마 위에 아버지가 훈계의 말씀을 써서 보내주시다니, 그것을 받아든 자식들의 가슴은 얼마나 뭉클하였을까? 정약용이 딸을 위해 그려준 그림과 시는 지금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그대로 남아 있다. 다 떨어져 입을 수 없게 된 치마가 이렇게 해서 훌륭한 예술 작품이 되었다. 이 그림과 시가 참으로 아름다운 까닭은 그 안에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물며 죄를 지어 귀향까지 가있으면 집에 있는 가족들이 얼마나 생각이 날까? 그 그리움과 애처로움이 글과 그림으로 남겨져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 정말 좋다. 이래서 글과 그림은 디지털로 뿐만 아니라 아날로그로 남겨 정보가 없어져도 남을 수 있게 끔 해도 좋을 듯 싶다.









더러운 뒷간 위해 충성을 바칠 것 없다 - P235~238

 유배지에서 정약용은 끊임없이 자식들에게 훈계하는 편지를 보냈다. 행여 그릇될세라, 한문을 게을리할세라 안쓰러울 만치 늘 노심초사하였다.


 네가 양계를 한다고 들었다. 닭을 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닭을 기르는 데도 우아한 것과 속된 것, 맑은 것과 탁한 것의 차이가 있다. 진실로 농서를 숙독해서,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보렴. 빛깔에 따라 구분해보기도 하고, 횟대를 다리 해보기도 해서 닭이 살지고 번드르르하며 다른 집보다 번식도 더 낫게 해야지. 또 간혹 시를 지어 닭의 정경을 묘사해보도록 해라. 사물로 사물에 얹는 것, 이것은 글 읽는 사람의 양계니라. 만약이익만 따지고 의리는 거들떠보지 않는다거나, 기를 줄만 알고 운치는 몰라, 부지런히 애써 이웃 채마밭의 늙은이와 더불어 밤낮 다투는 자는 바로 셋집 사는 마을의 못난 사내의 양계인 게다. 너는 어떤 식으로 하려는지 모르겠구나. 기왕 닭을 기른다면 모름지기 백가의 책 속에서 닭에 관한 글들을 베껴 모아 차례를 매겨 <계경>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구나. 육우의<다경>이나 유득공의<연경>처럼 말이다. 속된 일을 하더라도 맑은 운치를 얻는 것은 모름지기 언제나 이것을 에로 삼도록 해라.


 1805년 유배 4년 만에 맏아들 학연이 강진으로 아버지를 뵈러 왔다. 그 편에 작은아들 학유에게 보낸 당부의 편지다. '공부하는 사람의 양계는 보통 사람의 양계와 달라야 한다. 옛 전적에서 닭에 관한 기록을 모아 목차를 세워 정리하고, 닭을 관찰하여 시로 짓도록 해라. 이것을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면, 얼마나 훌륭하겠니?' 정약용은 지금 아들에게 양계를 통해 학문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귀한 것은 성실함이다. 어떤 것도 속여서는 안 된다. 하늘을 속이는 것이 가장 나쁘다. 임금을 속이고 어버이를 속이거나, 농사꾼이 이웃을 속이거나, 장사꾼이 동료를 속이는 것 모두 죄에 빠지는 것이다. 한 가지만은 속여도 괜찮으니, 바로 자기 입니다. 모름지기 거친 음식으로 잠시 지나가는 것, 이것이 좋은 방법이다.

 올 여름 내가 다산에 있을 때 일이다. 상추에 밥을 싸서 움켜주고 이를 삼켰다. 손님이 내게 물었지.

 "쌈 싸먹는 것이 절여 먹는 것과 다를까요?"

 내가 말했다.

 "이는 내가 입을 속이는 방법일세그려."

 매번 밥 한 끼를 먹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갖도록 해라. 정력과 지혜를 쥐어짜 더러운 뒷간을 위해 충성을 바칠 것 없다. 이런 생각은 당장 눈앞에서 가난함에 대처하는 방편만은 아니다. 비록 부귀가 하늘에 닿을 정도라 해도 사군자가 집안을 거느리고 몸을 다스리는 방법에 근면과 검소를 버리고는 손댈 만한 곳이 없을 것이니라. 너희들은 꼭 명심하도록 해라. 경오년(1810) 9월 다산 동암에서  쓰노라.


 상추쌈을 왜 먹는가? 장을 찍어 주먹만하게 밥을 싼 상추쌈은, 겉모습은 푸짐해 보여 좋지만 속엔 밥뿐이다. 이것으로 식욕을 돋워 입을 손인다는 것이다. '입에 들어가기만 하면 더러운 똥이 되고 말 음식을 위해 정력과 지혜를 소모하지 말아라. 그것은 화장실에 충성을 바치는 일이다. 근면과 검소, 그리고 성실 이것은 선비가 어떤 처지에 있떠라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니라.' 글 제목이 <두 아들에게 주는 훈계>이고, 쓴 시점으로 보아 아내의 치마에 써준 글의 한 부분이었던 듯하다.



윽 나에게 직접적으로 하는 이야기 같아서 반성을 잠시 하고 오겠습니다.


그래도 먹는 낙이 있는 것인데 정말 너무하셔요.

조금은 자제하도록 하겠지만 포기는 못할 듯 싶어요.

결국엔 정진 뿐이지만 그래도 잠시 동안은 벗어 날 수 있게 해주세요.








미쳐야 미친다

저자
정민 지음
출판사
푸른역사 | 2004-04-03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한 시대를 열광케 한 지적, 예술적 성취 속에는 열정과 광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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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학자들 


그들은 이렇게 우리에게 그때를 알려줄 수 있는 자료를 남겨주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아니면 자본에 침식 당하고 있는가?


스스로를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 왜 이런지 더욱 더 알 수 있고 갈 곳을 확인 할 수 있다.


더 많은 책들이 해석이 되어 나왔으면 좋겠지만 누가 읽을지 모르겠다.


아 ... 우리 조상이여... 아 우리의 역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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